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련은 이미 꽃잎을 처절하게 떨구었고 벚꽃도 바람에 날려가는 봄이 완성되는 4월 중순의 일요일이었다. 부산에서 자동차로 3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대전 대덕구에 있는 계족산이었다. 4년 전의 일이다.
그곳에는 30리가 넘는 황톳길이 등산객의 신발을 벗게 한다. 그 길을 걷는 모든 사람들은 맨발의 인생이 된다. 길바닥에서 전달되는 황토의 미생물이 발바닥을 거쳐 온몸으로 전해져 우리의 건강에 도움을 준다.
그런데 이토록 고마운 황톳길은 자연스럽게 생긴 것이 아니고 인공적으로 조성한 것이다. 대전과 충청남도 그리고 세종자치특별시를 연고로 판매되는 어느 소주회사 회장님께서 개인의 사재를 투자해서 만들어 일반인들에게 제공하는 둘레길이다. 기존의 흙을 파내고 중장비를 동원해 황토를 붓고 10년이 넘도록 관리를 하고 있다고 하니 대단한 열정으로 만들어진 길임에 틀림없다.
회사 이름은 맥키스컴퍼니이며 소주 이름은 ‘O2 린’이다. O2는 산소이니 과학이 들어 있고 린潾 은 맑다는 뜻으로 아름다운 철학이 들어 있다. 그래서 황톳길은 소주 이름만큼이나 순하고 예쁘고 부드럽다.
온화한 산기슭을 따라 편안하게 걷고 나니 숲속에서는 예상치 못한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숲속의 음악회 공연이 있는데 그 이름이 재밌다. 4월부터 10월까지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3시에 열리는 “맥키스 오페라 뻔뻔한 클래식”이다. ‘맥키스’는 회사이름 ‘맥키스컴퍼니’의 줄임말이며 ‘뻔뻔한 클래식’은 장르 구분 없이 관객이 좋아하는 곡이라면 격식에 구애받지 않고 뻔뻔하게 노래를 불러 주겠다는 뜻이라고 하니 기발한 작명이다. 자칫 딱딱하게 여겨질 클래식을 풀어서 관객들에게 전달해 주는 것이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자연석을 최대한 활용하여 자연친화적으로 만들어진 관객석은 자연의 부드러운 무질서를 정돈해 놓았다. 무대에서 오페라단은 여러 장르의 노래로 거의 빈자리 없이 자리한 관객들을 매료시킨다. 중년을 위한 대중가요를 열창해 주는가 하면 젊은 관객들 취향의 최근 히트곡을 불러 주기도 한다. 그야말로 남녀노소 구분이 없다.
또한 오페라단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정통 오페라 ‘라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와 알프레도가 되어 축배의 노래를 자연 숲속에 흘려준다. 때로는 에디뜨 삐아프가 되어 샹송을 열창해 주기도 하니 종합 목소리의 보물창고다. 비록 오케스트라는 갖추지 않았어도 강약과 높낮이가 분명했다. 그리고 클라이맥스를 구분 지어 주는 노련한 피아니스트의 반주도 어우러지니 저절로 음악의 흥이 돋아났다. 무대 위의 가수들이 관객과 함께 호흡하면서 관객들이 추임새를 하게하고 장미꽃을 선물하는 것은 공연의 압권이었다.
나는 사업에 대해 문외한이라 투자와 이익의 경제논리는 잘 모른다. 하지만 기업에 있어 이익 창출은 필요한 것이고 당연하다. 그러나 이윤만을 추구하는 기업은 영혼 없이 살아가는 사람과 같다. 이해관계자에 대한 봉사를 사명으로 하고 고객을 위해 더 나은 서비스경쟁에서 이기면 당연히 주어지는 것이 이익이다. 이 회사의 회장님이야말로 기업이 문화, 예술분야에 지원하는 메세나운동의 본보기를 보여준다.
관객이 충분히 자리를 채워 줄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10년이 넘게 매년 10여억 원의 경비를 지원한다고 하니 놀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행사를 일회성의 외주 이벤트가 아니라 회사 직영으로 상설 운영한다는 것은 대단한 모험이라고 여겨진다. 창업주의 순수한 정성이 담겨 있지 않으면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일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에는 전파낭비라고 할 정도로 방송과 방송인이 넘쳐나고 있다. 따라서 모든 상품 선전에는 방송인 혹은 유명연예인을 모델로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더군다나 국민 술이라고 하는 소주 광고는 더할 나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회장님은 이러한 관례를 깼다.
오페라단의 단장을 맡고 있는 무명 소프라노 가수를 전격적으로 모델로 선정한 것이다. 이 얼마나 참신하고 신선한 파격인가. 유명해서 모델로 선정한 것이 아니라 모델로 쓰고 보니 더욱 유명해지는 이중효과가 있다고 말 할 수 있다. 리더의 정확한 판단과 소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스럽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계족산 숲속에서 산소를 뿜어내는 청아한 소프라노의 노랫소리를 들으면 맑은 영혼의 인연을 만날 수 있다. 산에서 내려와 주점에서 산소가 들어 있는 ‘O2 린’ 소주 몇 잔을 마시면 다음 날 머리가 개운하게 깨어나면서 ‘맑음!’이라는 훌륭한 기업의 보증수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김태식]
미국해운회사 일본지사장(전)
온마음재가센터 사회복지사(현)
울산신문 등대문학상 단편소설 당선 등단
해양문학상 논픽션 소설 당선
사실문학 시 당선 등단
제4회 코스미안상 수상
이메일 : wavekt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