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산정천리] 순백의 황산에서 운해를 건너다

여계봉

 

72개의 기기묘묘한 봉우리와 24개의 계곡을 지닌 ​황산은 중국 안후이성(安徽省) 남쪽에 위치한 화강암으로 구성된 험준한 바위산으로, 당(唐)나라 때 황제의 명령으로 황산(黃山)임을 공표하고 일반인들의 출입을 통제하였다고 한다. 중국 산수화의 원류이기도 한 황산은 중국 10대 풍경 명승지 가운데 유일하게 산악 명승지인데, 1990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과 문화유산에 동시에 등재되었다. 우리나라 설악산의 약 3배쯤 되는 규모로 외형이 설악산, 금강산과 흡사해서 한국인들이 즐겨 찾는 산이기도 하다.

 

일 년 내내 비가 오고 구름이 끼는 날이 많아 산 정상에서 보면 마치 구름바다(雲海)처럼 보여 동서남북과 가운데로 나누어 동해(東海), 서해(西海), 남해(南海), 북해(北海), 천해(天海)라고 부른다. 황산의 5대 비경은 소나무, 기암괴석, 운해, 눈(雪), 온천이다. 사계절 내내 모두 아름답지만 그중에서도 겨울눈과 운해가 절경이다. 

 

순백의 겨울 황산

 

황산 시내에서 출발한 버스가 경대고속도로에 올라서니 가는 눈발이 휘날린다. 기사는 황산 현지와 휴대폰으로 계속 날씨를 파악하고 있는데 황산에도 눈이 오고 있어 시계가 좋지 않을 거라고 한다. 1시간 만에 고속도로를 빠져나온 버스는 본격적으로 황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경사가 급한 산길은 눈이 쌓여 있고 눈발도 휘날려 버스기사도 조심스럽게 운전한다. 버스 속은 나지막한 탄성과 함께 얕은 긴장으로 가득하다. 송곡암 매표소에 도착하니 버스는 더 이상 오르지 못하고 체인을 감은 전용버스로 옮겨 탄다. 치기 어린 젊은 기사는 케이블카 탑승장까지 눈길 속에서 스릴 넘치는 곡예운전으로 버스 속에 탄 사람들을 질겁하게 만든다. 

 

황산을 오르는 데는 운곡, 태평, 옥병 케이블카 등 세 군데가 있는데, 우리 일행은 황산 뒷산 쪽인 송곡암에서 태평케이블카를 타고 배운정, 비래석, 광명정 등 절경을 감상하고 몽필생화, 흑호송, 시신봉을 거쳐 백아령에서 운곡케이블카를 타고 하산하는 10km 코스를 이동하기로 한다. 

 

태평케이블카 탑승장에서 금속탐지기로 휴대품 검사를 한 후 케이블카를 타고 단아역까지 올라간다. 운무와 휘날리는 눈발로 시계는 제로 상황이다. 잔뜩 화려한 선경을 기대하고 태평케이블카 창가에 기대고 선 일행들의 표정이 출발부터 굳어 있다. 단아역에서 내려 우측으로 가면 황산의 숨겨진 비경인 서해대협곡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24개 협곡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데 천 길 낭떠러지를 내려다보는 비경에 감탄사가 절로 터지는 곳이다. 협곡 아래로 5km 정도 내려가면 모노레일역이 있어 5분 만에 광명정 방향으로 올라가면서 황산 속살의 비경까지 감상할 수 있다. 그러나 겨울에는 잔도가 가파르고 미끄러워 협곡으로 내려갈 수 없고, 모노레일도 운행하지 않는다. 

 

깊은 동면에 빠진 서해대협곡

 

서해대협곡 입구에는 거대한 두 개의 바위가 ‘좁은 문’처럼 버티고 있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수 있는 만큼만 열려 있는데, 왜 그럴까. 바위 밖에서 욕심의 체중을 감량하고 들어오라는 말없는 바위의 경책인 성 싶다. 겨울에는 서해대협곡이 출입통제 중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았건만 막상 싸늘한 철창으로 막힌 동굴 입구를 보니 다리 힘이 빠진다. 하지만 자연이 주는 보상인가. 그동안 짙은 운무와 눈발로 가려졌던 계곡의 시계가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면서 일행들로부터 탄성이 터져 나온다. 직벽의 암반에 단단하게 뿌리를 내린 소나무. 설화를 피워낸 바위산 허리를 운무가 감싼다.

