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인문기행] 낯선 길에서 만난 절집, 청양 계봉사(鷄鳳寺)

여계봉 선임기자

 

가을 끝자락의 어느 날, 부여에서 청양 가는 한적한 지방도로를 달린다. 도로 주위 길가로 헛된 나뭇잎들이 하나둘 떨어지는 청양군 목면의 구불구불한 고갯길을 오르고 있는데, 갑자기 나타난 절 표지판을 보고 급히 차를 멈춰 세운다. 지금껏 살면서 내 이름과 같은 사람을 한 명도 보질 못했는데 절 이름이 내 이름과 한자까지 똑같다. 이것도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因緣)이라 생각하고 궁벽한 산중 외진 길을 따라 절집 가는 길로 들어선다. 

 

청양군 목면 고갯마루에 있는 계봉사 표지판 

 

산길로 접어들자 산기(山氣)가 청정하다. 산길 중간에 갑자기 산새들이 합창하는 소리가 들려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드니 감나무에 달린 까치밥을 놓고 새들이 즐거이 식사하는 정경이 비친다. 절집 입구에 있는 연지(蓮池)를 지나니 그 위로 제법 너른 절 마당이 낙엽에 덮여있다. 대웅전 아래 뜰에는 오층석탑이 우뚝 서 있고 주위의 암자는 가을 햇살에 노승처럼 졸고 있다. 전각 몇 채 되지 않은 암자의 가난하고 시린 풍경에 가슴이 설렌다. 절집 뒤편 산언덕에 굳센 노송들이 따사로운 눈길로 뜰을 굽어보고 있고, 무심히 흔들며 지나는 바람결에 노송의 솔향이 묻어 있다. 

 

절집 감나무에 달린 까치밥 

 

세상의 악다구니와 동떨어진 허름한 절집에는 산문(山門)의 고요가 가득하고, 그 자체가 가을 풍경의 절정이다. 산이 해맑아 온몸으로 산과 섞이는 이곳은 맑은 한지처럼 순수하다. 여기에 그 어떤 욕심도, 고뇌도, 오류도 없다. 그저 그 자체로 무구하고 아름답다. 나는 아득한 전생의 어느 가을날 절집을 떠돌던 하루살이였을까. 온몸으로 느껴지는 절집의 정적이 기꺼워 몸과 마음이 참새처럼 가벼워진다. 

 

산문(山門)의 고요에 잠긴 청양 계봉사

 

절 마당에 버티고 선 오층석탑은 마모된 모습으로 영원을 바라보며 모든 것을 버린 듯 고요히 평온을 유지하고 있다. 계봉고탑(鷄鳳古塔)이라고도 불리는 이 탑은 높이가 4m인 고려 시대 석탑이며, 계봉사(鷄鳳寺)는 백제 성왕 또는 통일신라 시대 문성왕 때 체징(體澄)이 창건된 사찰로, 주춧돌만 남아 있던 것을 1920년에 건물을 다시 지은 것이라고 탑 앞의 안내판에 적혀있다.

 

고려 시대 석탑인 계봉사 오층석탑

 

오층석탑 뒤와 옆으로 대웅전과 요사채가 있다. 절이 여염집을 닮아 꾸밈과 치레가 없다. 졸박(拙朴)하고 허술한 절집 생김새에 단청 무늬가 어렴풋이 남은 대웅전의 질박한 모습에 오히려 마음이 편안하다. 정갈한 요사채 툇마루 아래 놓인 털신 한 켤레를 보고 절집 곳곳을 둘러보지만 어디에도 인기척이 없는 거로 보아 스님은 상주하지 않는 느낌이다. 몇 일간이라도 행자가 되어 유(留)하고 싶은 그런 절집이건만 스님이 안 계시니 욕심을 내려놓을 수밖에. 

 

 오층석탑 기반석에 새겨진 '계봉고탑(鷄鳳古塔)'

 

인적 끊어진 절집의 소박하고 아담한 대웅전으로 쏟아지는 가을 햇살이 황홀하다. 기척 없이 불어온 산골짜기 미풍이 버선발로 슬쩍 대웅전 처마에 매달린 풍경을 건드려 쨍그랑하는 경쾌한 소리를 내니 잠든 숲의 미물들이 잠에서 깨어난다. 절집 앞에 버티고 선 말 없는 저 은행나무는 묵언수행(默言修行)의 표상인가. 바람이 불어오면 그저 슬며시 잎새를 떨어뜨려 수백 년을 살아온 비결이 부동의 묵상에 있었음을 암시할 따름이다. 지금 내 눈에는 저 은행나무가 부처처럼 보인다.

 

대웅전의 ‘계봉사’ 편액과 빛바랜 단청 

 

썰렁한 대웅전에 들어가 부처님께 삼배 올리며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이 절과 나는 대체 무슨 인연(因緣)이 있는 것인가?'.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사람들은 500 겁(劫)의 인연이 있어야 옷깃을 스칠 수 있고, 2천 겁의 세월이 지나야 겨우 하루 동안 동행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고, 5천 겁의 인연이 되어야 이웃으로 태어날 수 있고, 억겁의 세월을 넘어야 평생을 함께 살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지금껏 세상을 살면서 아직 내 이름과 같은 사람이나 사물을 한 번도 만나지 못했으니 나와 이 절은 아마 수천 겁의 인연을 딛고 하늘이 맺어준 운명이 아닐까.

 

다 비워낸 계봉사는 무심의 경지, 무욕의 세계다.

 

절을 크기로 가늠함은 어리석은 일이다. 전각이 산을 덮고, 불탑이 하늘을 찌르면 부처가 가까운가. 아닐 것이다. 부처는 천년의 바람이 지워버린 폐허 위에도 있다. 마음이 청산이라면 거기가 법당이고 무문관이다. 비울 것을 다 비웠는데 무슨 티끌이 있으며, 무슨 동요가 있을까. 번뇌도 어리석음도 훌쩍 건넌 무심의 경지, 무욕의 세계가 바로 여기가 아닐까. 

 

산자락은 이미 산그늘이 접혀 먹물처럼 번지니 절집에 내린 산 그림자가 속살같이 애틋하다. 절 마당에 낙엽을 떨구고 서 있는 나무들은 마치 수행자 같다. 절집을 홀로 지키는 나무들을 향해 예를 갖추어 인사하고 절집을 나선다. 

 

 

[여계봉 선임기자]

수필가

공학박사

이메일 : yeogb@naver.com

작성 2023.11.20 10:13 수정 2023.11.20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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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