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잔의 술을 마시고,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는, 지금 어디에~
이 노래는 서정시(抒情詩)가 대중가요로 통속화되어 날개를 단 것이다. 한국 대중가요 유행가 아랑가 100년사에 이런 경향의 바람이 일어난 것은, 1958년 손석우가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에 곡을 붙인 것이 그 시초다. 박재란이 불렀는데, 아쉽게도 제작사도 불명이고, 음반도 찾아내야할 숙제다.
이후 1970년대부터 시(詩)가 가요화(化) 된다. <목마와 숙녀>도 이런 트렌드의 산물이다. 이 노래는 1976년 근역서재(槿域書齋)에서 발간한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木馬-淑女) 시집 표제 시에 토크(talk)형식으로 멜로디를 붙여서 낭송한 곡이다. 이 절창은 시집 발간 10년 차, 박인환 타계 20년차에 김기웅이 곡(배경 멜로디)을 붙여서 박인희가 읊조렸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 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볍게 부서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밑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 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등대.../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패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낡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소리는 귓전에 절렁거리는데/ 가을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노랫말에 차운된 패시미즘은 비관주의를 의미한다. 이 시가 씌어 진 1955년은, ‘세계사가 그러한 것과 같이 기묘한 불안정한 연대였다’라고 쓴, 박인환의 회고처럼 험난한 현대사의 질곡터널 속이었다.
우리나라는 해방공간으로부터 미군정, 남조선 노동당 창당과 주한미군정청 철수, 에치슨 라인 선포와 6.25전쟁 발발 및 휴전, 그 후 불안정하던 시절을 박인환은 질곡(桎梏)으로 표현했다. 시어(詩語)는 적확(的確)하게 그 시대를 묘사했다. 좌절과 허무와 도전과 응전이 어긋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비극적인 현실 및 모더니즘 풍, 시대이념과 민중들의 감성을 함의하는 대중문화예술의 본성을 서술했다.
박인환은 1926년 강원도 인제 출생, 평양의학전문학교에 재학 중 8.15광복으로 중퇴하고, 1946년 국제신문에 시(詩) <거리>를 발표하며 데뷔했다. 그 즈음 서울에서 〔마리서사〕(茉莉書肆)라는 서점을 경영하였으며, 1948년 이정숙과 결혼 한 후, 자유신문사와 경향신문사에서 기자생활을 한다.
〔마리서사〕는 박인환이 여러 시인들과 어울리며 문학 동인을 결성하고, 6.25 전쟁 중에 종군기자로 활동하며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서울로 상경한 후, 집 근처 낙원동에서 운영한 서점이다. 훗날 모더니즘의 일파가 되는 시인들을 만나게 해 준 곳, 이 서점에는 시인 김광균, 김기림, 오장환, 장만영, 정지용 등과 소설가 이봉구, 김광주, 김수영, 양병식, 김병욱, 김경린, 조향, 이봉래 등이 드나들었다. 해방 직후부터 1950년대 초반까지 번성하던 서점이자 문인들 만남의 장소였다.
그는 6.25전쟁 중 종군기자로 활동하며 <신호탄>, <고향에 가서> 등의 시를 썼고, 1955년 <19일 간의 아메리카>, <박인환 시선집>을 출간하였으며, 이 시집에 <목마와 숙녀>가 수록되어 있다. 박인환은 1948년 김경린·김수영 등과 동인지 <신시론>을, 이듬해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간행하였다. 이 시집은 한국 시단의 주류인 청록파시집이다.
청록파는 1939년 「문장」(文章) 추천으로 시단(詩壇)에 등단한 조지훈·박두진·박목월을 가리키는 말이며, 이들은 각기 시작법은 다르지만 자연을 바탕으로 인간의 염원과 가치를 성취하기 위한 공통된 주제로 시를 썼다. 여기 대표적인 시가, 박목월의 <나그네>와 이 시에 대한 응답시, 조지훈의 <완화삼>이다.
이 3명의 시인은, 1946년 6월에 시집 청록집을 함께 펴내면서, 청록파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미당 서정주는 이들의 공통적 주제 때문에 자연파라고 불렀다. 이들은 서정주 등의 자연과 전통적 감정들에 반발, 도시적 문명과 현실에서 시의 테마와 언어를 찾았다.
