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흥렬 칼럼] 저 욕망의 껍데기들을

곽흥렬

도시 변두리에 총총히 들어선 아파트의 행렬은 그냥 바라만 보고 있어도 하마 정신이 아뜩해 온다. 하늘을 찌를 듯이 치솟은 고층 건물들 아래 다가서면, 그 어마어마한 높이에 압도당해 나라는 존재가 너무도 왜소하고 초라하게 느껴진다.

 

이따금 산꼭대기에 올라 잿빛으로 흐릿한 도시의 광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황혼에 젖은 창백한 묘석墓石 같다’고 한 어느 시인의 표현이 기가 막히게 적확했음에 탄복을 금치 못한다. 바둑판처럼 가로세로 질서정연하게 열 지어 늘어선 아파트 숲은 어찌 그리도 국립묘지의 그 새하얀 빗돌들을 쏙 빼닮았을까. 마치 죽은 자들의 혼백을 모셔다 놓은 거대한 납골당 같다.

 

도시의 수많은 고층 건물들 앞에서 나는 가끔씩 조금은 엉뚱한 생각에 젖어 들곤 한다. 우리의 콘크리트 건축물 수명이 기껏해야 삼사십 년 정도라는데, 그렇다면 앞으로 세월이 흘러 다음 세대가 역사의 주인공이 되었을 때 저토록 많은 구조물을 다 어찌할 것인가. 몽땅 부수어서 어디에다 내다 버릴 것인가. 상상만으로도 금세 가슴이 답답해 온다. 이것이 유독 나만의 기우杞憂일까. 

 

수년 전 터키에서 일어났던 대지진 생각을 떠올릴 때면 나의 이 같은 염려가 얼마큼 현실로 다가든다. 당시 부수어졌던 엄청난 양의 콘크리트 구조물들, 그 산더미 같았던 건물의 잔해를 치울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한 터키 정부는 궁리궁리 끝에 하는 수 없이 지중해 연안에다 투기投棄해 버렸다. 

 

결과는 참담함으로 되돌아왔다. 지중해의 수면이 상승하고, 수온이 높아져서 엄청난 생태계 파괴로 이어졌던 것이다. 이것은 그나마 빙산의 일각이 아닌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 수십 혹은 수백 년 전 조상들의 삶보다 지금 우리의 삶이 더 윤택하고, 그래서 더 행복하다고 누가 감히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우리 선조들은 대우주의 질서에 조용히 순응하는 삶을 살아 주었다. 누각 하나 짓는 데도, 담장 한 줄 쌓는 데도 자연에 대한 외경의 마음가짐을 잃지 않았다. 그것은 자연과의 조화를 모색하려는 지혜로 나타났다. 지표면의 높낮이가 고르지 않을 때는 네 기둥의 길이를 각기 다르게 하여 그 위에다 집을 올렸으니, 이를 일러 ‘덤벙 주초柱礎’라 했다. 

 

그뿐이 아니다. 건축재료 하나하나를 자연에서 빌려와 소용 닿는 대로 사용하다 천수가 다하면 다시 원래의 자리로 되돌려 주었었다. 나무 기둥이 그렇고, 흙벽이 그렇고, 오지기와가 그렇고, 돌담이 또한 그렇다. 말하자면 순환의 원리에 어그러짐 없는 삶이어서, 없던 것이 새로이 생겨나게 하지도 않았고 있던 것이 사라지게 만든 경우도 없었다. 이를 좀 고상한 말로 표현하자면, 이른바 엔트로피의 수치數値를 거의 일정하게 유지시키는 그런 삶의 방식이었던 게다. 

 

오늘날 우리의 건축물들은 어떠한가. 온갖 크고 작은 내장재들이 모조리 화학제품 일색이고, 기둥이며 지붕이며 벽체며 방바닥……, 어느 하나 시멘트가 재료로 쓰이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이다. 그야말로 온통 콘크리트로 짜 맞춘 거대한 상자들이라 해도 그리 지나친 표현이 아닐 것 같다. 석회석을 원료로 하여 가공한 시멘트는 한번 사용하고 나면 다시는 원래의 석회석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그러기에 쓰이면 쓰인 만큼 바로 환경을 황폐화시키는 폐기물로 남고 만다.

 

이것은 더 크게, 더 높이, 더 편리하게 살고 싶어 안달하는 마음에서 초래된, 현대인의 허망한 욕망의 껍데기다. 저 많은 욕망의 껍데기들을 장차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절제하는 삶이어야 하겠다, 추한 흔적 남기지 아니하도록. 우리가 여기서 지금 이 순간에 생을 누리고 있다 해서 이것이 본래 우리의 소유는 아니었던 것을……. 너나 나나 이렇게 와서 잠시 동안 머물다 이내 모든 것 놓아둔 채 어디론가 훌훌 떠나야 할 나그네들임에랴.

 

먼 훗날 이 지구별에 발붙이고 살아가야 할 우리의 손자 손녀들이 지금 우리가 살았던 삶을 두고 뭐라고 손가락질할 것인가를 생각하면, 정작 부끄러움에 앞서 죄책감이 깊어진다. 이 땅덩어리는 우리 당대에만 마음 내키는 대로 무책임하게 사용하고 말 그런 욕망의 충족처가 아니지 않은가. 자자손손 대를 이어 생을 영위해 가야 할 절대의 자산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항시 옷깃 여미는 마음으로, 한번 망가져 버리면 두 번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이 조화주의 선물을 소중히 지켜나가야 하리라.

 

 

[곽흥렬]

1991년 《수필문학》, 1999년《대구문학》으로 등단

수필집 『우시장의 오후』를 비롯하여 총 12권 펴냄

교원문학상, 중봉 조헌문학상, 성호문학상, 

흑구문학상, 한국동서문학 작품상 등을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받음

제4회 코스미안상 대상 수상

이메일 kwak-pogok@hanmail.net

 

작성 2023.12.15 11:04 수정 2023.12.15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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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