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한 것이 없었다.
언덕배기 따비밭 가는 길섶에 주인 없는 복숭아 두 그루가 있다. 누가, 언제, 왜 그곳에 심었는지는 모르겠다. 하늘을 향해 제 마음껏 자란 나뭇가지들이 평소 과수원에서 보던 것처럼 질서정연한 조형물 같지 않아 오히려 낯설다. 잎새 사이 벌겋게 제 알몸을 드러낸 복숭아들에 서왕모의 도원을 훔쳐본 듯 탐욕이 앞선다. 단물 듬뿍 고인 담홍색 속살, 달큼한 과즙의 향기가 슬그머니 코끝에 감돈다.
멀리서 보아도 씨알이 잘고 태깔이 곱지 않다. 살아내느라 모진 세파를 견뎌낸 민낯처럼 옹골지고 다소 거칠어 보인다. 그래도 사람 손을 타지 않은 자연산 아닌가. 가능하면 크고, 미끈하고, 깨끗한 것을 찾아볼 욕심에 손닿는 곳까지 어렵사리 따내려 보지만 하나같은 상처투성이다. 멧새들 입질에 물크러졌거나 애벌레 헤살에 표피마다 구멍이 숭숭하다. 큰 기대치를 둔 것도 아니면서 흠집이란 생각에 잠시 실망한다.
아기 살결처럼 여리고 순한 외피는 작은 상처 하나에도 속살을 지켜내기엔 역부족이었던 모양이다. 식구들에게 희생하느라 자신의 존재도 잃어버린 어머니처럼 그 속살에 단물과 향기를 양생하느라 정작 허술해진 외관이 아니었을까. 호침 속의 보늬나 각두처럼 철갑의 방어벽은 자기 욕慾과 환幻의 세기일 뿐 모시옷 같은 껍질 하나면 제 모양내기는 충분했던 것이었으리라.
그때부터였다. 못생기지는 않았나, 티끌만 한 흠이라도 없는지 그 젖빛 표면을 취모멱자吹毛覓疵처럼 눈 살펴 찾기 시작했다. 탐스럽고 부드러운 속살의 유혹은 저만치 제쳐둔 지 오래다. 흠이 없는 것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단정한 듯 마음이 들썩이고 조바심이 인다. 겉이 번듯하면 속도 완벽할 것이라는 믿음, 좁쌀만 한 흉터 하나로 그 복숭아 전체의 생애가 줄줄이 불량이 되고 말았다.
알고 보면 상처 난 그 복숭아 한 알에도 그들 삶의 내력과 사연이 고스란히 담겨 있을 것이다. 누구의 보호막이나 손길도 없이 한설과 폭염을 홀로 견뎌내며 잎도 열고 꽃도 피워냈을 테다. 가뭄에 목말라도, 기름진 땅이 부러워도 처음 싹 튼 제자리를 탓하지도 않았다. 보아주는 이 없어도 스스로 최선을 다하고, 알아주는 이 없어도 자기에게 주어진 삶에 온 힘을 다해 살아가는 것은 우리네 인생사와 다를 바가 없다. 그 노력과 수고만으로도 열매의 풍미와 감동은 충분한 것이다.
장점보다 결점 찾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좋아하는 느낌보다 좋아하지 않은 이유 대기가 더 쉬웠던 탓이다. 물건을 고를 때마다 그 내용과 용도에 집중하지 못하고 속지 말아야지, 손해 보지 말아야지 경계심부터 앞섰다. 흠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는, 숨겨진 결점을 찾아내야만 비로소 제 깜냥을 한 것 같은 강박관념 같은 거였다.
사람 사귐도 그랬다.
처음에는 설렘과 반가움으로 다가갔다. 첫인상이라거나 풍기는 겉모습에 반한 탓에 속마음은 보나 마나라는 식이었다. 숨겨둔 인연을 만난 듯 하루가 멀다며 열성을 보였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금방 시들해지고 말았다. 한 마음, 한 뜻인 줄 알았던 상대에게 어느 순간부터 흉과 흠을 들추기 시작했다. 포장지를 뜯어보니 엉뚱한 물건이 배달된 것처럼 실망과 불만은 늘어가고 미워하고 원망하는 일이 잦아졌다.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모든 것이 흠집이었다.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삶의 논리와 의지가 있을 것인데 무엇이든 내 방식, 내 입장, 내 가치대로 판단의 잣대를 들이대었다. 옳으냐 그르냐가 아니라 나에게 좋으냐 나쁘냐의 문제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상처를 받는 것도, 손해를 보는 것도, 자존감이 상하는 것도 나에게만 국한되는 일이었다. 나에게 도움이 되고,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는 관계가 아니라면 구멍 숭숭 뚫린 복숭아처럼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세상살이가 언젠가부터 속도와 효율을 앞세우고 완벽과 무결점에 길들여진 것 같다. 작은 실수나 허물도 너그러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단순한 잘잘못도 옳고 그름을 가려야 성미가 풀린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며 아쉽고 미더운 한 부분을 두고 그 사람의 인생 전체를 무능하게 취급하려 들곤 했다. 어쩌면 나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 아니라 무릉도원 같은 상상 속의 인간관계를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벌은 꿀을 딸 때 꽃을 가리지 않는다고 한다. 벌에게 중요한 것은 꽃이 아니라 꽃이 지닌 꿀이기 때문이다. 미추나 미백의 겉모습이나 황홀하고 고급스러운 향내로 사람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대신할 수는 없다. 사람은 눈비음에 약하고, 세상에는 미인계라는 말도 있지만 그 마음이나 그 영혼을 사랑하게 되면 껍질은 한낱 속살 가리개에 불과할 뿐이다.
흉을 보고 흠집을 들추던 그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고 보면 대부분 오해나 실수에서 나온 일들이었다. 선입견과 차별, 순간의 감정이나 편견의 장애물이었을 뿐 그 본질에 있어서는 약점도, 단점도 아니었다. 어쩌면 틀림과 다름의 경계였는지도 모른다. 모딜리아니의 눈동자 없는 인물화처럼 그 사람의 영혼을 느끼지 못하고 내면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눈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복숭아 맛이 궁금해진다.
한 소쿠리 따온 복숭아를 대야에 물을 부어 담가놓는다. 흠집이었던 그 구멍들 속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꼬물꼬물 벌레들이 분홍빛 알몸 위로 기어 나온다. 숨이 막혔으리라. 낯선 세상을 만난 당혹의 아우성이다. 물을 비워, 그들은 그들의 삶으로 돌려보낸다.
복숭아 한 개를 입에 가져가 본다. 달고 부드러워, 수밀도가 따로 없다. 장독보다 장맛이라더니, 맛도 향도 자연 그대로의 속성이었으니 새와 벌레들도 이를 알고 먼저 찾았으리라. 입가를 흐르는 과즙의 향기가 노을빛 알갱이가 되어 눈앞에 떠다닌다.
어두운 밤에 눈감고 먹는 복숭아가 미인을 만든다고 한다. 겉보다 속이라는 뜻일 게다. 벌레 먹은 복숭아처럼 흠집조차 내 안에 숙성시켜 다디단 과즙으로 만들어내야 할 일이다.
[허정진]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
저서 : [꿈틀, 삶이 지나간다]
[그 남편, 그 아내]
[시간 밖의 시간으로]
[삶, 그 의미 속으로]
천강문학상 수상
등대문학상 수상
흑구문학상 수상
선수필문학상 수상
원종린수필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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