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포해전지는 마산 월영대 인근 합포만 일대

임진왜란 직후 경상도 관찰사를 했던 이민구의 동주집(東州集)에 기록

월영대(月影臺)​

 

월영대(月影臺)​

 

이곳은 신라 말 문창후 최치원이 해인사로 들어가기 전에 말년을 보내면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장소이다. 지금은 해안이 매립되어 옛 모습을 잃었지만, 옛날에는 이곳의 바로 아래에 백사장이 있어서 합포만의 아름다운 경치를 그대로 즐길 수 있었다.

 

이곳에는 해서체로 '월영대(月影臺)'라고 쓴 2.1m 높이의 비석이 있는데, 선생이 직접 쓴 것이라 한다. 본래 이 비석의 앞·뒷면에 글씨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심하게 마모되어 알아볼 수가 없다.

 

1691년(숙종 17)에 최위가 창원도호부사로 부임하여 이곳을 정비하고 중수비를 세웠다. 또 1932년에는 최씨문중에서 선생의 추모비와 비각을 세웠다고 한다.

 

선생은 12세에 당나라에 유학하여 18세에 그곳에서 과거에 급제한 다음, 관직 생활을 하였다. 885년 28세 때 귀국하였으며, 894년 (신라 진성여왕 8)에는 '혼란한 시국을 개혁하기 위한 10개조 (時務十條)'의 개혁안을 마련하였다.

 

선생이 죽은 뒤 이곳은 선비들의 순례지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선생의 학문을 흠모하였다. 월영대는 경남대 정문 앞의 창원시 마산합포구 밤밭고개로 442에 있다.

 

임진왜란 직후 경상도 관찰사를 지낸 이민구(李敏求,1589~1670)는 그의 문집 동주집(東州集)에서 이곳 월영대 근처의 합포(合浦)가 왜적을 물리친 곳(합포해전)이라고 했다. 이민구는 지봉유설을 쓴 실학자 이수광의 아들이다. 그는 경상도 관찰사로 재임할 당시 월영대를 방문했으며, 부(賦)의 형식으로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합포해전 부분만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회산은 마음의 상처 많았던 곳이라 / 檜山秀其情刃兮
군부가 지휘부를 옮겼네 / 軍府移其牙纛
둔영이 합포에 임하고 있으니 / 屯營臨乎合浦
일찍이 물길 익혀 적을 물리쳤네 / 曾習流而九伐​

 

회산(檜山)은 현재의 창원시 마산합포구와 회원구 일원의 옛 이름이다. 군부가 지휘부를 옮긴 것은 임진왜란 당시 경상우병영이 합포에서 진주로 옮겨간 것을 말한다. 둔영이 합포에 임하고 있다는 것은 경상우병영이 합포에 있었다는 말이며 합포만에 접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일찍이 물길 익혀 적을 물리친 것은 이순신 장군이 이곳 합포에서 왜적을 물리친 것으로 해석된다.

 

 

[이봉수]

이순신전략연구소장 
https://yisoonsin.modoo.at

 

 

 

 

작성 2024.03.10 11:14 수정 2024.03.10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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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