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산정천리] 천년불심 서린 산길 따라 오른 순천 조계산

여계봉 선임기자

소동파가 '봄밤 한 시각은 천금 값(春宵一刻値千金)'이라고 했듯 짧은 봄날을 소중히 여기고 고맙게 누릴 일이다. 부드러운 바람이 살랑이고 만물이 소생하는 봄의 문턱이다. 여러 색으로 수놓아진 봄의 들판, 겨울의 무채색을 화려하게 단장해주는 봄꽃의 향연을 감상하기 위해 순천 조계산으로 향한다.

 

전남 순천시 승주읍과 송광면, 주암면에 걸쳐 있는 조계산(曹溪山·887.1m)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남도의 명산이다. 맑은 물이 흐르는 산중 계곡과 넉넉한 품을 자랑하는 육산(肉山)으로 산세는 험하지 않고 넉넉하며, 산자락에는 한국 불교의 양대 산맥이라는 선암사와 송광사를 품고 있다.

 

선암사 주차장에서 느릿느릿 길을 나선다. 매표소를 지나 1㎞ 남짓 걷는 길이 호젓하다. 평탄하고 널따란 길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전국 최고의 명상로로 선정될 만큼 울창하다. 얼마간 더 오르면 아름다운 아치형 석조다리가 시선을 붙잡는다. 조선 숙종때 축조한 전통 석조 홍예교인 보물 제400호 ′승선교(昇仙橋)′다. 다리 너머 오른쪽에 보이는 누각은 신선이 내려왔다는 '강선루(降仙樓)'다. 선암사를 찾는 이들이 이 다리를 건너면 오욕과 번뇌를 씻고 선계로 들어서게 된다.

 

무지개다리 승선교 뒤로 강선루가 보인다.

 

태고종의 본산인 선암사는 신선이 내린 바위라는 뜻으로 신라 진흥왕때 아도(阿道)가 비로암(毘盧庵)으로 창건하였다고도 하고, 875년(헌강왕 5년)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했다고 한다. 선암사는 전국의 사찰 중 꽃이 가장 다양하고 많은 절이다. 꽃 피는 산사는 엄숙함이 덜해 들릴 때마다 고향 집처럼 편안하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언제 가도 편안한 절' 이 바로 선암사다. 경내에 꽃이 많지만 조경도 워낙 잘 돼 있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아제아제 바라아제'도 여기서 촬영했다. 

 

정호승의 시 '선암사'에 나오는 ′등 굽은 소나무′ 

 

1,500년 세월의 선암사는 아늑하고 정갈한 절집이다. 시간의 두께가 무거워 단청은 고색창연하다. 파란 하늘 사이로 봄빛 가득한 햇살이 고목을 간질인다. 나무는 참았던 웃음을 마침내 터뜨리자 경내의 다른 꽃들도 그 웃음에 기지개를 펴며 일어나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진정, 봄이 온 것이다.

 

대웅전을 지나 무우전으로 가는 돌담길에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토종 매화 ′선암매(仙巖梅)′가 있다. 수령 300∼600년 묵은 고매(古梅)에서 뿜어내는 향기로 그윽하다. '선암매'란 새하얀 꽃잎에 꽃받침의 색이 유난히 붉고 향이 짙은 홍매화를 가리키는데 오늘이 선암매 꽃 잔치가 열리는 날이다. 워낙 귀한 꽃이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선암사의 토종 매화 선암매

 

매화는 ‘귀로 향을 듣는 꽃’으로 불린다.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만큼 마음이 고요해야 진정한 향기를 느낄 수 있다는 뜻인데, 조선 시대 선비들은 이른 봄에 매화를 찾아다니는 여행을 탐매(探梅)라 부르며 풍류로 즐겼다. 백매화, 청매화, 홍매화 등이 담장에 기대거나 서로 기대어 한나절 푸짐한 햇살에 봉우리들이 활짝 웃기 시작한다. 늙은 나뭇가지와 홍조를 띤 꽃봉오리가 한편의 동양화 같다. 낮은 돌담 밑에서 배낭을 기대고 앉아 한참을 바라본다.

 

전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멋들어진 선암사의 ‘해우소’. 옛말로 쓰인 ‘뒤깐’이 인상적이다. T자형 목조 건물에 맞배지붕의 2층 누각인데 삐걱거리는 널찍한 마루 밑으로 바닥이 깊고 아득하다.

 

정호승의 시 '선암사'에 나오는 ′선암사 해우소′

 

 선암사

 

 -정호승-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에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찌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 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경내를 다 둘러보고 사찰 초입으로 나오면 조계산 정상인 장군봉으로 오르는 산 들머리가 나온다. 정상까지는 고깔을 오르는 것처럼 가파른 길이다. 고개 하나만 넘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무심코 발길을 내딛은 사람들은 ′아차′ 싶은 길이다. 여기서부터 약 1시간 이상을 꾸준하게 올라야 된다. 숨이 차면 잠시 고단한 발길을 멈춘다. 발아래로 승주 쪽 승평호와 선암사 골짜기의 탁 트인 조망이 타는 속과 목의 갈증을 씻어낸다.

