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 기관장이 28세의 젊은 나이에 원양어선 기관장이 될 때까지 여러 사고가 있었지만,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슬기롭게 대처했고 어느덧 1년이 지났다. 따라서 6항차를 마치면 중간 정산을 하여 적지 않은 돈을 아내에게 줄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아울러 그동안 외롭고 쓸쓸했을 아내에게 약간의 보상이라도 되겠다는 부푼 가슴으로 6항차의 종료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항차 종료를 앞두고 선장은 어창魚艙을 채우기 위해 본선의 조업지역인 모로코해역을 벗어나 조업 라이센스가 없는 모리타니 해역으로 넘어가서 월경조업을 했다. 그곳에서는 불그스레한 색깔을 띤 탐스러운 대형 돔이 엄청나게 올라왔다. 그토록 많은 돔을 어획해 보기는 처음이었다고 그 당시를 회상하며 한 잔의 소주잔을 비운다.
워낙 많은 양의 돔을 어획했기에 본선의 냉동능력이 부족해 처리가 불가능하여 아래쪽에 보관된 돔은 썩어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니 정 기관장이 선장에게 건의했다.
“어창이 이 정도 찼으니 지금 기지로 돌아가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지만 선장은 마치 물 만난 고기 마냥 밤이 새도록 투망과 양망을 반복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욕심이라는 사실도 잊은 채 그물은 바닷속으로 계속 자맥질을 하고 있었다.
조업이 연속되는 동안 정 기관장은 엄습해 오는 피곤함으로 인해 이른 아침에 침실에서 잠시 눈을 부치고 있었다. 그 시간에 갑자기 주기관의 요란한 오버스피드 소리를 듣고 갑판으로 나가보니 본선은 급히 그물을 올리고 전속력으로 도주를 하고 있었다. 모리타니 해상경비정에게 무허가 조업이 발각되어 쫓기는 신세가 된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의 도주는 불가능했다.
본선은 12노트의 속력인데 반해 경비정은 30노트의 속력을 가진 빠른 배였다. 한 시간 안에 잡히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쌍안경으로 바라보니 경비정은 먹이를 발견한 독수리처럼 날카로운 눈빛을 번뜩이며 재빠른 날갯짓으로 본선에 점점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경비정의 갑판에서는 기관총의 덮개를 벗겨내고 있었다.
멈추지 않고 계속 도주하면 총기 사격을 가할 것이라는 생각에 아찔했다. 만약 경비정이 사격을 시작하면 조타실부터 총알을 쏟아부을 것이니 선장과 항해사들의 생명은 보장되지 않는다. 선장은 제정신이 아니었고 아무도 정선 의사를 꺼낼 수 없었지만, 정 기관장이 선장에게 말했다.
“정선을 하는 것이 맞다. 우리의 이번 조업 운은 여기서 접어야 할 것 같으니 운명에 맡겨 보자.”
정선을 했다. 그리고 허탈하고 절망감에 빠진 본선으로 흑인 군인들이 올라왔다. 피부색이 검고 강렬한 인상을 가진 군인들은 자동소총에 실탄을 주렁주렁 걸치고 조타실을 장악했고 경비정을 따라가자고 했다. 불행 중 다행이었던 것은 인명피해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 당시 한국 어선들이 불법조업을 하다가 모리타니 경비정으로부터 총격을 받아 부상을 입은 선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한국 트롤 어선 수백 척이 불법조업을 하다가 경비정이 출현하면 각기 사방팔방으로 흩어져 전속력으로 도주한다. 그 과정에서 경비정이 대포를 쏘는 것을 목격한 적도 있었다고 말하는 정 사장은 급박했던 그 당시의 상황을 삭이느라 소주로 목을 축인다.
마침내 정 기관장이 승선하고 있는 배가 불법조업으로 나포된 것이다. 그 당시 한국의 원양어선들은 스페인 라스팔마스에 기지를 두고 북쪽으로는 모로코, 모리타니, 세네갈, 가나 그리고 앙골라 등지에서 수백 척의 어선들이 조업하고 있었다.
모리타니 해군기지가 있는 누아디브를 바라보며 나포되어 가는 심정은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지고 있었다. 단순하게 벌금만 내고 무사히 풀려날 수 있을까? 아니면 배도 압류당하고 생사마저 위태로울 수 있을까? 가족을 영영 보지 못할 것인가? 한국을 떠날 때 눈물지었던 공항의 가슴 저렸던 이별이 마지막인가? 라는 생각에 이르자 정 기관장의 볼에는 어느새 뜨거운 액체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포되고 하선을 당한 선원들의 눈에는 조업시에 멀리서만 바라보았던 사하라사막이 가까이에 다가와 있었다. 주위는 온통 모래언덕이었고 모래바람이 불기라도 하는 날이면 입안에서 사각사각 모래 씹히는 소리가 나기도 했다.
본선을 나포한 그들은 먼저 선장과 기관장을 해양경찰서 유치장에 가두었다. 책임자는 소령 계급장을 달고 있었으며 권총을 휴대하고 있었다. 다른 감시병은 자동소총을 어깨에 걸치고 있었다. 선원들은 마치 전쟁터의 포로 같았다. 유치장 감시병에게 부탁하여 배에 가서 샤워라도 하고 오겠다니 감시병은 소총을 들고 동행을 했다. 샤워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판단한 감시병은 총부리를 샤워장으로 불쑥 겨누기도 했다. 인권이나 정당한 대우를 기대하기 어려운 아프리카의 사정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이렇게 선장과 정 기관장은 피의자 신분이 되어 기약 없는 수감생활이 시작되었다. 나머지 선원들은 선내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게 했다.
[김태식]
한국해양대학교 대학원
선박기관시스템 공학과 졸업(공학석사)
미국해운회사 일본지사장(전)
울산신문 신춘문예(등대문학상) 단편소설 당선 등단
사실문학 시 당선 등단
제4회 코스미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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