박인환은 1956년 3월 17일, 시인 이상(李葙) 추모행사를 하며, 3일간 연속 과음을 한 후유증으로 3월 20일 31세로 요절했다. 심장마비였다.
노래 발표 당시 23세 박인희는 1951년 전북 이리에서 출생하여 1970년 이필원과 <뚜와 에 무아>로 데뷔하였으며, 숙명여대 불문과 학생일 때 노래를 시작했다. 그녀는 당시 생음악카페 미도파살롱 DJ였고, 이필원은 그룹사운드 활동을 하며 이곳에서 노래하는 가수였는데, 우연히 <Let it be me>를 박인희와 같이 부르게 된다. 이들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고, 혼성듀엣 <뚜아 에 무아>가 탄생한다.
이들은 외국 번안곡과 자작곡을 부르는 놀라운 화음으로 인기를 받았다. 송창식과 윤형주가 번안가요로 포크계를 사로잡았다면, 이들은 외국 번안곡 뿐 아니라 자작곡들을 직접 부르면서 놀라운 화음으로 대중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나 이들이 연인관계라는 잡지사의 스캔들기사로 그룹을 해체하고 박인희는 솔로로 활동한다. 솔로로 활동을 하면서 <얼굴>, <목마와 숙녀> 등 토크 송(Talk Song)장르를 선도한다. 뚜아에무아(Toi Et Moi) 는 불어로 <너와 나>이다.
박인희가 절창한 <얼굴>(손흥수 작곡)의 노랫말은, 박인희가 풍문여중 동기동창(12회)이자 친구인 이해인(본명 이명숙) 수녀를 연상하면서 지은 시이다.(~우리 모두/ 잊혀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 박인희와 이명숙은 둘 사이에 주고받은 글을 엮은 수필집도 발간했다. 박인희의 시, <친구를 위한 기도> 속의 주인공도 이명숙이다.
‘주여/ 쓸데없이/ 남의 얘기 하지 않게 하소서/ 친구의 아픔을/ 붕대로 싸매어 주지는 못할 망정/ 잘 모르면서도 아는척/ 남에게까지/ 옮기지 않게 하여 주소서/ 어디론가/ 훌훌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람/ 어진 일을 묵묵히 하면서도/ 속으론 철 철 피를 흘리는 사람/ 떠날 수도 머물 수도 없는 사람/ 차마 울 수도 없는 사람/ 모든 것을 잊고 싶어 하는 사람...’
시와 유행가 아랑가의 한계를 구분지울 수 있을까. 대중가요 가사는 해방광복 이전까지 가요시로 불렸다. 정두수·조운파 등은 노래시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 시절 작사가들 중 조명암·박영호·유도순·김억·이하윤 등이 시인이나 극작가이면서 대중가요가사도 썼다.
대중가요가 된 시는, 박인환의 <세월이 가면>, 김소월의 <부모>·<개여울>·<세상모르고 살았노라>·<예전엔 미처 몰랐어요>·<실버들>, 고은의 <세노야>, 김광섭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서정주의 <푸르른 날>, 정지용의 <향수> 등등 많다. 인생은, 내가 하늘의 달과 주고 받으며 비운, 술병이 바람결에 스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익어가는 13월의 석류와 같다. 그럴 때, 인생은 비로소, 겉으로 나만의 빛(떼깔)을 발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안으로, 나만의 맛과 멋과 향을 머금는 불그레한 알이 탱글거린다.
이런 떼깔과 멋과 향으로 영근 아랑가 노랫말과 가락은 상수(常數)이고, 노래를 흠향하는 개인의 감정과 감흥은 저마다의 변수이다. 나는 오늘도 아랑가해(我浪歌解) 백가사전(百歌史傳)으로 <목마와 숙녀>를 예찬하며, 하늘의 달을 우러른다.
붉은 달 떠오르는 귀거래 누옥, 양평 단월면 보룡리, 천년 느티나무 가지 사이로 저녁달빛이 은은하다. 흑천으로 흘러드는 산기슭 개울물 소리가 또랑또랑 들려오는 밤이 야심하다. 이 다정한 절기가 더욱 깊어지면, 바위 틈새에서 솟구치는 샘물 위로 진보라 칡꽃이 우거지리라. 보랏빛 향기 그윽한 갈천(葛泉)이다.
[유차영]
한국아랑가연구원장
유행가스토리텔러
글로벌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경기대학교 서비스경영전문대학원 산학교수
이메일 : 51944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