 

황산은 인간 세상에 있는 신선계의 풍경(人間仙境)이라고 불릴 만큼 수려한 경관을 자랑한다. 신비한 봉우리와 서해 대협곡의 아찔한 비경을 보고 숱한 시인과 묵객들이 시와 그림을 남긴다. 운해 속에 흰 눈을 머리에 이고 있는 황산의 화강암 봉우리와 바위들, 그리고 소나무가 어우러져 연출하는 풍경은 과연 여기가 선경이라는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운무가 걷히면서 바람도 잠잠하여 눈꽃 맞으며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벼랑 위에 만든 아찔한 ​잔도를 걸으며 일상에 찌든 속세의 번뇌를 협곡 속으로 던져버리고 기암괴석과 기송의 정기를 가슴에 가득 담아본다.

 

 마치 신선계를 연상시키는 설국 황산 

 

배운정은 시야가 확 특여 황산의 기암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명당이다. 구름과 안개가 서해의 골짜기들을 휘감아 솟아오르다가 이곳에 이르면 저절로 갇혀져서 물리칠 배(排)에 구름 운(雲)을 써서 배운정이라 부른다. 배운정에서 바라본 서해대협곡은 맺고 이어진 주변 산세가 마치 용의 모습, 흐르는 듯 멈춘 듯 솟은 듯 숨죽인 듯 쉬는 듯 꿈틀대는 운무....

이를 내려다보니 걷지 아니면 갈 수 없고 보지 아니면 맛볼 수 없는 환희심이 사방에 걸쳐 있는 듯하다. 서해대협곡에 솟아 있는 기암괴석들을 보면 금강산 만물상을 몇십 개 포개 놓은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황산의 4대 비경인 기암, 소나무, 운해 그리고 눈(雪)

 

신이 빚은 기암괴석 바위틈에서 수백 년 삶을 지탱해온 소나무, 수묵화를 연상하는 운해. 나그네는 황산 서해대협곡의 비경을 쉴 새 없이 찬탄한다. 작은 정자 지행정(知行亭)에서 ′아는 것을 행해야 참지식이다.'를 되뇐다. 정자 지붕에 얹힌 눈을 문득 쓸어가는 바람결이 예사롭지 않다. 나그네의 헛욕심도 바람결에 씻기고 있다. 황산의 기암괴석 중 대표 격인 비래석(飛來石)은 하늘에서 날라 와서 박힌 돌 모양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광명정 서쪽, 배운정 남쪽에 있는 높이 12m, 무게 약 600t의 거석이다.

 

황산을 대표하는 기암 비래석

 

순백의 설화를 피어낸 기송(奇松)은 황산의 독특한 지형과 기후로 인해 생겨난 변형된 소나무인데, 해발 800m 이상 돌 틈에서 뛰어난 생명력을 가지고 자란 나무다. 두 번이나 황산에 오른 명나라 지리학자 서하객(徐霞客)은 ″5악인 태산(泰山), 화산(華山), 형산(衡山), 항산(恒山), 숭산(嵩山)을 보면 다른 산이 생각나지 않는데, 황산을 보고 나면 5악도 생각나지 않는다.″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백운빈관 삼거리에서 광명정까지 약 30분간 급경사의 계단 길을 올라야 하지만 설국에서 혼미해져 힘든 줄도 모르고 정신줄을 놓고 오른다. 광명정에 서면 황산의 일출과 일몰, 서해대협곡과 정상인 연화봉까지 모두 조망할 수 있으나 오늘따라 운무에 잠긴 기상대 건물만 어렴풋이 보인다. 황산 제2봉인 광명정(1,860m)은 겨울에는 오르지 못하는 제1봉 연화봉(1,864m)을 대신하여 정상 노릇을 하고 있다. 

