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시는 현대의 문예사조를 반영한다. 문예사조는 그 당시 사회를 지탱하는 사상적 토대다. 우리나라는 서구의 문예사조를 그대로 받아들여 짧은 기간에 다양한 실험을 해왔다. 일제강점기 초기에는 계몽주의, 1910년대 말부터 1920년대 초까지는 상징주의·낭만주의·사실주의·자연주의, 1930년대에는 모더니즘, 1950년대 6.25 사변 이후는 실존주의, 현재는 포스트모더니즘 등으로 시대에 따라 문예사조가 바뀌어왔다.
문예사조가 바뀌었다는 사실은 모든 예술의 사상적 토대가 되는 시대 철학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문예사조의 변화를 모르는 채, 근대 초기의 시풍을 그대로 답습하는 시를 쓰고 있다면. 이는 양복을 입고도 상투를 틀고 갓을 쓰고 다니는 기막힌 상황을 고집하는 상황이며, 머리를 깎고 한복을 입고 짚신을 신겠다고 고집하는 상황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그러함에도 우리 문학계는 이런 상황이 지금까지도 벌어지고 있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고대시에서부터 근대시, 그리고 현대시와의 명확한 구별 점은 시가 노래(음악)와 결합했는가와 그림(화화)와 결합했느냐이다. 그리고 옛날 방식의 사상이나 문화를 기본사상으로 하고 있다면, 근대 이전의 시가에 해당한 시일 것이며, 오늘날의 문예사조를 토대한 시라면, 현대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옛날의 시는 노래 가사에 불과했기 때문에 시를 시가라고 했다. 오늘날의 시를 현대시라고 하는데, 현대시의 원리조차 모르면서, “시는 강렬한 자기감정의 자연스러운 유로”라는 낭만주의풍의 시를 쓰고 이것이 현대시인 줄로 아는 시인이 있다면, 옛것만을 고집하는 전통 시인이라고 칭찬해야 할지 또는 문예사조의 변화를 전혀 알지 못하는 후안무치라고 해야 할지 답답할 뿐이다.
주관적인 자기감정에 치우쳐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혼자 지껄이는 넋두리 같은 글을 시라고 쓰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오늘날 우리나라 시인 공화국의 풍속도이다. 이들은 중고등학교 시절, 김소월 등과 같은 여러 문예사조의 실험을 거친 시들이 교과서에 실려 그런 시들이 현대시인 줄로만 알고, 그런 부류의 시를 모방하고 시인행세를 하는 꼴이다.
한국 문학사를 제대로 공부했다면 이런 부끄러운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나라 시인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고 여성분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모두 나이가 들어 뒤늦게 시인이 된 사람들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일제강점기, 전후세대 등 역사의 격동기에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 이제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고 시간적인 여유가 생겨나자 시인이 된 것이다.
이들은 그동안 살아왔던 지난날들을 뒤돌아보며 공허한 마음을 기록으로 남기려는 부질없는 허명 의식과 자기 존재의 영속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시인이 되고자 했을 개연성이 많다. 이는 마치 동식물의 자기 개체를 증식하고 보존하려는 왕성한 성욕과 같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잠재적인 본능에 의해 시를 쓰고 시인이 되고자 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고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이 시창작 공부를 전혀 하지 않고 현대시다운 시를 창작하기 위한 의지도 없으면서 문학단체에 가입하여 끼리끼리 웃고 떠드는 계모임 성격의 비생산적인 문학 놀이꾼으로 전락했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리고 이런 단체들이 지역마다 국민의 세금을 예술 활동 지원금 명목으로 지원하여 피에로 같은 문학 놀이판을 벌여 문학의 본질을 왜곡시키고 한국문학의 질을 떨어뜨려 세계적으로 명작들을 창작해낼 문학 인재들의 앞길을 막고 있다면, 국가적으로 큰 손실일 것이다.
이 시대의 사상적인 기저인 포스트모더니즘의 정신도 전혀 모른 채, 그저 정치인과 다름없이 문학을 하는 것인지 정치를 하는 것인지 도무지 분간할 수 없는 한심한 문학 놀이가 각 지역에서 지속되고 있다면, 비생산적인 활동으로 시간과 경제적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만약 이러한 문학 놀이판을 벌이고 있는 곳이 있다면, 시급히 이들의 볼썽사나운 광대놀음을 그만두게 해야 마땅하다.
현대시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엉터리 시인들의 광대춤을 언제까지 수수방관만 할 것인가? 지방자치기관마다 문화예술 정책을 펴고 있는데, 만약 이들의 탐욕스럽고 교활한 꼭두각시 시녀 노릇을 문화예술 행정으로 알고 있다면 큰일이다. 문학 놀이꾼들은 자신들이 부끄러운 행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다. 문학 놀이하는 것이 당연히 문인들이 해야 할 문학 활동인 것으로 알고 있을 뿐이다.
자치기관들이 이들의 요구를 정치적 계산으로 모두 받아주고, 이들이 광대춤을 제 맘대로 추게 조장하고. 그들의 활동비를 지원하고 있다면, 향토문학의 장래는 암담하고 미래 세대에게 참으로 부끄러운 유산을 물려주는 것이 아닐까? 염려스럽다.
현대시는 현대의 문예사조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 현재의 향토문학은 오늘의 문예사조를 반영한 현대시가 향토문학으로 굳게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모두 합심하여 바로 잡아야 미래세대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진 국민의 자세일 것이다.
[김관식]
시인
노산문학상 수상
백교문학상 대상 수상
김우종문학상 수상
황조근정 훈장
이메일 : kks4190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