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인문기행]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다녀온 몽골여행

3부 몽골의 알프스 홉스골 가는 길

여계봉 선임기자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천국의 호수라 불리는 그 이름 만으로 한 번쯤은 가보고 싶은 곳. 인간의 때가 묻지 않은 만큼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 몽골의 홉스골(Khovsgol)이다. 이번 몽골여행의 대미를 장식할 홉스골을 향해 바타르 왕 마을 근처에 있는 호탁 온도르 약수 캠프를 나선다. 

 

에델바이스와 갖가지 야생화들이 넘쳐나는 초원 사이를 달리는 버스는 수시로 도로를 넘나드는 개념 없는 양과 염소 떼 때문에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도로를 가로막는 양과 염소 때문에 홉스골로 가는 시간이 지체되어도 순진하고 앙증맞은 모습에 버스 안에서는 연신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여행 첫날부터 끼니때마다 양고기로 포식하고 있는데 양과 염소 떼를 보고 이렇게 환호하는 우리의 이중성은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지 의문이다.

 

도로를 가득 메운 양과 염소 떼. 둘은 공생 관계다.

 

양과 염소들이 초원에서 사이좋게 풀을 뜯고 물을 마시며 무리 지어 다니는 모습을 보고 가이드가 한마디 한다. ″양은 눈이 안 좋아서 4m 이상을 못 봐요. 염소는 눈이 밝아 풀이 있는 데를 아니까 양은 염소를 따라다녀요. 그리고 염소는 추운 겨울에 털 많은 양에 기대어 살아요." 둘은 아름다운 공생 관계다.

 

홉스골로 들어가는 초입에 있는 무릉(Murun)은 몽골의 3대 도시다. 몽골어로 ″강″을 의미하는 몽골 북부의 이 도시에는 공항이 있다. 홉스골 위주로 관광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울란바토르 공항에서 1시간 반 걸리는 국내선 항공편을 주로 이용한다. 홉스골 가는 사람들은 반드시 무릉 시내의 마트에서 생수, 간식, 술, 음료수 등 필요한 생필품을 준비해야 한다. 홉스골 현지에서는 물품 구입도 힘들거니와 가격이 2배 이상이다. 석탄과 석회석이 많이 생산되는 이 도시에서 홉스골까지는 100여km 더 달려야 한다.

 

홉스골 가는 길목에 있는 무릉

 

버스가 무릉 시내를 벗어나 홉스골로 가는 길로 들어서자마자 갑자기 폭우가 내리기 시작한다. 도로 왼쪽의 높은 산에서 흘러내리는 급류에 도로 일부가 침수되자 반대편에서 오는 승용차들은 차를 돌려 오던 길을 되돌아간다. 우리 버스 기사는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버스를 산 쪽으로 바짝 붙여 침수된 도로를 우회하여 무사히 통과한다. 쳉헤르 온천에서 버스가 웅덩이에 빠지는 바람에 잠시 실추되었던 기사의 명예를 말끔하게 되찾은 셈이다. 버스는 고도를 계속 높여 달리다가 높은 언덕에 올라서자 잠시 걸음을 멈춘다. 

 

휴게소가 있는 전망대에 서니 발아래로 넓은 대평원이 펼쳐지고, 초원 가운데에는 강이 흐른다. 홉스골 호수에서 발원하여 흘러 내려오는 에그(Eg)강이다. 이 강은 몽골의 대지를 적시며 흐르다가 셀렝가강에 합류되어 몽골 북부를 관통하여 울란우데를 거쳐 1,500km의 대 장정 끝에 러시아의 바이칼 호수로 흘러간다. 그래서 홉스골 호수를 러시아 바이칼 호수의 시원(始原)이라고 하는데, 이곳 사람들은 몽골의 홉스골과 러시아의 바이칼을 자매 호수라고 부른다.

 

홉스골에서 발원하여 대평원의 초원 사이를 흐르는 에그강

 

언덕을 넘어서니 포장도로가 끝나는 곳에 입장료를 받는 국립공원 초소가 나오고, 초원길과 자갈길을 따라 북쪽으로 계속 올라가니 몽골 북부의 타이가(taiga) 삼림지대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홉스골 입구에 있는 하트갈(Khatgal) 마을에 들어선 것이다. 홉스골에는 남쪽의 하트갈, 서쪽 호숫가, 동쪽 호숫가, 북쪽의 항크(Khankh) 등 4개의 여행지가 있다. 호수 남쪽 가장자리에 있는 하트갈은 공원으로 들어가는 지점이고, 호수의 서쪽 기슭에는 숙박시설과 편의시설이 집중되어 있어 홉스골 여행은 주로 이 두 지역에서 진행된다.

