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식 칼럼] 도리도리 문화

김관식

“도리도리”는 어린이들에게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대면서 도리질을 시킬 때 하는 말이다. 돌 무렵의 어린아이가 너무 귀여운 나머지, 어른이 고개를 흔들어 대면서 “도리도리 깍꿍”하면서 어린아이와 소통을 시도한 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도리질하는 어른의 몸짓을 어린아이가 보고 그대로 따라서 몸짓 흉내를 내기도 하고, “까르르” 웃음을 터뜨린다. 그때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의 웃음은 어른들을 동심의 세계로 안내한다.

 

이처럼 어린아이가 기분이 좋았을 때 도리도리의 몸짓은 어른들을 동심의 세계로 끌어들이지만, 어린아이가 배가 고프거나 기분이 언짢았을 때 도리질하면, 동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없다. 어린아이와 어른이 서로 교감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상대가 먼저 우호적인 말과 몸짓으로 친근감을 보이면, 아직 말로 소통이 불가한 어린아이까지도 웃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도리도리”는 어린아이와의 서로 교감을 나누기 위해 하는 말과 몸짓이기도 하지만, 고개를 흔들어서 도리도리의 몸짓을 한 어른은 고개 운동을 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어린아이가 어른의 몸짓을 따라 도리도리하면서 까르르 웃음을 터뜨린다면, 어린아이도 고개 운동을 하게 되는 셈이 된다. 따라서 도리도리하며 고개를 흔들어 대는 몸짓은 서로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하게 된다. 그러므로 서로 소통하게 되고, 친밀감을 형성해 주어 긍정적인 교감이 이루어지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며, 그에 부수적으로 혈액의 순환장애를 해결해 주는 등 이중의 건강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반면에 도리도리 운동을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도리도리의 몸짓은 “아니다”라는 강한 부정의 몸짓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어릴 때부터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게 부정적인 몸짓으로 부정적인 세계관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고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린아이와 어른의 긍정적인 소통과 교감은 긍정적인 행동이다. 나중에 사회화를 거치면서 부정의 몸짓으로 바뀌게 될지 모르지만 어릴 때 도리도리의 경험은 긍정적인 인성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처럼 도리도리는 사회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부정의 표현으로 바뀌게 되는데, 도리도리를 운동 목적으로 하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할 때 이러한 행동을 보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강한 부정으로 인식할 때 행위자의 의도와는 달리 받아들이는 쪽이 전혀 정반대로 해석할 때 오히려 역효과로 빚게 되고, 소통이 불가한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런 현상들을 우리는 생활 주변에서 많이 나타나게 된다. 사람마다 경험이 모두 다르다. 나라마다 지방마다 또는 시대에 따라 성별에 따라 생활문화가 달라짐으로 공유된 생활문화를 이해하려면 각각의 사회화 과정을 알지 못하고서는 소통이 불가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문화 습성이 우월하므로 자신의 문화 습성대로 따라야 한다는 것은 일종의 문화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문화 상대주의 사고가 필요한 것이다. 

 

문화 상대주의란 문화 절대주의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문화와 문화의 산물을 각각 해당 문화를 누리는 사람들이 이룩해 놓은 사고와 생활방식, 지혜의 모음이므로 모든 문화는 각각 자기 자신만의 고유한 가치를 갖고 있으므로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즉 모든 문화는 고유한 환경에 대응하면서 얻게 되는 한 사회의 경험과 지식의 총체이며 존재 이유와 가치를 가지고 있다. 어떤 특정 문화의 우월성이 아닌 여러 나라나 집단의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해 주고, 한 문화는 그 문화가 처한 환경이나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작게는 사람에 따라 자라온 환경이 다르므로 문화습성도 달라 같은 상황일지라도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른 행동이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때 상대의 문화습성을 무조건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상대의 행동을 무시하고 자신의 습성만을 우월한 것으로 고집하는 문화 절대주의 입장만을 고수하게 된다면, 다른 사람과의 소통이 어렵게 될 것이다. 상대를 이해하고 소통하려면, 상대의 문화습성을 존중해 주어야 서로가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지는 법이다. 

 

한 가지 예로 우리나라와 일본의 음주문화를 보면, 우리나라는 상대방에게 술을 권할 때 술잔에 가득 술을 따라 잔을 비우게 권한다. 남김없이 술잔을 비우면, 또 술잔에 술을 부어 술잔을 비우기를 권한다. 그러나 일본의 술 문화는 술잔에 술을 부어 주면, 자신이 마실 만큼만 마시고 그대로 놓아두면, 다시 채워주는 것이 술 문화이다. 자신이 마시기 싫으면 술잔을 비우지 않고 그대로 두면 되고 비우면 따라 주며 강제로 권하지 않는 음주문화이다. 

 

이는 마치 우리나라의 경우 제사 지낼 때 첨작하는 것과 유사한 것을 만약 “술잔 빨리 안 비우고 뭐 하는 거요, 제사 지냅니까?”라고 우리나라의 음주문화를 강요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주는 문화 절대주의의 행동일 것이다. 이처럼 일본의 음주문화를 제사의 첨작 문화라고 비난한다면, 일본인과 한국인이 좋은 관계를 맺고자 갖은 술좌석이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되고, 오히려 서로 오해와 불신의 장벽을 쌓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이와 유사한 문화습성에 대한 충돌은 다문화가정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다. 문화습성이 다른 외국 여성이 우리나라에 시집을 우리나라의 문화습성을 잘 몰라서 실수를 저지르는 일이 많을 것이다. 그것을 문화 절대주의 입장으로 몰아붙이면, 외국 여성에게 스트레스를 주게 되고, 결국에는 가정생활에 불화가 끊이질 않게 될 것이다.

 

도리(道理)라는 말은 “사람이 마땅히 행동해야 할 바른길”이라는 뜻이 있다. “도리도리”는 이러한 바른길을 되풀이해서 강조하는 말로 해석한다면, “도리도리”의 문화는 사람이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바른길을 걷으라는 긍정적인 문화습성을 강조하는 문화로 해석하면 좋겠다. 도리도리 고개 운동으로 혈액 순환장애를 해결하여 건강한 생활도 하고, 망각한 도덕성을 일깨워 주는 죽비 같은 긍정적인 문화로 받아들인다면 성숙한 사회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될 것이다.

 

요즈음 출산율이 낮아져 주위에서 어린아이를 보기가 어려워진 현실이다. 어린아이와 눈 마주치며 “도리(道理) 도리(道理)” 고개를 흔들어 볼 수도 없다. 만약 그런 기회가 있어 천진한 어린아이가 “도리(道理) 도리(道理)”하고 고개를 흔들어 대는 몸짓에 까르르 웃는 반응 보일 때 순수한 동심의 세계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그 순간만큼은 도리(道理)가 살아나는 행복감을 느낄 것이다. 

 

우리 사회도 서로 “도리도리” 고개를 흔들어 대는 운동을 일상화하면 좋겠다. 그래서 뻣뻣한 고개로 목에다 힘을 주고 다니는 사람들에게 도리를 깨우쳐 주면 좋겠다. 순환장애의 고개인 줄 모르는 사람들의 뻣뻣한 고개를 부드럽게 누그러뜨리게 해서라도 건강하게 도리를 다하는 동심의 몸짓이 일상화되는 사회가 이룩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할 뿐이다.

 

 

[김관식]

시인

노산문학상 수상

백교문학상 대상 수상

김우종문학상 수상

황조근정 훈장

이메일 : kks41900@naver.com

 

작성 2024.02.12 09:39 수정 2024.02.12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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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