 

조계산은 884m의 높지 않은 산이다. 산세는 험하지 않고 넉넉하다. 정상에 서면 장군봉을 마주 보고 있는 연산봉(851m)이 산객을 반긴다. 조계산은 한국 불교의 양대 산맥이라는 선암사와 송광사를 품고 있는데, 선암사는 태고종 태고총림, 송광사는 승보종찰 조계총림이다.

 

조계산 정상 장군봉(884m) 

 

정상에서 좌측은 능선을 따라 장박골 정상과 연산봉을 경유하여 굴목재로 향하며, 우측은 배바위와 작은굴목재를 경유하여 보리밥집으로 가는 방향이다. 배바위로 내려서는 등로 주위는 온통 조릿대 천지다. 바람에 서걱대며 조릿대가 연주하는 소리에 지루한 줄 모른다. 이어서 배바위에 올라서면 머리 위로 장군봉, 그 아래로 선암사와 멀리 순천 앞바다까지 거칠 것 없는 조망을 즐길 수 있다.

 

작은굴목재를 지나면 산중 계곡인 장박골의 여유로운 풍광을 즐길 수 있다. 여기서부터 보리밥집까지는 톡 터지는 꽃망울에 싱그러움이 가득하고 흙길은 푹신하다. 완만한 산길을 계곡의 맑은 물소리를 벗 삼아 걸으니 절로 사색과 명상이 뒤따른다.

 

장박골을 내려서니 굴목재 길가에 보리밥집이 나온다. 점심때가 지났지만 산객들로 가득하다. 몇 아름이 넘는 느티나무 아래 놓인 평상에 앉아 골바람에 땀 식히며 보리밥에 동동주 한 잔 마시는 기분은 글로 형언하기 어렵다. 상추와 돌나물, 참나물, 버섯 등의 산채는 이 집에서 직접 기르거나 조계산에서 딴 것인데, 이 산나물을 듬뿍 넣고 고추장에 참기름 한 방울 살짝 쳐서 썩썩 비비면 밥 한 사발이 게 눈 감추듯 비워진다. 산나물이 고루 섞여 만들어내는 조화로운 맛도 좋지만, 통통한 보리밥 씹는 것도 재미나다.

 

조계산 명물 보리밥

 

식사를 마치고 송광굴목재로 발길을 옮긴다. 보리밥집에서 편백나무 숲을 지나면 길은 가팔라지고 배도사대피소가 나타난다. 1980년대 초반 대피소를 지은 직후에 배씨 성을 가진 나그네가 이곳에 머물며 기행을 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이렇게 가파를까. 그러고 보면 굴목재는 마냥 즐기기에는 사연이 많은 산이다. 이데올로기로 점철된 한국 근현대사의 생채기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광복 이후 조계산은 빨치산의 주요 활동 무대 중 하나로, 빨치산의 총사령부가 있는 지리산에서 전남 서부 지역으로 연결하는 중요한 통로였다. 굴목재는 바로 빨치산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든 길이기도 하다. 

 

굴목재를 오르는 길에는 숯가마 터가 널려 있다. 반세기 전까지 활활 타올랐던 가마터다. 동네 주민들에 따르면 1960년대까지만 해도 조계산 숯가마 터에서 구워진 참나무 숯이 순천과 보성, 벌교를 거쳐 서울까지 열차 타고 올랐고 한다.

 

천연기념물인 쌍향수를 보기 위해 송광사의 말사인 천자암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굴목재는 선암사와 송광사의 스님이 산문을 깨치기 위해 수시로 왕래하며 수행하던 길이다. 위보다 산 밑에서 누릴 게 많은 길, 오르락내리락 고갯길을 걸으며 천년 불심을 헤아리던 길이다. 송광굴목 삼거리에서 유순한 산허리를 감싸고 도는 산죽 사이로 난 등로를 따라 완만한 오르내림을 반복하면 30분 정도 걸려 천자암에 도착한다. 

