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헌식의 역사 칼럼] 『난중일기』에 기록된 1594년의 장흥부사와 흥양현감

윤헌식

충무공 이순신의 『난중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 가운데는 임진왜란 시기 많은 전투를 치르면서 오랫동안 역사에 남을 전공을 이루어 낸 장수들도 포함되어 있다. 흥양현감을 지낸 배흥립과 장흥부사를 지낸 황세득 또한 이러한 장수들로서, 임진왜란 시기 조선 수군의 활약에 관심을 갖고 있는 분이라면 그들의 이름을 적어도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참고로 흥양현은 지금의 전남 고흥군에 해당하며, 장흥부는 지금의 전남 장흥군에 해당한다.

『난중일기』의 1594년 일기에는 '흥양현감'과 '장흥부사'가 각기 20여 차례 언급되어 있다. 하지만 이 1594년 일기에는 흥양현감과 장흥부사의 이름은 단 한 차례도 명시되어 있지 않다. 이러하기 때문인지 시중에 출판된 여러 『난중일기』 번역본을 살펴보면 1594년 일기에 등장하는 흥양현감과 장흥부사의 이름이 각 번역서마다 서로 다르게 서술되어 있다.

1594년 흥양현감과 장흥부사의 이름은 흥양과 장흥의 읍지에 실린 선생안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 읍지는 조선시대 각 고을의 지방사, 행정 사례, 지지(地誌) 등을 모은 책이다. 현재 지방 자치단체 등에서 편찬되는 시사(詩史)나 군지(郡誌) 등과 그 성격이 거의 같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이러한 시사나 군지의 편찬은 조선시대 읍지 편찬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이다. 조선시대 읍지에는 종종 역대 고을 수령의 명단을 수록한 「선생안(先生案)」(읍선생안(邑先生案), 관안(官案), 환적(宦蹟) 등으로도 불린다) 이 실리기도 하는데, 지금의 시사나 군지에 실려 있는 ‘역대 시장 명단’이나 ‘역대 군수 명단’ 등과 비견될 수 있겠다.

아래는 『흥양지(興陽誌)』의 「관안(官案)」에 실린 1594년 전후의 흥양현감 명단으로서, 1594년경 배흥립이 황세득으로 교체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아래는 『장흥읍지(長興邑誌)』의 「읍선생안(邑先生案)」에 실린 1594년 전후의 장흥부사 명단인데, 흥미롭게도 1594년 7월경에 황세득이 배흥립으로 교체된 사실이 확인된다.

 

 

즉, 『흥양지』의 「관안」과 『장흥읍지』의 「읍선생안」의 내용에 따르면, 1594년 7월경 흥양현감 배흥립과 장흥부사 황세득이 각각 장흥부사 배흥립과 흥양현감 황세득으로 서로 벼슬이 바뀐 것이다.

읍지에 수록된 선생안은 일종의 사료이며, 필요한 경우 사료 검토 내지 비판을 통해 그 신빙성이 입증된다. 다행히 선비의 나라 조선은 많은 문헌을 남겼기 때문에, 간략하나마 선생안의 신빙성 검토 진행이 그리 어렵지 않다.

예를 들어 『흥양지』의 「관안」은 김의일이 1587년에 도임했다고 기록했는데, 『선조실록』의 기사(21권, 선조20년(1587) 7월24일 신해 1번째 기사)를 살펴보면 1587년 7월 당시 흥양현감이 김의일임이 확인된다. 또한 「관안」은 배흥립은 1589년에 도임했다고 기록했는데, 배규의 『화당선생유집』에 실린 배흥립의 「행록」에서도 그가 1589년에 도임한 것이 확인된다.

『장흥읍지』의 「읍선생안」도 그 신빙성 검토가 가능하다. 예를 덜어 「읍선생안」은 유희선이 1591년 2월 도임했다고 기록했는데, 『선조실록』의 기사(25권, 선조24년(1591) 1월 5일 임인 1번째 기사)에 따르면 유희선은 1591년 1월 5일 장흥부사로 제수되었다. 「읍선생안」과 『선조실록』의 해당 기록이 거의 날짜까지 부합하는 셈이다. 또한 「읍선생안」은 장의현이 1596년 6월 도임했다고 기록했는데, 조응록의 『죽계일기』 1596년 4월 9일은 이날 장의현이 장흥부사로 제수되었다고 기록하였다. 이러한 방법으로 『흥양지』의 「관안」과 『장흥읍지』의 「읍선생안」에 실린 다른 인물들에 대한 기록도 확인해 볼 수 있다.

읍지의 선생안에는 고을 수령의 도임 일자 이외에 그의 품계나 고향 등 개인 신상이 수록된 경우도 있다. 이러한 내용은 고을 수령이 오고 간 그 시기에 기록하지 않으면, 금방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 기록으로 남길 수 없는 자료이다. 즉, 읍지의 선생안은 당대의 기록으로서 사료적 가치가 높은 자료이다.

 

전라우수영선생안 - 자료출처: 해남문헌집(1989, 해남문화원)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난중일기』의 1594년 일기에 등장하는 흥양현감과 장흥부사의 이름은 읍지의 선생안을 통해 입증할 수 있다. 또는 이와 반대로 『난중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관직을 통해 해당 고을의 읍지에 수록된 선생안의 신빙성을 확인하는 것도 가능하다.

읍지의 선생안이 사료적 가치를 지닌 문헌으로 주목받은 지는 그리 오래지 않다. 다행히 최근 들어 선생안과 관련된 연구 자료들이 계속 발표 또는 출간되고 있어서 앞으로 이 분야의 많은 발전이 기대된다.


[참고자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국립중앙도서관, 『흥양지(興陽誌)』
국립중앙도서관, 『장흥읍지(長興邑誌)』
국립중앙도서관, 배규(裵規), 『화당선생유집(花堂先生遺集)』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총설DB, 조응록(趙應祿)의 『죽계일기(竹溪日記)』
 

 

[윤헌식]

칼럼니스트

이순신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저서 : 역사 자료로 보는 난중일기

이메일 : thehand8@hanmail.net

 

작성 2024.06.28 10:20 수정 2024.06.2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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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