 

하트갈 마을의 타이가 숲. 산정에는 아직도 눈이 쌓여 있다.

 

버스는 하트갈 마을을 지나 하얀 먼지를 꼬리에 달고 도로 확장 중인 비포장길을 덜컹대며 달린다. 시베리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타이가 숲을 지나 언덕에 올라서니 홉스골 서쪽 호숫가에 바다처럼 넓은 호수가 모습을 드러낸다. 푸른 호수에 푸른 하늘이 내려와 앉으니 눈이 시리다. 고개를 내려오니 사흘 동안 묵을 '쿤 오도도(Kuhn-odod)' 리조트가 우리를 반긴다. 모두 숙소인 통나무 집에 들어갈 생각은 잊어 버리고 리조트 초원에 지천으로 피어난 야생화밭에 퍼질러 앉아 말없이 장엄한 대자연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여기는 천년의 원시 자연이 그대로 숨 쉬고 있는 곳, 울창한 타이가 숲과 세상의 모든 푸른빛을 품은 생수보다 깨끗한 호수가 있는 곳, 홉스골이다. 

 

홉스골 호숫가에 자리한 쿤 오도도 리조트

 

몽골의 알프스라고 불리는 홉스골 호수의 크기는 제주도의 약 1.5배로 몽골에서 가장 큰 담수호이며, 면적으로는 두 번째로 큰 호수다. 이백만 년이 넘은 세계에서 17개의 고대 호수 중 하나로, 바다가 없는 몽골에서는 가장 중요한 식수 매장지이기도 하다. 겨우내 얼었던 호수의 얼음이 보통 5월 말쯤 되어야 전부 녹는다. 러시아의 바이칼 호수 남쪽 끝에서 서쪽으로 약 200km 떨어진 몽골의 북쪽 국경 근처에 있다.

 

리조트 지척에 있는 호숫가에는 잔디가 넓게 펼쳐져 있고 게르 형태의 방갈로와 소형 보트를 탈 수 있는 선착장이 있다. 선착장 앞에서 출렁이는 청옥색 물빛은 몇 년 전 다녀온 바이칼 호수보다 더 푸르고 맑아 보여 경건한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온다. 이 호수에는 작은 섬이 있다. 선착장에서 쾌속선 2대에 나누어 타고 10분 거리에 있는 소원의 섬(dream island)으로 달려간다.

 

 소원의 섬을 향해 달리는 보트

 

호수 한가운데에 있는 작은 섬에 내리자 모두 산 위로 올라간다. 바위 위에 서니 호수가 한눈에 들어온다. 녹음의 상쾌함과 고요하고 청명한 호수가 심신을 정화하듯 바라만 봐도 호흡이 차분해진다.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소원의 바위′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쌀을 뿌리고 돈을 돌 틈에 끼워 놓고 간절하게 자신의 소원을 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기복신앙 풍습이지만 하늘에 맞닿은 호수에서 이루어지는 주술 행위인지라 오늘따라 신성하게 느껴진다. 바위에 앉아 멀리 설산을 바라보며 호수의 담백한 고요를 음미하면서 홉스골이 베푸는 청정한 기운을 몸에 가득 담는다.

 

소원의 섬 끝에 있는 소원 바위

 

소원의 섬에 다녀온 후 가랑비가 내리는 호숫가를 따라 트레킹을 한다. 시간이 정지된 듯한 고요함 속에서 묻어 나오는 물결의 소리가 사람을 마음을 평온하게 한다. 걷는 동안 온전히 자연과 하나 됨을 느낀다. 누구인가 이런 멋진 호반에서 물결치는 소리를 들으며 야영을 하고 싶다는 말에 모두가 공감하는 표정이다. 

 

비가 그친 숙소 주변은 야생화가 잔디처럼 넓게 퍼져있는 천상화원이다. 이슬을 머금은 야생화는 저마다 독한 향기를 뿜어내고 있다. 생장 기간이 짧은 몽골 초원의 야생화는 꽃을 빨리 피우고 시들어야 하니 향기가 강하다. 길고 긴 겨울을 이겨내고 여름 한 철 독한 향기를 발하며 잠시 꽃을 피우는 처절하고 처연한 아름다움을 어찌 함부로 밟을 수 있겠는가. 초원을 걷는 발걸음이 조심스럽기만 하다. 

