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산정천리] 한반도 땅끝, 해남 두륜산에 봄빛이 완연하네

여계봉 선임기자

 

때는 꽃 봄이니 마음에도 꽃물이 밴다. 봄날의 설렘조차 어쩌면 미혹에 붙들린 마음의 증명인가? 부질없는 탐심인가? 당실당실 몇 점 구름 떠가는 파란 하늘이 눈부시다. 선사(禪師)는 저 눈부신 것에 매이지 말고, 얽매인 자신부터 자유롭게 풀어놓으라고 귀띔했다. 그러나 매인 나를 푸는 일, 쉬운 게 아니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으며 그냥 시늉으로 오를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아직 청산은 멀다. 하지만 내 발은 이미 해남 두륜산에 들어와 있다. 두륜산(頭崙山)은 백두산의 ‘두(頭)’에다 중국 곤륜산의 ‘륜(崙)’자를 합한 것이다. 곤륜산 산줄기가 동쪽으로 흘러 백두산을 이루고 다시 남으로 흘러 한반도 땅끝 해남에서 솟구쳐 일어났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두륜산 정상 가련봉. 왼쪽 아래에 천년고찰 대흥사가 있다.

 

두륜산에 오르려면 해남 대흥사를 거쳐야 한다. 대흥사 경내 한편을 채운 대밭에서 바람에 출렁이며 몸 부딪히는 댓잎 소리가 청정하고, 나무들의 몸에 순한 연둣빛이 스멀거린다. 대흥사(大興寺)는 우리 국토의 최남단에 있는 두륜산의 빼어난 절경을 배경으로 자리한 천년 사찰로, 해남의 외딴 이곳에 임진왜란 당시 승군의 지도자였던 서산대사가 자신의 의발(衣鉢)을 전한 후 크게 중창이 이루어진다. 이후 배불(排佛)의 강압 속에서도 많은 인재를 배출하는 선교양종(禪敎兩宗)의 대도량으로 명찰의 면모를 갖추게 되고, 2018년에는 한국의 산지승원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다.

 

두륜산 산행은 주로 대흥사에서 출발하여 북미륵암과 오심재를 거쳐서 노승봉, 가련봉, 두륜봉을 오른 후 진불암을 지나 표충사로 하산하는 코스를 많이 이용한다. 왕복 6km에 3시간 30분 정도 걸리는데, 대흥사 주차장에서 산행을 시작하면 3km가 추가되어 산행시간이 1시간 정도 더 걸린다.

 

매표소를 지나 일주문에서 대흥사까지 가는 2km의 ‘땅끝천년숲길’은 차도 우측에 있는 금당천을 따라가는 숲길이다. 며칠 전 비가 와서 계곡 물소리에 힘이 넘친다. 계곡물의 소임은 맑은 물을 하류로 내려보내는 일이다. 산사의 스님들도 지성으로 기도나 염불을 하여 얻은 복을 계곡물처럼 아래 저잣거리 중생들에게 내려보낸다.

 

 ‘땅끝천년숲길’은 대흥사 일주문에서 대흥사 해탈문에 이르는 2km의 산책길이다.

 

대흥사 입구에 있는 사찰 객사 유선관은 유서 깊은 100년 전통의 한옥이다. 40여 년 전부터 여행자를 위한 숙소와 식당으로 이용되어왔는데 이곳에서 영화 ‘서편제’와 ‘장군의 아들’을 촬영했다. 마당의 고목나무에 서면 ‘서편제’의 송화와 동호가 북을 치며 소리를 하던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사천왕을 모시는 천왕문 대신 보현보살과 문수동자가 지키는 해탈문을 지나 절집에 들어선다. 너른 절집 마당에 서면 하늘의 치맛자락을 거머쥐고 공간을 이등분한 산마루가 후련하고 유현하게 다가온다. 이곳에서 보는 두륜산 능선이 마치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진리를 상징하는 법신불)이 누워 있는 모습으로 보인다고 한다. 비로자나불의 수인(手印)은 주먹 쥔 왼손의 검지를 오른손으로 쥔 모습이다. 이를 두륜산에 대입해 보면 가장 오른쪽의 두륜봉이 부처의 머리이고, 가련봉은 오른손, 노승봉은 검지를 든 왼손, 가장 왼쪽의 고계봉은 발에 해당된다. 

 

좌로부터 고계봉(발)-노승봉(왼손 검지)-가련봉(오른손)-두륜봉(머리)

 

초의선사 동상과 서산대사의 영정을 모신 표충사를 지나 산길로 접어든다. 산 언덕에는 굳센 노송들이 따사로운 눈길로 굽어보고 길가에 무성한 산죽들이 반겨준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오니 사위는 솔향으로 자욱하고 몸 부딪히는 댓잎 소리는 청정하기 이를 데 없다. 

