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삼성궁 별천지를 가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

지리산 삼성궁 초입 / 사진=조미선

 

청학동 삼성궁

 

삼성궁은 경남 하동군 지리산 청학동의 도인촌이 있는 골짜기 서쪽 능선 너머 해발 850미터 지점에 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우리나라에 이런 별천지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예로부터 지리산은 산세가 험하여 사람들의 접근이 쉽지 않았고 호랑이를 비롯한 맹수들이 많아 ‘지리산 포수’라는 말이 있었다. 지리산으로 들어가는 포수는 보았지만 나오는 포수는 보지 못했다 하여 생긴 말이다. 지금은 도로가 생겨 많은 사람들이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지만 산세만은 예전처럼 변함없이 웅장하고 그윽한데, 그  속에 삼성궁이 자리 잡고 있다.  

 

중산리의 곶감 / 사진=코스미안뉴스

 

중산리에서 묵은 하룻밤

 

서울에서 삼성궁으로 가는 길에 날이 저물어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에 있는 민박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학창 시절에 지리산 정상에 오르기 위해 진주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비포장도로를 털털거리며 왔던 그 중산리는 이미 아니다. 계곡에는 펜션과 황토 민박집 등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서 예전의 적막하고 현현했던 그 골짜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돈 바람과 개발의 광풍이 여기 첩첩산중에까지 미친 것이다.

 

아침에 산속에서 눈을 뜨니 기온은 찬데 온몸이 이토록 상쾌할 수가 없다. 집집마다 곶감을 만들어 말리는데 달콤한 맛만큼이나 색깔이 곱다. 겨울인데도 계곡의 인가 주변에는 아직도 따지 못한 감들이 널려 얼었다 녹았다 하며 까치밥이 되고 있다. 무서리를 맞은 홍시를 두어 개 따서 입에 넣었다. 이게 진짜 홍시다. 덜 익은 놈을 따서 카바이드로 강제로 익혀 파는 서울의 감은 감도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중산리에서 차를 몰아 조금 내려오니 오른쪽으로 ‘청학동’이란 이정표가 나온다. 청학동은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매스컴에 소개되어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근처에 삼성궁이 있다는 것은 몰랐다. 
 

 

시골 할머니

 

꼬불꼬불한 산길로 조심스레 운전을 하고 가는데 머리에 짐을 이고 버스를 타러 가는 할머니 한 분이 보인다. 차를 세우고 할머니를 태워 버스 정류장까지 모셔다 드리면서 삼성궁이 뭐 하는 곳이냐고 물었더니 할머니는 억센 경상도 사투리로 “거기 가모 기궁할 끼 많지. 하리 점두룩 봐도 볼 끼 있을 끼라... (거기 가면 구경할 것이 많지. 하루 종일 봐도 볼 것이 있을 것이라.)” 할머니 말처럼 구경할 것이 정말 많은 곳이다.  

 

삼성궁의 이색적인 풍경들

 

들어가는 입구부터 예사롭지 않다. 수많은 돌로 쌓은 돌담이 죽 늘어서 있는데 마치 인간 세계에서 별천지로 통하는 길처럼 보인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니 사람이 사는 것은 분명한데 도무지 사람의 종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 여기저기 대나무에 천으로 그린 희한한 그림들만 찬 겨울 바람에 날리는데 문득 한 곳에서 나의 시선이 멈췄다. 삼족오다. 발이 세 개인 까마귀가 아닌가. 그 곁에는 고조선 때부터 우리 민족이 사용했다는 전통 악기를 만들어 놓고 관광객들이 만져보게 해 놓았다.  

 

소지종이라는 것은 또 뭔가. 새끼를 꼬아서 여러 겹으로 둘러 놓고 각자 한지에다 자기의 소원을 써서 새끼줄에 묶어 놓았다. 나중에 그것을 불로 태워 하늘로 날려 올리나 보다. 예전에 음력 2월 초하루면 남부 해안 지방에서 ‘영등 할맘네 날’이라 하여 소지 종이를 태워 소원을 빌며 손으로 받쳐 하늘로 불살라 올리던 것은 보았지만 이렇게 많은 소지종이는 여기서 처음 본다.