 

 호숫가에 쓰러진 고목은 자연이 만들어준 쉼터다.

 

리조트 근처에 있는 초원에는 양 머리로 보이는 하얀 해골이 부드러운 바람 아래 버려진 듯 초원의 일부가 되어 나뒹굴고 있다. 그 곁에는 늑대가 뜯어 먹다 남긴 하얀 뼈와 가죽만 남은 양의 잔해가 초원의 들꽃 속에 버려져 있다. 흔히 ′양처럼 순하다′, ′희생양이 되었다′라고 하는 것처럼 순박한 양은 예로부터 제물로 많이 바쳐져 희생의 대명사로 불려온다. 몽골에서 키우는 양의 숫자는 몽골 인구의 약 10배인 3,500만 마리라고 한다. 인간의 양식이 되어 자신의 육신을 바치는 몽골의 양을 위해 주위에서 예쁜 야생화를 몇 개 골라 꺾어 유골 근처를 장식하며 양의 영혼을 위로한다.

 

호수 근처 초원에서 방목하는 홉스골의 순한 양들 

 

호숫가를 돌고 캠프로 돌아오니 몽골 전통 요리 허르헉이 식탁에 올라와 있다. 양고기를 뼈째 적당한 크기로 잘라 감자와 당근, 양념과 함께 통에 넣고 뜨겁게 달궈진 돌을 채워 서너 시간 정도 찌는 요리인데, 기름기가 빠진 양고기의 담백한 맛이 훌륭하다. 친구 하나가 고기를 달군 돌이 건강에 좋다는 말을 듣고 식사 시간 내내 뜨거운 돌을 쥐고 있다가 손에 가벼운 화상을 입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기는 바람에 식당 안은 한바탕 웃음소리가 터져 나온다. 허르헉을 먹을 때 에덴 보드카를 곁들이니 양고기의 느끼함이 달아나 육류와 잘 어울린다. 화려한 색상의 뿔을 지닌 사슴 얼굴이 그려진 에덴 보드카는 숙취가 없고 목 넘김도 좋을 뿐 아니라 강한 도수에 비해 특유의 쓴맛이 없어 우리 팀의 공식 주류로 여행 내내 인기가 높다.

 

몽골의 전통 육류 찜 요리인 허르헉 

 

좋은 환경, 좋은 음식, 좋은 사람의 분위기에 취하는 바람에 늦은 시간에 식당에서 나온다. 홉스골은 10시가 훨씬 넘어야 해가 지고 밤이 찾아온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휘영청 밝은 보름달 때문에 오늘도 초원에 쏟아지는 몽골의 별 밤을 기대하기 힘들 것 같다. 홉스골의 6월은 낮은 가을이지만 밤은 초겨울 날씨다. 숙소로 가는 길에 깔아놓은 자작나무 널빤지에는 그새 살얼음이 얼어 모두 조심스럽게 걷는다.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홉스골의 밤

 

통나무 집 숙소에서 패딩을 입고 침낭에 들어가 잠을 청해도 난로에 불이 꺼지면 한기를 느낀다. 다행스럽게 리조트에서 아르바이트하는 몽골 대학생들이 저녁 내내 숙소를 들락거리며 난로 상태를 확인하면서 불이 꺼지지 않게 해준다. 순진하고 부지런한 몽골 젊은이의 마음 씀씀이 덕분에 따뜻하고 편안하게 잠이 든다. 

 

K-POP, K-FOOD, K-DRAMA, 한국 편의점 등 몽골의 한류 사랑이 유독 각별하지만 몽골에 올 때마다 늘 몽골 사람들의 친절과 배려에 감동한다. 도시를 벗어나 오지로 올수록 더 순박하고 살갑고 정겹다. 여행지에서의 만남이 특별한 건, 만난 시간이 짧든 길든 통하는 무언가를 쉽게 찾을 수 있고, 이를 통해 공간과 시간, 그리고 마음의 장벽을 허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행은 사람이다. 

 

 

[여계봉 선임기자]

수필가

공학박사

이메일 : yeogb@naver.com

 

 

작성 2024.07.01 10:27 수정 2024.07.01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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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