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진 칼럼] 천성(天性)

허정진

숫기 없고 악착같지도 못했던 어린 시절, 남 앞에 옹골차게 나서지도 못하고 빈축 맞게 눈치나 보며 겉으로만 맴돌아 매사 손해나 볼 것 같아서, 그래서 저 험하고 약은 세상 어떻게 살아가느냐고 부모 눈에 염려가 되던 그때 모습이 갑자기 떠올랐다. 눈 부릅뜨고 굳게 입 다문 야무진 동갑내기 사촌과 언제나 비교되었지만, 제각기 살아가는 재주와 요령들이 따로 있었는지 지금껏 그도 잘살고, 나도 잘 산다.

 

늦은 오후였다. 못 보던 강아지 두 마리가 언덕배기 오르막길을 따라 쫄래쫄래 집 앞으로 올라온다. 이제 반 돌이나 지났을까. 품에 안길만한 작은 몸집에 아장대듯 서로를 위무하며 귀여운 걸음이다. 저들도 유유자적, 풍광을 즐길 줄 알아서 이곳 산 중턱까지 한가로이 나들이를 나섰을까. 세상 구경하는 호기심에 주변을 연신 두리번거리며 제 할 짓 다 하고 오느라 한참을 기다려서야 눈앞에 나를 발견한다.

 

생긴 모양이 같으면 성향도 같을 것이라는 단정은 순간의 편견이었다. 겉보기에는 쌍둥이처럼 모양이나 체수가 똑같은 강아지인데도 엄연히 성격 차이가 분명해서 서로가 전연 다르게 반응했다. 한 녀석은 나를 보자마자 제 주인이라도 만난 듯 호들갑스럽게 꼬리를 흔들며 달려와 다리 사이를 오가며 폴짝거리는데, 또 다른 한 녀석은 두 눈 가득 경계심을 품고 저만치 떨어져서 눈치를 살피며 머뭇거리고만 있었다. 상대방의 친절이나 위해성 여부를 확인해야만 비로소 안심하겠다는 모양이다. 같은 어미를 두고 태어나고, 같은 주인의 보살핌 아래 다르게 대접받지도 않았을 텐데 저리 행동이 다른 것을 보니 사뭇 신기하기만 하다. 

 

천성이리라. 얼굴만큼이나 다른, 각각이 태어날 때부터 가진 마음 바탕과 본질 말이다. 인간의 존재는 그 천성에 의존한다. 사람들은 원래부터 성향이나 정서가 달라서 같은 현상이나 사안을 두고 인식과 반응이 가지각색인 것이 당연하다. 천성난개(天性難改)라 했다. 바꾸고자 한들 천년의 약속처럼 가슴에 인으로 박힌 그것을 어찌 들어낼 수 있으며, 내가 나 아닌 척 자기답지 않게 산다는 것이 남의 옷을 빌려 입은 것처럼 그 어색하고 불편함을 어찌 감당할 수 있을까 싶다. 

 

사회적인 우열이나 경쟁력을 기준으로 성품의 장단점을 논하지 않았다면 세상에 그 어느 것 하나 존엄하고 절대적이지 않은 게 없다. 어떻게 살고, 무엇을 좋아하는 것이 행복한가가 명약관화하게 정해져 있다면 그것보다 세상살이가 편하고 쉬운 게 어디 있을까. 정해진 절차대로, 누구나 일정한 공식대로 흉내 내며 살아가면 그만이겠지만 사람마다 가치판단의 척도가 다르기에 그 행복감이나 만족감도 모두 같을 수만은 없는 것 같다. 인생에 있어 성공과 실패란 것은 처음부터 없었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자기 의지와 처소대로 살아가는 것이 세상의 본 모습이니, 그렇게 모두가 똑같지 않음이 당연하기에 우리의 삶이 다채롭고 풍성한 것이 아닌가 한다.

 

혹시 누군가를 두고 도대체 이해가 안 되는 사람이라느니,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일 처리가 조금 미숙하다고 그 사람의 전체가, 그 사람의 평생이 별 볼 일 없는 인생이라고 단정한다면 그것은 조급하고 미욱한 생각일 것이다. 오늘 필요한 것이 내일은 불필요해질 수도 있고, 현재의 단점이 미래에는 장점으로 변모할 수도 있는 것이 변화무쌍한 세상의 이치이다. 

