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인문기행] ′스투파의 숲′에서 남인도를 만나다

여계봉 선임기자

 

몇 년 전, 불교 4대 성지의 하나인 인도 사르나트의 녹야원(鹿野園)에서 초원 위에 우뚝 솟은 직경 28m, 높이 43m의 다메크 스투파(Dhamek stūpa)를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이 대탑은 마치 둥근 언덕이나 거대한 왕릉을 연상시키는데, 탑을 둘러싼 벽면에는 아름다운 조각들이 장식되어 있어 탑을 돌면서 셀 수 없이 많은 인도의 신과 석가모니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 

 

작년 12월 22일 부터 우리나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스투파의 숲, 신비로운 인도이야기>는 끓어오르듯 뜨겁고 활기찬 나라, 남인도에서 온 생명력 넘치는 신들과 석가모니에 관한 이야기다. 불교 4대 성지가 모두 북인도에 있어 그동안 남인도의 불교 문화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국내에서는 이번 전시가 처음이다. 출품작은 뉴델리국립박물관 등 인도의 12개 기관과 영국박물관 등 유럽 3개 기관,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등 4개국 18개 기관과 개인의 소장품이다. 이 중에는 발굴 후 한 번도 인도 밖으로 나간 적이 없었던 유물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스투파의 숲′에 들면 신비로운 남인도를 만날 수 있다.

 

'스투파'(stūpa)는 불교에서 부처나 훌륭한 스님의 사리를 안치하는 '탑(塔)'을 뜻하는 인도의 옛말로,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의 절반 이상이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4세기 무렵에 남인도에 세워진 스투파를 장식하던 조각이다. 기원전 400년 무렵 석가모니가 돌아가셨을 때, 제자들은 석가모니 시신을 화장하여 얻은 사리를 갠지스강 유역의 여덟 개 스투파에 모셨다. 그로부터 약 150년 뒤,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따랐던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왕은 스투파에서 사리를 꺼내 인도 곳곳에 8만 4천 개의 스투파를 세우게 된다.

 

인도 사르나트의 다메크 스투파(Dhamek stūpa)

 

기원전 5세기, 인도 북부 갠지스강 유역에서 시작된 불교는 수백 년에 걸쳐 남쪽으로 전해졌다. 석가모니의 고향 북인도와는 기후도 풍습도 다른 그곳에서 불교는 생명력 넘치는 신들과 마주치며 새로운 이야기를 이어간다. 기원전 2세기 말, 인도의 첫 통일 왕조 마우리아가 무너진 남인도 데칸고원에는 새로운 왕조 사타바하나가 등장하면서 그들은 새로운 종교인 불교를 만나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 낸다.

 

<석가모니 상징을 담은 스투파>, 1세기경, 인도 아마라바티박물관 

 

전시는 '신비의 숲'과 '이야기의 숲', 두 가지 숲으로 구성된다. 남인도에는 다양한 생태계만큼 전설 속 동물도 많았는데, 물속에서 사는 전설의 동물 마카라는 불교의 자연관과 결합하여 새로운 모습의 상상 속 동물로 다시 태어나 불교의 수호신으로 새로운 자리를 찾아갔다고 한다. 인도 신화에서 풍요로운 자연의 정령이던 약샤(남성형) 혹은 약시(여성형)는 불교가 전해지면서 스투파 장식의 조각으로 등장한 것이다.

 

<보필을 받는 약샤>, 3세기, 인도 아마라바티박물관

 

옛 인도인들은 생명이 태어나서 죽는 삶이 한 번만이 아니라고 믿었고, 북인도 히말라야산맥 아래에서 태어난 석가모니도 깨달음을 얻은 이번 생 이전에 셀 수 없이 많은 인생을 되풀이하며 공덕을 쌓았다. 남인도에 전해진 석가모니의 인생 이야기 속 장면들이 수많은 스투파를 장식하면서 ′이야기의 숲′이 펼쳐진다.

 

<깨닫은 직후부터 첫 설법까지>, 3세기, 인도 나가르주나콘다박물관

 

스투파의 기본 구조는 사리를 둘러싼 원통형 벽 위에 반구형 봉분을 쌓아 올리고 우산 모양의 장식인 산개(傘蓋)를 얹은 형태로, 인도인들은 석가모니의 불상이 아닌 각종 상징으로도 스투파를 장식했다. 보리수 아래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자리를 나타내는 빈 좌대, 꺼지지 않는 태양 같은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상징하는 수레바퀴, 바퀴 무늬가 새겨진 발자국 등이 스투파 장식 조각에 자주 등장하는 상징이다. 남인도에서는 특히 석가모니가 이룬 기적을 상징하는 불을 뿜는 기둥 상징도 나타난다.

 

<태양처럼 빛나는 바퀴>, 기원전 2세기, 인도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이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과 함께 개최하는 이번 전시의 테마는 인도 남쪽에서 온 생명력 넘치는 신들의 미술과 석가모니 이야기다. 2024년 새해를 맞아 따뜻하고 행복한 기운을 듬뿍 받을 수 있는 기회이므로 독자들에게 관람을 적극 추천한다. 관람 시간은 2시간 정도 소요되며, 관람료는 성인 만원으로 오는 4월 14일까지 개최한다. 

 

 

[여계봉 선임기자]

수필가

공학박사

이메일 : yeogb@naver.com

 

 

작성 2024.01.09 09:34 수정 2024.01.09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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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