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인문기행] 봄날의 절정에 걷는 수원화성

여계봉 선임기자

주체할 수 없는 봄기운이 절정에 이른 요즘은 정처 없이 무작정 걷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이렇게 무르익은 봄날에 다녀오기 좋은 곳이 있다. 성곽을 따라 이어진 길을 걸으며, 고성과 도심이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있으니 바로 수원화성(水原華城)이다. 나풀거리는 봄바람 따라 성곽을 오르다 보면 어느새 팔달산 정상 서장대(西將臺)에 이른다. 발아래로 펼쳐지는 수원 시내를 굽어보면 집들 사이로 조팝나무꽃과 영산홍이 만개하고 수원천에는 연둣빛 버들가지가 하늘거린다. 역사·문화도시 수원은 서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봄날의 정취를 한껏 내뿜는다.

 

 수원화성 성곽길(수원시청 제공)

 

수원화성은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다. 조선 제22대 정조(正祖) 때 축조된 5.7㎞의 성곽이 오롯이 보존, 복원되어 있다. 수원시 팔달구와 장안구에 걸쳐 있는 수원화성은 한국 성(城)의 구성 요소인 옹성, 성문, 산대, 체성, 치성, 적대, 포대, 봉수대 등을 모두 갖춘 한국성곽의 집대성 판이다. 중국, 일본 등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평지 산성으로, 군사적 방어기능과 상업적 기능을 함께 보유하고 있으며, 시설의 기능이 가장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실용적인 구조로 되어 있는 ‘동양 성곽의 백미(白眉)’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조는 세자에 책봉되었으나 당쟁에 휘말려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뒤주 속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침을 양주 배봉산에서 조선 최고의 명당인 수원 화산으로 옮기고, 화산 부근에 있던 읍치(邑治)를 팔달산 아래 지금의 위치로 옮기면서 축성되었다. 정조의 효심이 축성의 시초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당쟁에 의한 당파정치 근절과 강력한 왕도정치 실현을 위한 원대한 정치적 포부가 담긴 구상의 중심지로 지어진 것이며, 수도 남쪽의 국방 요새로 활용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다산 정약용(丁若鏞)이 동서양의 기술서를 참고하여 쓴 《성화주략(城華籌略)》을 지침서로 하여, 재상을 지낸 영중추부사 채제공(蔡濟恭)의 총괄 지휘로 1794년 1월에 착공, 1796년 9월에 완공된 수원화성은 정조대왕의 꿈과 희망의 상징이었다.

 

수원 시내 남쪽에 있어 ‘남문’이라고도 불리는 팔달문은 도로 로터리 한가운데에 웅장하게 서 있다. 밖에 반원형 옹성(甕城)을 두르고 있는데, 본성은 돌로 축조됐으나, 적의 공격을 맨 앞에서 맞아야 하는 옹성은 벽돌로 쌓았다.

 

수원화성 성곽길의 출발지이자 종착지인 팔달문 

 

팔달문에서 서장대 방향으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서남암문(西南暗門)이 나온다. 서남암문은 대부분이 벽돌로 축조됐다. 화성의 벽돌성벽은 대포에 맞아 돌이 깨지면 성벽이 무너질 수 있지만, 흙벽돌은 맞은 자리만 조금 패일 뿐이기 때문에 적의 화포 공격에 대비한 것이다. 

 

서남암문에서 서남각루(西南角樓)로 가는 길은 양쪽이 성곽으로 이어진 호젓한 소나무 숲길이다. 신작로처럼 넓은 숲길에 군데군데 서 있는 붉은 휘장이 바람에 휘날려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한다. 화성 성곽은 전체적으로 동서남북 4개의 영역으로 나누어져 있기 때문에 성벽에 꽂혀있는 영기(令旗)는 각각 청백적흑(靑白赤黑) 색의 깃발로 구분된다. 서남포사로 나와 성곽길을 걸으면 서암문(西暗門)으로 이어진다. 

 

서남암문에서 서남각루 가는 소나무 숲길 

 

성곽 위에는 편하게 걸을 수 있도록 도보 길이 나 있다. 지면보다 조금 올라가 있어 가볍게 걸으며 수원 시내와 성 안팎의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경사도 완만해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다. 걸으면서 얻게 되는 우리 역사 지식은 덤이다.

