‘가을’ 하면 “형형색색”이란 말이 떠오른다. 그만큼 다채로운 색으로 다가오는 계절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가로수가 울긋불긋 변하는 것을 보니, 한 해의 절반을 훌쩍 지남을 느끼게 된다. 가을은 자연이 저마다의 색깔을 가지고 있었음을 드러내는 시간. 더불어 그 색들은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그 아름다움이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엘리엇(T.S. Eliot)은 “모든 아름다운 것은 짧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의 소설 『성당에서의 살인(Murder in the Cathedral)』의 한 구절로 기억하는데, 소설의 내용은 온데간데없고 이 한 구절만이 내게 살아남았다. 사실 기억이야 살아남든 죽든 간에 지금의 형국에서 사람이 살고 죽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면서도, 최근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에서처럼 사람이 무자비하게 죽임을 당하고 어이없이 죽어 나가는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인류가 살아남은 것은 생명의 강이 연연히 이어져 왔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이념과 종교와 목적이 생명에 우선하고, 이성과 상식을 무가치한 것으로 폐기하는 현실을 본다. 수많은 생명이 반짝거리기는커녕, 수많은 목숨이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롭다.
‘살아남는다’라는 것은 무엇인가. 살아서 죽음을 면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 아니면 잊히지 않고 기억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인가. 문명이 발전하고 첨단 과학 기술이 인간의 일상을 편하게 하는 현재, 이 시점에도 어디에선가는 ‘살아남는다’라는 것에 대해 암울하고 처절한 몸부림을 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가을은 아름답고 다채로우며, 잠시 멈추어 심호흡하면 마음이 평온해지고 삶이 내 안에 머무는 시간이다. 그런데도 우크라이나-러시아, 이스라엘-하마스 간에 벌어지는 전쟁은 인류가 개발한 가공할 무기를 동원한 광란의 질주며, 무자비한 인명 살상의 만행이 아닐 수 없다. 수많은 생명이 반짝이기는커녕, 수천·수만 발의 포탄에 소중한 생명이 사라지고 있다. 그리고 그 사라짐은 몇 개의 숫자로 뉴스에 나오고, 우리 곁을 지나 흘러가고 잊힌다.
이 가을은 ‘살아남는다’라는 말을 유심히 생각하게 되는 계절이다. 우크라이나의 ‘부차’에서 학살당한 영혼들에, 가자의 병원에 떨어진 포탄에 산화한 영혼에, 흥겹던 음악 축제에서 끌려가 땅굴 어딘가에 볼모로 잡혀있을 인질에게 ‘살아남는다’ 것은 얼마나 무겁고 처절하며 절박한 것인가. 이 전쟁은 그들을 야만스럽게 숫자로 기억할 것이다.
모든 것은 사라진다. 그러므로 나는 나를 기록한다. 우리는 우리를 기록한다. 아름다움이 저마다의 색으로 배어드는 때. 가을빛은 찬연하고, 슬픔은 깊다.

[신연강]
인문학 작가
문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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