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생님께서 출판한 십여 권의 시집에는 한글 맞춤법을 무시한 시어가 너무 많습니다. 1차 책임은 시인에게, 2차 책임은 출판사에 있습니다.”
“스승에게서 시어는 한글 맞춤법을 무시하고 써도 괜찮다고 배웠어요. 난 스승의 말만 믿어요.”
“오자와 오류를 시적 허용이라고 합리화하려는 것은 한글 맞춤법이 정해 놓은 약속을 지키지 않겠다는 것이고, 시 창작 기법의 이치에도 맞지 않습니다.”
이 대화문은 원로급 이름난 시인과 나눈 대화이다. 원로든 중견이든 시 창작 기법을 모르는 시인이 의외로 많다. 오자와 오류를 시적 허용이라고 주장하는 얼토당토않은 궤변을 듣고, 그 원로 시인의 시적 수준을 완전히 간파했다. 물론 시집을 통해 긴가민가 간파하고 있었다. 그 시인에게 아래의 내용을 설명해 주었다.
시에서 언어와 문법의 변형을 허용한다. 이를 ‘시적 허용’(Poetic licence) 혹은 ‘시적 자유’, ‘시적 파격’이라고도 한다. 오자를 비롯한 문법 오류가 명백한 미완의 시를 놓고 시적 허용이라고 억지 주장하는 시인을 본 적 있다.
이는 미숙한 시적 역량을 감춰 보려는 방어 기제 작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시적 허용이 시의 미학적 완성도를 제대로 갖춰야만 성립 가능한 이론임을 모르는 시인이 뜻밖에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 신기용, 『창조적 상상력과 시 창작의 지평』에서
자세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그 시인은 자기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자기의 시적 수준에 대해 행동으로 비판을 가한 셈이다. 젊은 나이에 시를 배울 때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음을 스스로 폭로한 것이다. 그 시인의 스승은 이론가로서 한국 문단에 한 획을 그은 분이다. 그분의 명성을 의심하는 이가 의외로 많은 이유를 깨닫는 계기였다.
시인은 한글 맞춤법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시인의 책무는 우리말을 빛나게 하는 일이다. 사라진 언어, 죽어 가는 언어를 발굴하여 빛나게 하고, 시적 조어(造語)를 통해 새로운 언어를 창조해내는 일이다.
이런 의무와 책무를 망각하지 말자. 오자와 오류를 시적 허용이라고 억지 주장하는 얼토당토않은 변명을 늘어놓지 말자.
[신기용]
문학 박사.
도서출판 이바구, 계간 『문예창작』 발행인.
대구과학대학교 겸임조교수, 가야대학교 강사.
저서 : 평론집 7권, 이론서 2권, 연구서 2권, 시집 5권,
동시집 2권, 산문집 2권, 동화책 1권, 시조집 1권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