 

성 안팎의 풍경이 시원하게 한눈에 들어오는 성곽길 

 

팔달산은 해발 128m의 나지막한 산이지만 사방으로 시야가 트여 수원 시내 전체가 한눈에 조망된다. 옛날에는 ‘탑산’이라고 불렸는데, 이름이 바뀐 것은 고려 공민왕 때의 학자인 이고(李皐)와 관련이 있다. 은퇴한 이고가 이 산자락에 살았는데, 공양왕이 사람을 보내 근황을 묻자 ‘집 뒤 탑산의 경치가 아름답고, 산정에 오르면 사통팔달(四通八達)하여 마음과 눈을 가리는 게 아무것도 없어 즐겁다’라고 대답하였다 한다.

 

정상에는 서장대(西將臺)와 서노대(西弩臺)가 있다. 서장대는 수원화성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세운 2층의 화성장대(華城將臺)다. 옆의 서노대는 다연발 활인 쇠뇌를 쏠 수 있는 팔각기둥 모양의 벽돌 건축물이다. 성루 아래에 서면 수원 시내와 산자락의 화성행궁이 한눈에 들어온다.

 

팔달산 정상의 서장대(오른쪽)와 서노대(왼쪽)

 

성곽길은 화서문으로 이어진다. 산을 다 내려서면 대로가 나오고 넓은 공원이 펼쳐진다. 성곽 오른쪽 마을에는 카페와 식당들이 많다. 걷다가 힘들면 잠시 카페에서 쉬어가도 좋고 화성행궁으로 가서 행궁을 천천히 둘러봐도 좋다. 화성행궁과 가까운 화서문(華西門)은 서쪽 대문으로, 사대문 중 가장 아름답다. 수원화성의 대문들은 과거와 현재가 연결된 공간이다. 남대문, 동대문처럼 자동차가 다니는 큰 도로 한가운데 외롭게 방치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시민들이 성문을 드나들며 삶을 이어가고 있다. 성문이 아직도 살아있는 것이다.

 

화서문으로 내려가는 성곽길

 

수원화성은 화서문과 팔달문을 기준으로 동쪽 지형은 평지를 이루고 서쪽은 팔달산(八達山)에 걸쳐 있는, 평지 · 산성의 복합 형태다. 화서문 가까이에 있는 서북공심돈(西北空心墩)은 적의 동향을 살피면서 공격할 수 있게 만든 3층 건물의 망루다. 공심돈은 전국의 성곽 중 오직 화성에만 2곳 있다. ‘속이 빈 돈대’라는 뜻인데, 벽돌로 쌓아 올린 요새 안에 몸을 숨긴 군사들이 적을 공격하는 기능을 지닌 곳이다.

 

왼쪽으로 장안공원을 끼고 성곽길을 걸어 북포루(北砲樓)와 북서포루(北西砲樓)를 지나면 장안문(長安門)이 나온다. 장안문은 팔달문처럼 옹성을 두른 2중 성문이다. 팔달문은 일반인의 접근이 어렵지만, 장안문은 성문과 옹성 위를 모두 걸을 수 있다.

 

화서문에서 장안문 사이는 나지막이 펼쳐지는 수원의 옛 마을을 바라보며 걷는 길이다. 이 일대는 전통문화관, 생태교통마을, 벽화마을 등이 조성되어 있어 둘레길을 돌다가 잠시 들리면 좋다. 규모가 크고 위엄있게 지어진 장안문은 정조가 화성에 행차할 때 가장 먼저 지나는 문이기도 하다.

 

수원화성의 정문이자 북문인 장안문 

 

장안문에서 나와 북동치(北東雉)와 북동포루(北東砲樓)를 지나면 수원화성 성곽길 최고의 명소인 화홍문(華虹門)과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이 나온다. 화홍문은 화성을 남북으로 가로질러 흐르는 수원천의 북쪽 문, 즉 북수문(北水門)이다. 일곱 개의 아치형 수문 사이로 물이 쏟아지는 수문 위에 누각을 짓고, 그 안에서 쉬거나 하천의 상태를 관측할 수 있게 만들었다.

 

 ‘화성의 무지개’란 뜻을 담고 있는 수문, 화홍문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닌다’는 뜻의 방화수류정이란 별칭을 지닌 동북각루(東北角樓)는 높은 곳에 자리해 주변을 감시하고 군사를 지휘하는 지휘소이다. 정자 아래 인공연못인 용연(龍淵)을 내려다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위치인 데다가 팔작지붕을 꺾어서 짜고 2층 누각 가운데 온돌방을 두는 등 독특한 건축 형태까지 더해서 수원화성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장소로 꼽힌다.

