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엔 ‘그냥’이라는 것이 있다. 형용사를 쓰지 않아도 현란한 수사를 동원하지 않아도 ‘그냥’으로 다 통하는 말, 바로 어머니다. 거룩하다거나 위대하다는 말로 어머니를 표현하는 것은 진부하고 상투적이다. 짊어진 짐이 힘들수록 어머니가 생각난다. 어머니는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아무 말 없이 내 짐을 대신 짊어진다. 생각해 보라. 신이 내 짊을 대신 짊어주겠는가. 자식이 내 짊을 대신 짊어지겠는가. 아버지도 아니고 형제도 아니고 오로지 어머니뿐이다. 어머니는 그렇게 자기 자식을 위해 태어난 것이다. 왜냐고 물으면 진화론적이거나 창조론적인 재미없는 답변밖에 들을 수 없다. 그냥이다. 그냥이라는 말 속에 담긴 건 우주밖에 모른다.
그런데 이 세상의 어머니는 때론 거룩하지도 위대하지도 않을 때가 종종 있다. 생물학적인 어머니로만 남은 사람도 많고 이기적이고 못된 어머니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자식 등에 빨대 꽂고 평생 놀고먹는 어머니도 생각보다 많다. 그뿐인가. 자식을 버리고 뻔뻔하게 잘 살다가 사고로 자식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자 빛보다 빠른 속도로 보험금 타 먹는 어머니도 심심치 않게 본다. 오죽했으면 연예인 구하라로 인해 구하라법을 만들어 자격 없는 부모의 상속 자격을 박탈하자고 했을까.
오월이면 사람들은 바빠진다. 일 년 중 단 하루 어머니를 위한 이벤트를 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선물 가게는 호황을 누리고 꽃집도 오월은 대박 나는 달이다. 자식을 낳아 기른 보람을 다 보상받는 것 같은 달이다. 어버이날이라도 없었다면 삶은 얼마나 팍팍하고 무미건조했을 것인가. 인간의 역사는 어머니의 역사다. 어머니의 어머니도 그 어머니의 어머니도 유구하게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은 또 자식을 낳아 흐르는 물처럼 인류의 역사를 이어왔다. 전쟁이나 혁명을 통해 역사를 바꾸는 건 남자지만 그 역사를 흐르게 하는 건 어머니다. ‘어머니의 마음’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가슴이 먹먹해지는 건 우리 유전자에 각인된 변함없는 어머니의 사랑 때문일 것이다.
낳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없어라
어려선 안고 업고 얼려 주시고
자라선 문 기대어 기다리는 맘
앓을사 그릇될사 자식 생각에
고우시던 이마 위에 주름이 가득
땅 위에 그 무엇이 높다 하리오
어머님의 정성은 지극하여라
사람의 마음속엔 온 가지 소원
어머님의 마음속엔 오직 한 가지
아낌없이 일생을, 자식을 위하여
살과 뼈를 깎아서 바치는 마음
이 땅에 그 무엇이 거룩하리오.
어머님의 사랑은 그지없어라.
인간은 수식어가 가장 많은 존재다. 하지만 어머니는 수식어가 가장 적은 존재다. ‘어머니’ 그 하나로 다 평정된다. 어머니의 사랑 앞에 누가 수식을 달수 있을까. 신도 가끔은 실수하니까 불량 엄마들은 빼고 말이다. 여자는 난해하지만, 어머니는 간결하다. 여자는 욕망하지만, 어머니는 지혜한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 유통기간이 없는 영원한 사랑의 화신이 어머니다. 오죽했으면 신의 다른 모습이 어머니라고 했을까. 그 사랑이 이 지구에서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밑바탕이 된다. 그 밑바탕으로 우리는 진화했고 또 진보했다.
‘어머니의 마음’은 불교를 배척했던 조선에서 태종의 후궁인 명빈 김 씨의 발원으로 간행된 목판본 불경 ‘불설대보부모은중경’에 나오는 대목이다. 이 판본은 21장으로 도상이 실려 있고 뒤쪽에 불설부모은중태골경이 있는데 지금은 보물 제1125호로 지정되어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부모님으로부터 입은 열 가지 은혜를 게송으로 노래한 것인데 일제강점기 때 KBS 전신인 경성방송국에서 국민에게 부모의 은혜를 널리 알리기 위해 기획했다. 양주동이 ‘불설대보부모은경중’을 바탕으로 시를 쓰고 경성방송국에 다녔던 이흥렬이 작곡을 해서 전국에 널리 불리게 되었다. 악보는 1938년 조선방송협회가 발행한 ‘가정가요 제1집’에 실려 있다.
‘불설대보부모은중경’에 나오는 ‘어머니의 마음’을 각색한 양주동은 신라 향가와 고가 연구의 대가이다. 우리 국어학계에 큰 영향을 미친 시인이자 문학비평가이며 문학번역가이면서 국문학자이다. 본인 스스로 ‘국보’라는 호를 지어 불렀다. 사람들은 대한민국에 두 천재가 있는데 남에 ‘이은상’ 북에 ‘양주동’이라고 칭송했다. 10살 연하였던 탄허 스님에게 오대산에서 일주일간 장자에 관한 강의를 들은 후 감동해서 “장자가 다시 살아 돌아와 자신의 책을 설법해도 오대산 탄허 스님을 당하지 못할 것입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양주동은 1903년에 개성에서 태어나 1977년에 서울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지없는 어머니의 사랑이 더욱 그리워지는 오월이다.
이 땅에 그 무엇이 거룩하리오.
어머님의 사랑은 그지없어라.
[이순영]
수필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