 

황산 제2봉 광명정

 

재선충병 때문에 죽어가던 황산 소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황산 주변 10km 근방에 있는 소나무를 모두 제거하였더니 그 자리에 자연스럽게 대나무들이 자라게 되었고, 항균성이 강한 대나무 덕분으로 재선충병이 황산에 접근하지 못해 황산 소나무들이 안전해졌다고 한다. 기암괴석에 둥지를 튼 울울창창(鬱鬱蒼蒼) 황산 소나무는 산자락은 하얀 구름바다에 치마폭을 담그고 있다.

 

산 아래에서 산정의 호텔까지 40kg가 넘는 짐을 메고 나르는 ​짐꾼들은 약 4시간 걸려서 올라오는데 이들이 내는 거친 숨소리에 가지에 달린 잔설도 덩달아 흐느적거린다. 고도 1,500m가 넘는 이곳에는 북해빈관을 비롯하여 서해빈관, 사림빈관, 백운빈관 등 네 곳의 호텔이 있다. 북해빈관 수 백석 대형 식당 내부는 손님들로 가득하다. 산정까지 일일이 식재료를 짊어서 나르는 짐꾼들 정성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깨끗이 그릇을 비운다. 북해빈관 아래에는 붓끝 모양을 한 한그루의 소나무 몽필생화(夢筆生花)가 서 있다. 봉우리 꼭대기의 소나무는 오래전에 죽어 한동안 모조품으로 대체하였다가 새 소나무로 식재하였다고 한다.

 

바위 위에 홀로 핀 몽필생화

 

흑호송(黑虎松)은 마치 검은 호랑이가 언덕에 엎드려 있는 모습을 닮았다하여 소나무에 붙여진 이름이다. 흑과 백의 조화가 절묘하다. 나무도 숲도 계곡도 하늘도 일체가 묵언에 들어 있다. 백아령 가는 잔도를 걸으면 세속에 찌들었던 몸과 마음이 설국에서 깨끗이 헹구어지는 기분이다. 불구부정(不垢不淨). 사실 우리의 생각이 변덕을 부릴 뿐 본래 더러운 것도 깨끗한 것도 없는 것이 아니던가. 

 

 황산을 대표하는 소나무 흑호송

 

순백의 무릉도원에서 바람의 기척인가. 잎사귀에 핀 설화가 나비처럼 흩날려 내린다. 문득 솔향기도 유난히 코끝을 스친다. 깊은 산중에 숨어 있어도 골짜기를 타고 흐르는 자신의 향기는 숨길 수 없는 것처럼. 백아령 잔도에는 산하의 수목들이 머릿결을 살랑거리고 가지에 담긴 하얀 눈꽃이 난분분 난분분 떨어지니 오늘따라 바람이 오히려 고마울 뿐이다. 

 

백아령에서 운곡케이블카를 타고 하산한다. 운해를 뚫고 발아래로 펼쳐지는 비경은 그야말로 선경이다. 황산의 바위틈에서 천년을 살아온 소나무를 보면 자연의 위대함에 보잘것없는 나를 되돌아보게 되고, 이들로부터 인고의 지혜를 배운다. 발아래로 보이는 기암괴석 봉우리마다 걸쳐 있는 운해는 가히 절경이다. 이 골짝 저 골짝에서는 안개가 자욱하고 허연 구름장이 산허리에 감긴다.

 

봉우리에 걸친 운해

 

오늘 우리가 걸었던 황산의 잔도는 뱀처럼 구불구불한 원만한 곡선이다. 덜컹거리는 사각이 번뇌라면 원만한 원은 해탈이다. 오늘 하루 번뇌에서 해탈한 신선이 되어 선계(仙界)의 꿈결 같은 구름바다를 거닐었던 신선놀음도 케이블카가 운곡승강장에 도착하면서 끝이 난다. 굽이굽이 산길을 돌아 황산 대문에 도착하니 이제서야 꿈과 이상의 판타지 구운몽(九雲夢)에서 깨어난 것 같았는데 시간은 겨우 두 나절만 지났다.

 

 

[여계봉 선임기자]

수필가

공학박사

이메일 : yeogb@naver.com

 

작성 2024.01.27 10:09 수정 2024.01.27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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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