 

저기 넉살 좋고 붙임성 있는 강아지가 사람들에게 귀여움을 많이 받겠지만 그게 세상사는 유일한 방법이거나 정답은 아닐 것이다. 저 소심하고 미욱해 보이는 강아지가 제대로 빌어먹기나 할지 걱정도 앞서지만, 세상이 그리 편협하거나 옹졸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어디서 어떤 모양으로 자기만의 삶이 찾아올지도 모르고, 엄연히 운명이란 게 있어 어떤 주인을 만나느냐에 따라 삶의 질과 방향이 하루아침에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저들의 성격처럼 행복에 대한 관념도 서로 달라서, 주인한테 사랑받으며 잘 먹고 따뜻한 곳에서 지내는 것을 즐겨 할지도 모르고, 아니면 자기에게 자유롭고 편안한 세상 밖의 생활에 더 관심을 가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자유는 없지만 먹을 걱정 안 하는 노예가 되느냐, 자유는 있지만 하루의 살림이 근심인 품꾼이 되느냐 하는 인간사와 다를 바가 없는 듯하다.

 

체로키 인디언들은 자식들에게 ‘네가 아닌 것이 되려고 애쓰지도 말고, 다른 사람이 네게 무엇이 되라고 말하게도 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둥근 것은 둥근 것으로, 모난 것은 모난 것으로 저마다 존재 이유는 있다. 신은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너의 기쁨과 슬픔 속에 늘 함께한다. 나는 너를 다르게 만들 수 없었다.’ 세상은 남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가 살아내는 것이다. 남의 기준과 잣대로 나의 행복을 저울질하고 휘둘릴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더욱이 남의 불행이나 열등감을 통해 나의 만족감이 증대된다면 그보다 비열하고 비겁한 일도 없는 것이다.

 

삶은 온갖 생명의 꽃밭이라고 했다. 다양한 사람들이 꽃보다 아름다운 각자의 색깔과 향기를 담고 살아가는 곳이다. 어떻게 먹고 사는지,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으로 행복할지 그 의미와 가치도 제각각 다른 곳이다. 오른손잡이도 있고 왼손잡이도 있다. 기계는 잘 못 만져도 편지는 잘 쓰는 사람이 있고, 남 앞에 말주변은 없어도 마음 씀씀이 하나로 더 많은 박수를 받는 사람도 있다. 비록 이해하기가 당장 어렵다고 할지라도 그 서로의 다름과 차이는 분명 인정을 해야겠다.

 

강아지들의 귀여운 모습에 먹을거리라도 꺼내주고 쓰다듬어 주고도 싶었지만, 그것이 그들과의 탁정(託情)이 되고 번거롭게 잦은 방문이 될까 봐 짐짓 관심 없는 체 그냥 집 안으로 들어와 버렸다. 살그머니 창문 너머로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박정한 사람의 뜻을 헤아렸는지 섬돌 주변을 잠시 맴돌고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자기들 갈 길로 돌아간다. 이번에는 오히려 나를 보고 주춤거렸던 강아지가 앞장서서 당당하게 걷는 것이 아마도 좁디좁은 인간 속내를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그것 보라고 희떱게 조롱이라도 하는 것 같아 괜히 가슴이 뜨끔해진다.

 

저들이 걷고 있는 저 길도 인생행로와 결코 다를 바가 없겠다 싶어 일순간 신산스러운 기분이 든다. 천성은 영혼의 지문이다. 삶에 옳고 그름은 없을 것이니 사람에게나 강아지에게나 산다는 건 역시 물음표 같은 것이 아닐까 한다. 

 

 

[허정진]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

저서 : [꿈틀, 삶이 지나간다]

[그 남편, 그 아내]

[시간 밖의 시간으로]

[삶, 그 의미 속으로]

천강문학상 수상

등대문학상 수상

흑구문학상 수상

선수필문학상 수상

원종린수필문학상 수상

이메일 :sukhur99@naver.com

 

작성 2024.07.02 06:39 수정 2024.07.02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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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