 

방화수류정에서 바라보는 수원화성의 풍경은 가히 백미다. 

 

성곽길을 따라 동쪽으로 더 가면 팔달산 정상의 서장대와 반대되는 장소에 동장대(東將臺)가 있다. 이곳은 장용영 군사들이 무예를 수련해서 연무대(鍊武臺)라고도 부르는데, 여기서는 국궁 체험도 할 수 있다. 동북공심돈(東北空心墩)과 동북노대(東北弩臺)를 지나면 화성의 동쪽을 지키는 창룡문(蒼龍門)이 나온다. 연무대에서 창룡문을 지나 동남각루(東南角樓)까지는 경사가 완만하고 시야를 막는 건물이 없어서 성 안팎의 수원 시내 풍경이 시원하게 한눈에 들어온다. 

 

적의 동태를 살피는 망루, 동북공심돈

 

동일포루(東一舖樓), 동일치(東一雉) 등을 지나면 수원 화성의 독특한 봉수대인 봉돈(烽墩)이 나온다. 산꼭대기에 있는 일반적인 봉수대와 달리 성벽에 맞물리게 만든 점이 독특하다. 동쪽 지형이 평지인지라 다소 지루한 느낌이 나는 성곽에 변화를 주어 수원화성의 미적 수준을 높이는데 기여한 구조물이다. 봉돈에서 더 가면 수원 화성의 4개 각루 중 성 안팎이 모두 가장 잘 보이는 동남각루가 나온다. 동남각루에서는 팔달문이 내려다보이는데 성벽은 끊어져 있다. 이곳에서 수원천을 건너 시장을 지나야 팔달문(八達門)에 닿는다. 팔달문에서 장안문 방향으로 큰 도로를 따라 10여 분 걸어가면 화성행궁이 나온다. ‘행궁(行宮)’은 왕이 전란을 피해 잠시 머물거나 나들이할 때 묵는 임시 궁궐인데, 화성행궁은 화성을 정기적으로 방문한 정조를 위해 지은 궁궐이다. 정조는 1789년에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현륭원으로 옮긴 후 팔달산 동남쪽에 행궁을 짓고, 화성에 들를 때마다 이곳에 머물렀다. 

 

화성행궁의 정문 신풍루

 

화성행궁 정문은 신풍루(新豊樓)다. 화성 행궁의 정전 건물인 봉수당(奉壽堂)은 혜경궁의 환갑잔치를 치른 곳으로, 정조가 혜경궁의 장수를 기원하며 ‘만년(萬年)의 수(壽)를 받들어(奉) 빈다’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다. 행궁에는 이 외에도 주요건물들이 많은데 정궁인 경복궁이 755칸인데 비해 수원행궁은 건립 당시 576칸이었다고 하니 그 규모가 가히 어떠했는가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화성행궁의 정전 건물 봉수당

 

행궁 주변의 ‘행궁동’은 수원 화성 안의 마을 12개 동을 아우르는 명칭이다. 골목 담벼락에 그려진 화성 행차 벽화는 관광객들의 호기심을 끌고, 골목 사이 숨어 있는 카페와 공방은 아기자기한 재미를 준다. 과거와 오늘의 역사를 함께 간직한 전통시장과 맛집들도 근처에 있다. 

 

도보로 3시간 안팎으로 무리 없이 완주할 수 있는 아름다운 성곽길을 걷고 나서 영화 ‘극한직업’으로 유명세를 탄 수원 통닭 맛보기까지, 하루가 너무 짧게만 느껴질 정도로 수원이 가진 매력은 너무나 많다.

 

*수원화성을 가려면 수원역 9번 출구로 나와서 매산시장 버스정류장에서 13, 35, 46번 버스를 타고 10분 정도 이동하면 팔달문 버스정류장이 나온다. 팔달문에서 서장대 방향으로 길을 잡고 성곽길을 오르면 된다. ′2024 수원연등축제′가 4.27(토) 화성행궁 광장에서 펼쳐지는데, 이날 야경이 뛰어난 방화수류정도 같이 방문하길 추천한다. 

 

 

[여계봉 선임기자]

수필가

공학박사

이메일 : yeogb@naver.com

 

 

작성 2024.04.22 10:34 수정 2024.04.22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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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