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식 칼럼] 지금쯤 그 여자아이는

김태식

 

1980년대 초반 승선 근무를 할 때 호주 동부에 있는?제랄톤?이라고 하는 작은 도시를 2년간 다니고 있었다. 일본에서 이곳으로 다녔다. 그곳에서 부두 관련 일을 하는 호주인 스미스라는 분을 알게 되었다. 그분은 당시 나와 비슷한 30대 초반의 나이여서 자연스럽게 친하게 되었다. 

 

어느 날 이분의 집으로 저녁 식사 초대를 받아 방문하게 되었다. 그 집에는 딸아이가 둘 있었는데 세 살과 한 살이었고 피부색이 동양인이었다. 이 여자아이들은 자매였고 한국에서 입양되어 왔다고 했다. 

 

자매는 너무나 예뻤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에다 하얀 피부까지 너무나 사랑스러워 보였다. 노랑머리 백인의 이방인 아버지가 나의 친아버지가 아님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새까만 머리카락은 더욱 검어 보이는 그러한 여자아이들이었다. 

 

스미스씨는 저녁이면 언제나 그의 부인과 함께 큰애는 걷게 하고 한 살배기 갓난애는 안고 산책을 나오는 것이었다. 나도 때로는 그 갓난애를 안고 싶었다. 내가 한국을 떠나올 때 아빠와 떨어지기 싫어 울어대던 내 딸애와 동갑내기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내 딸을 두고 올 때 1년 동안은 못 본다는 해외 근무에 마음 아파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2박 3일 동안 그곳에 머무르는 동안 그 여자애를 만날 때면 유달리 그 애는 나만 보면 생글생글 웃었고 그 맑은 눈동자는 기분 좋아하는 눈치였음에 틀림이 없었다. 

 

간혹 내가 그 애를 안았다가 떼어놓을라치면 마구 울어대는 것이었다. 가지 말라는 뜻이었던 것 같다. 겨우 한 살인 갓난 아이에게도 한국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후각이 있었단 말인지 지금도 알 수 없는 일이긴 하다. 나에게 안겨 있는 동안은 아주 편안하게 눈망울을 굴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 여자애의 이름은 체리라고 했다. 체리 스미스. 아무런 의미도 없는 서양식 이름이 붙여져 있었다. 그런 그 여자아이에게 나는 한국의 내음을 조금이라도 심어 주고 싶었다. 그러나 일본과 호주 이곳만을 다니다 보니 한국의 향기를 전할 길이 없어 안타까울 뿐이었다. 내가 그 여자애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안아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 속에는 내 자신에게 묻는 말뿐이었다. 누가 낯설고 물선 곳 말도 다르고 피부 색깔도 다른 이곳으로 보냈단 말인가. 원하지도 않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마음대로 정해졌단 말인가? 하고 독백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본인의 의사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축복받아 태어난 한국의 어린애가 왜 이곳으로 와 있단 말인가? 하는 부끄러움까지 들기도 했다. 이 자매의 부모는 누구란 말인가? 아무래도 말 못 할 무슨 사연이 있긴 하겠지만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이런 감정을 알기라도 했던지 나와 몇 번 만나서 그랬던지 나만 보면 그저 달려들었고 갓난애는 내 품에 안기면 편안한 잠을 청하기도 했었다. 밤이 늦어 나의 숙소로 돌아가야 할 때쯤 그 애들은 나를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갓난애가 울면 그 언니도 울어대는 것이었다. 그때 나의 시야도 흐려지고 있었다. 이미 나의 눈시울도 젖어 있었던 것이다. 내 딸애의 울음소리가 생각나서 그랬기도 했을 것 같다. 

 

세 살배기 애는 어느덧 나를 보고는 ?아빠?라고 부르기도 했다. 나의 가슴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얼마나 불러보고 싶었던 이름이었을까? 입양 6개월만의 첫 외침이었으리라 생각된다. 그 소리가 지금도 나의 귀에는 쟁쟁하게 들려 오는 듯하다. 40여 년 전의 소리였다 할지라도. 

 

내 딸애와 동갑내기이니 지금쯤 훌륭하게 성장했기를 믿는다. 그때 그 자매들의 눈망울이 너무나 또렷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믿는 이유 중의 분명한 것은 그녀의 아버지 스미스씨가 아주 좋은 사람이었으며, 좋은 한국인 입양아로 키우겠다고 나에게 약속했었기 때문이다. 나는 스미스씨가 그 약속을 지켰으리라 굳게 믿는다. 거기에다 그 두 사람은 애를 못 가지는 부부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 한국의 해외 입양 실태가 어떠한지 나는 정확하게 모른다. 그것은 어떠한 이유에서 든 불행한 일일 수밖에 없다. 그 여자아이들이 성장하여 지는 석양을 보면서 눈물짓는 나이가 되면 한국 쪽으로 바라볼 것이다. 출생의 비밀을 알고 싶어 베갯잇을 적시리라. 성인이 되면 한국계 호주인이라는 얘기를 해야 할 것이다. 

 

나는 ‘체리 스미스’ 그 여자애를 향한 마음을 이렇게 기원해 본다. 지금쯤 한국의 부모를 찾아서 재회의 기쁨이라도 누렸으면 좋겠다. 혹은 ‘40 여 년 전 한국에서 입양되어 호주의 명문 고교와 대학을 졸업한 두 자매가 유창한 영어와 한국어로 한국 정부의 통역을 맡아 화제가 되고 있다’는 내용이라도.

 

 

[김태식]

미국해운회사 일본지사장(전)

온마음재가센터 사회복지사(현)

울산신문 등대문학상 단편소설 당선 등단

해양문학상 논픽션 소설 당선

사실문학 시 당선 등단

제4회 코스미안상 수상

이메일 : wavekts@hanmail.net

 

작성 2024.07.02 08:12 수정 2024.07.02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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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