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 칼럼] 우주 만물이 다 코스미안이다

이태상

“대행선사께서는 모든 것이 불교 아닌 것이 없다고 하셨다. 불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의 진리 속에 있다는 뜻이다.”

 

현재 온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이 이 지구별 자체가 인간의 등쌀에 견디다 못해 자구책으로 흘리는 땀방울 발한작용이 아닐까. 우주 만물 모든 것이 우주의 아바타 분신 ‘코스미안’ 아닌 것이 없다고 한다면 말이다. 

 

“하나의 다른 언어는 하나의 다른 시각이요 비전이다.” 지난 1993년 향년 73세로 타계한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영화감독 페데리코 펠리니 (1920-1993)의 말이다. ‘길’, ‘카비리아의 밤’, ‘달콤한 인생, 영혼의 줄리에타’, ‘8과 1/2’ 등 세계 영화사에 길이 남을 20여 편의 명작을 남긴 그는 다섯 차례나 오스카상을 탔고 칸영화제 대상, 골든 글로브상 등을 탔다. 

 

세상과 현실을 반영해 이를 복사하는 영화감독들과는 달리 그는 자신 고유의 세계를 만들어 낸 요술쟁이었다. 그는 특히 남자와 여자와의 관계, 성과 사랑과의 관계를 깊이 다뤘고, 섹스를 예찬했다. 그에게는 신이 여신이었으며 여자가 곧 세상의 모든 것이었다. 남자들을 자극하고 흥분시켜 매혹하는 모든 것의 전부였다.

 

‘달콤한 인생’에 나오는 마르첼로에게 여자는 어머니, 누이, 딸, 연인, 천사, 고향 집 등 모든 것을 뜻한다. 소년 시절 가출해 곡마단을 따라다녔던 그의 영화에선 삶이 하나의 서커스일 따름이다. 남녀노소 모든 어린이가 즐길 수 있는. 그 자신이 나이를 먹어도 늙지도 않고 정서적으로 만년 어린아이였기 때문이었으리라. 

 

아, 정말 그의 말대로 언어가 비전이라면 우리가 늘 쓰는 말부터 잘 골라 써야지. 인생 80여 년 산다 해도 우리 인생길 가는 동안 달콤한 인생 살려면, 달콤한 말만 해야 하리. 이러쿵저러쿵 못 살겠다. 어쩌고저쩌고 죽겠다느니, 제발 그러지 말고, 한껏 재미있게 살아보리. 이러면 이래서 탈이고, 저러면 저래서 탈이며, 이래저래 말성꾼 되지 말고 소꿉놀이하는 어린이 되리. 슬픈 노래 부르는 가수, 슬프게 살다 일찍 죽고, 웃고 웃기는 광대 즐겁게 오래 살지 않나. 

 

저 명심보감의 경구처럼 남의 그릇됨 듣지 말고 남의 잘못 보지 말고 좋은 것만 듣고 보리. 흉보고 욕하며 저주하는 심술꾸러기 양로원보다 천방지축 웃으며 뛰노는 장난꾸러기의 유치원 되리. 인생 80여 년 살고 지고 ‘달콤한 인생’ 삶이란 우리들의 어린 유년 시절, ‘8과 1/2’이잖는가. 모두가 한없이 경이롭고, 모두가 한없이 신비롭고, 모두가 한없이 아름다운 동화 같은 세상이지!

 

미국 작기 필립 로스(1933-2018)가 그의 작품 ‘방송 중’에서 말하듯 세상이 일종의 쇼라면, 우리 모두 저 하늘 높이 계신 대 연출가가 물색, 스카우트해놓은 탤런트로 대 인생쇼에 출연하는 거라면, 인생의 목적이 오락이라고 생각해보자. 그러면 오늘날 우리 현실이 마치 영화 같지 않은가. 전쟁영화, 괴기영화, 연애영화, 탐정영화, 비극영화, 희극영화, 도색영화, 만화영화, 공상영화, 환상영화 등이 모두 영화 같다. 얼마 전 ‘Magic, 마술, 요술을 믿느냐’는 질문에 해리 포터의 작가 J.K. 롤링(1965 - )은 믿지 않는다고 대답했다는데, 삶 이외의 Magic을 믿지 않는다는 뜻이었으리라. 그래서 일찍이 영국의 시인 퍼시 비시 셸리 (1792-1822)는 이렇게 말했나 보다. 