 

소지종이가 걸려 있다. / 사진=조미선

 

초입에서 삼성궁까지는 제법 올라가야 한다. 중간에 수행자들이 무예를 익히는 공터가 있고 다시 길을 올라가면 성곽과 같은 관문을 지나 최종적으로 삼성궁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당도한다. 입구에는 ‘계곡에서 손을 씻은 후 북을 세 번 치고 기다리면 수행자가 안내하러 나온다"라는 팻말이 있다. 쾅 쾅 쾅! 북을 세 번 두들기니 삿갓을 쓰고 수염을 기른 채 도포 자락을 휘날리는 무사처럼 생긴 사람이 나타나 어둡고 좁은 동굴 속으로 안내한다. 

 

촛불을 밝힌 동굴을 빠져나가니 넓은 공터에는 연기가 피어오른다. 아! 이것이 소도로구나. 그 옛날 제사장들이 사는 곳으로 죄인도 여기로 피신하면 잡으러 오지 못했다는 신성한 땅 말이다. 한 쪽을 바라보니 움막처럼 생긴 곳에 단군의 초상이 걸려 있다. 향을 피워 놓고 쑥과 마늘을 단 위에 정성스레 올려 놓았다. 종교적 편견을 떠나 민족의 시조인 단군 왕검의 초상화 앞에서 삼배를 하고 예를 올렸다.

 

 

삼성궁 입구 / 사진=조미선

 

가장 친근한 얼굴

 

경내를 한 바퀴 둘러보고 입구 쪽으로 내려오는데 아까는 보지 못했던 풍경이 펼쳐진다. 추운 날씨에 손이 꽁꽁 얼어붙어 어디서 몸이나 좀 녹일까 하고 둘러보는데 연기가 피어오르는 마당에 솥뚜껑을 걸고 파전을 굽는 초로의 아주머니들이 보인다. 따뜻한 어묵 국물에 파전을 하나 시켰더니 동동주 한 잔을 내놓는다. 아주머니의 모습을 자세히 보니 전형적인 우리나라 여인의 모습이다. 미모는 아니지만 어디선가 본 듯하고 정감이 가는 그 모습은 천상 우리 모습의 표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한국적인 곳에서 가장 친근한 얼굴을 만나니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본향에 온 것 같은 푸근함을 느꼈다.  

 

도깨비 형상의 석물 / 사진=조미선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

 

삼성궁은 고조선 시대의 소도를 복원한 것으로 환인, 환웅, 단군을 모시는 곳이다. 여기서 수행자들이 신선도 수행을 하고 있다. 수행자들은 우리 민족 고래의 전통에 따른 수행을 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해맞이 경배를 드린 뒤 선식으로 식사를 하고 검술 활쏘기 등 전통 무예를 익히며 낮에는 손수 밭을 일구어 자족적인 생활 터전을 만들고 밤이면 신선도 경전을 공부한다. 

 

디지털시대라고 하는 요즘 가장 아날로그적인 면모를 보여주며 배달민족의 건국 이념인 홍익인간의 이념을 전파하며 민족 전통을 고수하고 있는 삼성궁은 그 자체가 하나의 문화 코드로서 보전되어야 할 가치가 충분해 보인다. 세계화 시대에 이 무슨 국수적이고 궁상맞은 짓을 하는 곳이냐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서구에서 전래되어온 문화에는 그토록 열광하면서 정작 우리 것을 외면하는 요즘 세태가 걱정스러운 분들은 여기 삼성궁에 가면 조그만 위안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봉수]

이순신전략연구소장

이메일 ogokdo@naver.com

 

작성 2023.12.06 11:04 수정 2023.12.25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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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