 

포장길을 따라 걷다가 초의선사가 머물렀던 일지암에 잠시 들리기로 한다. 대흥사는 열 세분의 대종사(大宗師)를 배출하였는데, 그 가운데 한 분인 다성(茶星) 초의선사로 인해 대흥사는 우리나라 차 문화의 성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도란도란 길섶에 웅크린 여린 풀들이 얼굴을 내미는 포장길 끝에 일지암이 있다. 초의선사가 초암(草庵)을 짓고 차나무를 심어 이곳에 귀양 온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 등 당대의 명사들과 찻잔을 기울이며 교유하던 곳이다. 

 

일지암(一枝庵)의 초당. 초의선사가 40여 년간 차(茶)와 선(禪)으로 수행한 곳이다.

 

일지암에서 내려와 북미륵암 가는 산길이 풋풋하다. 나무 그림자 내린 맨 흙바닥은 푹신하다. 대흥사에 딸린 암자 중 북미륵암으로 가는 길만 포장길이 나지 않았단다. 그래서 길은 맑은 한지처럼 순수하다. 얼굴에는 땀이 흐르지만 산길이 해맑아 온몸으로 산과 섞인다. 여기에 그 어떤 욕심도, 고뇌도 없다. 그저 그 자체로 무구하고 아름답다. 이윽고 북미륵암에 도착한다.

 

북미륵암에는 국보 제308호인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신라말 암벽에 새긴 마애여래좌상은 높이가 4.2m에 달한다. 천년이 넘는 세월을 풍상을 겪으면서 보냈을 텐데 바위에 새겨진 선 하나하나가 어찌 저리 뚜렷하고 입체적일까. 원래 자연 바위에 새겨져 있었으나 불상을 보호하기 위해 전각을 세웠는데 미륵불을 모시는 전각이라 하여 용화전(龍華殿)이라 부른다. 국보가 버티고 있으니 명색이 보물인 용화전 옆의 통일신라 삼층석탑이 수수해 보인다.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 네 귀퉁이에는 공양비천상이 조각되어 있다.

 

아담하고 담백한 북미륵암으로 쏟아지는 햇살이 황홀하다. 기척 없이 불어온 미풍이 버선발로 슬쩍 뜰을 건너는 중에 경쇠를 건드려 쨍그랑 하는 경쾌한 소리를 내면서 잠든 숲의 미물들을 깨우는 시늉을 한다. 암자를 두른 숲의 초록 위로 산란하는 누런빛이 어리니 저건 송홧가루가 아니던가. 그리고 보면 산사의 봄이 절정이다. 이제 북미륵암을 떠나 오심재로 향한다.

 

북미륵암에서 오심재까지는 걷기 좋은 숲길이라 단숨에 오른다. 오심재는 고계봉과 노승봉 사이의 고개인데, 오소재를 지나 강진으로 통한다고 하여 강진재로도 불리었다. 오심재 왼쪽은 고계봉, 바로 가면 오소재, 오른쪽은 노승봉으로 가는 산길이다. 하지만 고계봉으로 오르는 길은 두륜산 케이블카가 설치된 이후 폐쇄되었다. 오심재에서 노승봉을 오르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오심재에서 노승봉으로 오르는 길은 진달래군락지다. 조금 더 올라가면 흔들바위와 만난다.

 

오심재 건너편으로 고계봉과 전망대가 보인다. 

 

제법 널찍한 헬기장을 지나 노승봉 바로 아래에 이른다. 부드럽던 육산이 드디어 거친 암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옛날에는 쇠줄을 잡고 바위를 기어올라 통천문을 지나가야 오를 수 있었는데 지금은 나무데크 계단을 만들어 위험 구간은 줄었지만 암릉 타는 재미가 덜해져 아쉬움이 남는다. 나무데크에서 돌아보면 오심재 방향으로 고계봉 전망대가 고개를 쑥 내밀고 있다. 부드럽게 봉긋 솟은 고계봉의 모습이 마치 한라산을 연상시킨다. 

 

통천문. 나무데크가 없을 때는 받침대와 밧줄로 하늘의 문을 열었다.

 

아래에서 올려다본 거친 모습과는 달리 노승봉 정상은 넓은 마당바위다. 앞으로 가야 할 가련봉이 지척이다. 작은 병풍처럼 우뚝 선 바위가 제법 위압적이다. 한 번 쭉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야 하는데 이곳 역시 거친 암릉의 연속이지만 데크 계단이 잘 깔린 덕에 손쉽게 내려선다. 노승봉에 서니 땅끝 해남의 수려한 산세, 호수 같은 다도해, 강진과 완도의 풍요로운 산하가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8개의 봉우리들에 둘러싸인 대흥사 터를 두고 서산대사가 “전쟁을 비롯한 삼재가 미치지 못할 곳(三災不入之處)으로 만 년 동안 훼손되지 않는 땅(萬年不毁之地)”이라 하여 그의 의발(衣鉢)을 이곳에 보관한 연유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것 같다. 

 

노승봉(688m). 가까이에 대흥사가, 저 멀리 강진만이 보인다.