 

천년 가까이 살았다는 기묘하게 뒤틀린 향나무 두 그루는 서로 의지한 채 하늘을 향해 뻗어있다. 전설에 따르면 이 두 그루의 향나무는 12세기 말 정혜결사 운동을 펼친 보조국사 지눌 스님과 그의 제자인 담당국사와 관련이 있다. 지눌 스님이 중국 유학에서 돌아올 당시 중국 왕자 출신으로 자신의 제자가 된 담당국사와 함께 귀국, 천자암에서 수도하면서 두 스님이 귀국길에 사용했던 향나무 지팡이를 꽂은 것이라는 것. 그 때문인지 비슷한 둥치의 두 그루 중 한 그루가 마치 스승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제자의 모습처럼 약간 숙이고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88호 천자암 쌍향수(雙香樹) 

 

천자암을 떠나 제법 급경사 등로로 한참을 내려선다. 헬기장에서 우측으로 접어들면 송광사로 내려서는 등로다. 넓은 잔디밭 운동장을 지나 수석정 삼거리에 접어드니 운치 그윽한 편백나무 숲길이 나타난다. 신작로같이 널찍한 이 길은 대숲 사잇길로 이어지고 여기서부터 매표소까지 2㎞가량은 고즈넉한 산책로 분위기를 자아내는 완만한 하산길이다. 

 

한국 불교의 승맥을 잇고 있는 송광사(松廣寺)는 승보사찰(僧寶寺刹)이다. 신라말 혜린(慧璘)선사에 의해 창건된 송광사는 창건 당시에는 송광산 길상사(吉祥寺)라고 불렸다. 창건 초기만 해도 송광사는 규모 면에서 그리 크지 않고 아담한 사찰이었다. 이 사찰이 한국 불교의 중심으로 우뚝 서게 된 것은 불일 보조국사 지눌스님이 정혜결사를 이곳으로 옮기면서부터다. 지눌스님은 9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공을 들여 명종 때에 중창불사로 사찰의 면모를 일신하고 송광사를 한국 불교의 중심으로 만드는 결정적 기여를 했다. 그 후 송광사는 조계총림(曹溪叢林)이 되고 새로운 정혜결가와 수선(修禪) 도량으로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이를 계기로 송광사는 16국사를 배출한 수행·정진의 도량이자 승보 종찰의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송광사 건축의 백미 중 하나로 꼽히는 우화각(羽化閣)에 닿으니 파란 하늘 아래 붉은 단청이 조화를 이루며 산꾼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한다. 우화각은 대웅보전 앞마당으로 가는 연못 위에 홍교를 가설하고 그 위에 세운 누각으로 여기를 통해야만 절로 들어가게 된다. 위쪽의 침계루는 계곡을 베개로 삼았다는 뜻으로 이름이 더없이 운치가 있다. 

 

우화(羽化)란 우화등선(羽化登仙) 즉, 날개가 생겨 하늘을 날아올라 신선이 된다는 뜻이니 다리 위의 집이란 말이다. 여기서 신선이란 금선(金仙)이니, 모든 속박을 벗어나 걸림 없는 해탈의 경지에 노니는 금빛 신선, 즉 부처님을 말한다. 사랑도 미움도 모두 다 벗어 버리고 높은 무념과 무욕의 피안으로 날아 올라가는 그런 건널목이다. 이 피안의 건널목인 우화각이 바로 무지개 돌다리(虹橋)위에 얹혀있는데 그 다리 이름이 바로 ′삼청교′다. 일명 ′능허교′라 불리기도 하는데, 모든 것을 비우고 허공으로 건너 오르는 다리라는 뜻이다.

 

송광사 우화각과 삼청교 

 

쌀 7가마에 해당하는 약 4,000명의 밥을 담을 수 있는 목조용기 '비사리구시'는 송광사에서 국재를 모실 때 절을 찾은 이들을 위해 밥을 담아두었던 곳이다. 사찰 내에서 가장 작은 규모의 영산각은 하늘로 치솟은 추녀의 곡선이 아름답고, 본전 뒤쪽으로 조용하게 물러앉은 설법전에는 봄빛 가득한 햇살 아래 피어오른 매화가 돌담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송광사 해우소는 실내화로 갈아 신고 들어가야 한다. 문 옆으로 예쁘게 어우러진 수돗가에서 손을 씻으면 마치 연꽃에 물을 주는 느낌이 든다. 일부러 화장실 입구에 서서 안을 들여다보니 크게 써 있는 두 글자가 보인다. '묵언(默言)'. 사실 화장실에서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이곳에서라도 말을 아끼라는 뜻이다.

 

산행 날머리인 송광사 일주문 

 

송광사 일주문을 나서면서 오늘 지나온 길의 실체를 더듬어본다. ‘삶과 죽음’의 화두를 잡고 욕망과 번뇌를 버렸을 ‘천년불심 길’을 가늠해본다. 고목은 가지에 싱그러운 연둣빛 싹을 틔우고 산수유가 노란 꽃잎을 흩날리는 산길, 상쾌한 바람이 목덜미를 훑고 청명한 새소리가 귀를 간지럽히던 고갯길을 걸으면서 모처럼 관념의 경계에서 벗어나 사색과 명상의 순간을  느낄 수 있었던 하루였다.

 

 

[여계봉 선임기자]

수필가

공학박사

이메일 : yeogb@naver.com

 

작성 2024.03.18 10:23 수정 2024.03.18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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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