 

“어린아이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오늘 이 시대의 사람과 아주 다른 사람이 되는 것, 호박을 마차로, 쥐를 말로, 천한 것을 귀한 것으로, 아무것도 아닌 것을 모든 것으로 바꾸어 놓는. 어린아이마다 제 영혼 속에 요술 부리는 요정이 있는 까닭이다”

 

시인은 철들면 끝이란 말이 있다. 보고 싶은 것만 보인다고 했던가. 시인 홍승무는‘반딧불이 흐르네’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반딧불이 빗물처럼 흘러내리네. 

산천은 고요히 잠이 들고

반월은 하늘에 떠서 가는데

아아, 아아, 하늘에는 별무리

땅에는 반딧불이 냇물처럼 흘러내리네.

 

서양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그리스의 의학자 히포크라테스의 말 그대로 정녕코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면 그 하나의 스승으로 미국의 시인 시드 코만은 네덜란드의 화가 렘브란트의 일련의 자화상에서 인생의 덧없음과 예술의 지속성을 발견한다. 처음부터 그는 그의 모든 작품의 표준이 될 지능을 발견한다. 등급 매기기의 표준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 해마다, 달마다, 날마다, 자기가 살아 있다는 느낌을 실감케 해주는 표준, 이미 살아왔고 현재도 살고 있는, 삶이 주로 얼굴과 손에 스며든 삶의 표정을 나타내기 위한 표준말이다. 

 

우리를 감동시키고, 우리가 세상 떠난 다음에도 살아 있는 사람들을 언제나 감동시킬 것은 그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불가사의하도록 기묘하고 엄정한 정확성이다. 우리 모두 하나같이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유한한 목숨이지만, 우리 생명 어딘가 마음속 근저에 가슴의 지능 속에 삶이 살아 있음이 영속적으로 지속된다는 깨우침의 빛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재능 말이다. 그의 냉혹한 외고집과 용기, 그 솔직성과 진실성이 그 손에 확연히 나타난다. 그리고 그의 작품 아니 그의 삶이 우리가 아직 무엇을 배워야 할 것인지를 똑똑하게 납득시켜 우리의 자각심을 일깨워준다. 세상에 삶을 사는 인생예술가 말고 다른 예술가가 없음을, 꿈꾸듯 삶을 살고 나눌, 삶의 예술 없이 인생 삶이 없다는 것을. 그럼 이런 예술이란 어떤 것일까?

 

어쩌면 1998년에 나온 일본 철학자 나가이 히토시의 책 제목 그대로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철학하기’가 아닐까. 그렇다면 어린아이의 마음이란 어떤 것일까. 저자의 생각대로 어린이의 마음이란 존재에 대해 경이로워하는 마음이다. 다시 말해 우주 대자연의 삼라만상이 너무도 신비롭게 있다는, 더할 수 없이 경이로운 사실에 감탄하며 신기하게 바라보는 마음이다. 이것이 바로 반딧불을 보는 시인의 눈이리라. 지금으로부터 70여 년 전 청소년 시절 나는 사무엘 울만이란 미국인이 쓴 ‘인생 80 고개에서’란 저서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보고, 하도 좋아서 이것을 나 자신의 좌우명으로도 삼았다.

 

‘열정을 갖고 살라’

 

젊음은 인생의 

어느 한 시기가 아니고

정신상태요 마음가짐이다.

 

의지의 발로이고

상상의 날개이며 

삶의 원동력이다.

 

겁먹지 않음이고

주저함 없음이며

만난을 극복하는 용기

그리고 무사안일보다

모험을 좋아하는 탐험심이다.

 

나이를 먹어서가 아니고

이상을 버릴 때 사람은 늙는다.

나이는 피부의 주름살을 만들지만 

삶의 열정과 의욕을 잃어버리면

마음과 혼이 주름지고 시든다.

 

걱정과 근심

망설임과 자신 결핍

두려움과 절망

이런 것들이

하늘로 오르던

기상을 꺾고

불타오르는

정신을

꺼버린다.

 

나이가

여든이든 

예순이든

열여섯이든

모든 사람

가슴 속에는 

자연의 신비와 조화에

경이로워 감탄하는 동심이 있다.

별을 보고 점치는 궁금증과

호기심에 찬 삶의 기쁨이 있다.

 

네가 갖는 신념과 용기

자신감과 희망만큼 

너는 젊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한

너는 젊었고 너는 살아 숨 쉬고 있다.

 

네 가슴이 

비관과 냉소로

얼어붙는 날 

네 삶은 끝난다.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

이메일 :1230ts@gmail.com

 

작성 2024.06.01 09:23 수정 2024.06.01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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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