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시대는 상상력 시대이다. 아직 문예 창작의 근원을 영감설, 천재(영웅)설, 무의식설에서 찾는 문인이 의외로 많다. 특히 기독교(천주교, 개신교)를 믿는 문인 가운데 영감설을 고집하는 사례가 많다. 이런 비뚤어진 신앙심을 표출하는 문인을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시대이다.
이들은 “나는 시를 쓸 때, 기도한다. 하나님께서 계시한 시를 그대로 받아 적는다.”라며 영감을 주장한다. 얼토당토않은 신비주의 신앙을 표출한다. 무속인 흉내를 낸다. 독하게 말하면 교회 속 무당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자들은 그게 진리라고 말한다.
이들은 자신이 성경 저술자보다 더 위대한 시인이라고 거들먹거린다. 주변 시인들에게 성경무오설(聖經無誤說)의 축자영감설(逐字靈感說)을 주장하듯 “내가 영감을 받아 창작한 시는 한 자도 오류가 없다.”라며 거품을 물고 눈을 부라리며 시비를 건다.
때로는 전화를 걸어 영감을 주장하며 비이성적 논리로 합리화를 시도한다. 이를 옹호하지 않는 시인에게는 쌍스러운 말을 내뱉기도 한다. 이간질을 서슴지 않는다. 영감설은 오래전 문예 창작 이론에서 퇴물로 밀려났다. 이를 외면한 채 비뚤어진 종교관을 앞장세운다.
이들은 주변 다수의 문인에게 싸움닭처럼 수시로 공격한다. 신앙심도 인성도 꼬깃꼬깃 접힐 대로 접혀 치유 불가 상태이다. 이들이 속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교단은 성경무오설은 인정하지만, 축자영감설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성경 기록의 축자영감설을 거부하는 교단이 허풍선이 시인의 열등감 방어기제 작동을 허용할까? 허영심의 그림자가 표출한 교만한 심리 투사를 인정해 줄까?
축자영감설이나 유기적 영감설을 인정하는 교단의 공통점은 성경 저술에 한정하여 인정한다. 예술 창작 행위는 하나님의 계시나 영감과는 무관하다. 이는 개별자의 인성(주체성, 자율성, 타자성, 지성, 성품 등) 영역이다. 믿음이 충만한 자의 창작 행위라도 하나님이 특별히 계시나 영감을 선물하지 않는다. 기독교는 구복(求福) 신앙이 아니다. 복을 달라고 기도한다고 복을 주지 않는다. 이게 성경의 진리이다.
창작 행위에 하나님의 영감을 주장하는 자들은 무속인이나 다름없다. 이들은 가짜 교인이라서 하나님 신성의 영역에 인간의 감정을 대입한 월권행위임을 자각하지 못한다. 이는 신성 침범 행위이다. 쉽게 말하면, 신성불가침의 영역에 도전하는 행위이다.
하나님의 계시나 영감으로 쓴 시라면 성경의 무결점, 무오류처럼 영적 수준이 최상위여야 한다. 이들의 시를 읽어 보면, 오탈자가 수두룩하다. 이들은 한글맞춤법, 문법도 모른다. 무식하니까 이런 주장을 한다. 타인의 힘을 빌려 시인 행세한다. 또한, 그들의 말이 맞는다면, 성경의 시편만큼 신앙적 감동과 예술성을 갖추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습작에 불과하다. 하나님을 팔아먹는 가짜 믿음의 넋두리에 불과하다.
문예 창작 이론 측면에서 이들의 주장을 수용할 수 있을까? 한마디로 ‘헛소리’이다. 두 마디로 말하면, ‘가짜 시인’이다. 이들이 속한 교단에서는 수용할 수 있을까? 수용하는 순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도 가짜임을 인정하는 꼴이다.
[신기용]
문학 박사.
도서출판 이바구, 계간 『문예창작』 발행인.
대구과학대학교 겸임조교수, 가야대학교 강사.
저서 : 평론집 7권, 이론서 2권, 연구서 2권, 시집 5권,
동시집 2권, 산문집 2권, 동화책 1권, 시조집 1권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