 

노승봉을 내려와 두 개의 암봉을 우회하면 두륜산의 최고봉 가련봉에 올라선다. 부처 이름 가(迦)에 연꽃 련(蓮)자를 합친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부처와 연꽃을 나타내는 봉우리’란 뜻이다. 불가에서는 연꽃을 부처의 손바닥에 비유한다. 즉, ‘부처의 손 안’에 든 것이다. 

 

이곳에 서면 지금까지 온 길과 앞으로 가야 할 길이 아찔하게 펼쳐져 있다. 해발 703m이지만 주변 풍경과 수려한 암릉은 어느 고산에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다. 산오름을 할수록 영남 알프스 산세가 연상된다. 봉우리에서 고개로 깎아지르는 산세와 중앙의 너른 평원, 그 너머 봉우리들이 영락없는 간월산에서 신축산, 영축산으로 이어지는 구간이다.

 

가련봉에서 서면 완도 상왕봉과 다도해의 크고 작은 섬들이 보인다.

 

가련봉에서 만일재로 내려서는 급경사의 나무 계단은 아찔한 구간이라 긴장감과 스릴을 동시에 느낀다. 한발 한발 긴장의 연속이지만 나무 데크라 일단은 안전한 편이다. 계단 옆으로 깎아지른 벼랑에는 과거 바위를 기어 다녔던 쇠사슬과 동그란 쇠 손잡이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나무데크 계단 옆은 기암 전시장이다. 비둘기처럼 둥지를 틀고 앉아 있는 바위도 있고, 공룡알을 닮은 바위도 있고, 사람 얼굴 형상을 한 큰 바위 얼굴도 있다. 

 

비둘기 바위 뒤로 만일재와 두륜봉, 대둔산으로 이어지는 지능선이 보인다.

 

내려오면서 바라보는 만일재는 초록 융단을 깔아 놓은 듯 매끈한 풍광을 연출한다. 억새로 유명한 만일재는 해남 북일면 사람들이 대흥사로 가기 위해 두륜산을 넘던 길이었다. 만일재(挽日岾)란 이름은 천동과 천녀가 해를 매달아 두었던 천년수가 있는 만일암 터에서 유래한 것이다. 만일재 아래 200m 지점에는 아직도 천년수 느티나무가 있다. 

 

만일재에서 두륜봉은 금방이다. 9부 능선에 도착하면 머리 위에 커다란 돌문이 보인다. 두륜산 명물 ‘구름다리’다. 거대한 바위 위로 어찌 이런 긴 자연석 바위가 다리처럼 얹혀졌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두륜산 명물 구름다리. 중국 장가계 천교(天橋)의 축소판이다. 

 

구름다리를 지나 작은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오르니 두륜봉 정상이다. 드디어 부처의 머리에 닿은 셈이다. 이제까지 지나온 두 개의 암봉은 다시 봐도 절경이다. 산자락의 들에는 보리밭의 초록이 짙은 색을 더하고 시선을 멀리 던지면 장흥의 천관산과 완도의 다도해 일대 경관이 한눈에 펼쳐진다.

 

두륜봉. 정상석 뒤로 왼쪽부터 고계봉, 노승봉, 가련봉이 보인다.

 

두륜봉에서 진불암으로 내려서는 등로는 거칠고 까칠하기 이를 데 없다. 급경사의 돌무더기 길을 로프를 잡고 한참 내려오면 두륜산 중턱에 자리한 진불암이 나온다. 진불암에서 표충사 가는 숲길은 동백나무의 두텁고 반들거리는 이파리가 봄빛에 반짝이고 허벅지 높이를 넘긴 푸른 빛 풍성한 신우대가 그득하다. 푹신한 숲길의 길섶에는 초록의 풀들이 머리를 내밀고 있고, 양지바른 곳에서는 개불알풀과 광대나물이 지천이다. 이런 산길에 물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제맛이 안 난다. 크거나 작은 돌들이 포개지고 뒤엉킨 계곡에는 물살이 나지막한 소리를 내며 흘러내린다. 낮지만 고상하고 독창적인 선율이다.

 

깊고 아득한 숲길이 끝나는 곳에 표충사가 있다. 잠시 서산대사의 영정을 친견하러 경내로 들어서니 구름 떠가는 해남의 파란 하늘이 더욱 눈부시다. 

 

3월 말, 땅끝 해남에는 이제 봄빛이 완연히 내려앉아 있었다. 

 

 

*서울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해남종합버스터미널까지 고속버스가 1일 5회 운행하는데 4시간 30분 걸린다. 목포와 광주까지 KTX를 타고 간 후 시외버스를 이용해 해남터미널로 가도 된다. 해남터미널에서 대흥사 입구까지는 1시간마다 운행하는 군내버스를 이용한다. 대흥사 앞 유선관에서 1박 하는 여행을 추천한다(유선관 0507-1459-0715).

 

 

[여계봉 선임기자]

수필가

공학박사

이메일 : yeogb@naver.com

작성 2024.04.01 10:24 수정 2024.04.01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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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