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인문기행]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다녀온 몽골여행

4부 홉스골에 사는 사람들

여계봉 선임기자

새벽에 통나무 숙소의 난로에서 자작나무 껍질이 타면서 ′자작자작′ 내는 소리에 잠을 깬다. 이내 은은하고 향긋한 자작나무 타는 냄새가 코를 간질인다. 창을 뚫고 숙소 안으로 들어온 풀벌레 소리에는 풀 내음이 녹아있다. 무언가에 이끌린 듯 자리에서 일어나 숙소 밖으로 나가니 넓은 초원에는 비 온 뒤의 청아함이 그대로 담겨있다. 호수로 가기 위해 근처 자작나무 숲으로 들어서니 초록의 자작나무 잎들의 떨림이 온몸을 감싼다. 싱그러운 초록 향으로 샤워를 하면서 호수로 나가니 몽골인들이 ′어머니의 바다′라고 부르는 바다 같은 호수의 수평선 너머로 해가 떠오른다. 

 

홉스골의 아침을 여는 호수의 장엄한 일출

 

선착장 옆, 한적한 가장자리의 고사목 위에 앉아 담백한 고요를 음미하듯 신선한 공기를 깊게 마셔본다. 새벽이지만 여기저기서 풀을 뜯는 소와 양, 그리고 곁에 선 목동의 모습이 평화롭고 또 한가롭다. 호수에서 불어오는 부드럽고 선뜻한 바람이 목덜미를 어루만진다. 물빛이 너무 영롱하고 깨끗해서 손을 담그니 너무 시리다. 같이 간 친구와 용기를 내어 호숫물에 손과 발을 담그고 호숫물도 맛보니 몸과 마음이 동시에 정화되는 느낌이다.

 

차갑지만 정겨움이 담긴 ′어머니의 바다′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홉스골 북쪽의 깊은 타이가 숲속에는 순록을 키우면서 살아가는 소수민족 차탄(Tsaatan)족이 있다. 시베리아에서 넘어온 유목민족으로 그들의 생활은 몽골의 다른 유목민들에 비해 훨씬 원시적이다. 지금은 이백 명 정도밖에 남지 않아 인류학적으로도 굉장히 경이롭고 불가사의한 부족의 생활 풍습을 직접 체험하러 리조트를 나선다. 

 

여름에만 열리는 홉스골 서쪽 호숫가의 차탄족 마을

 

차탄족 마을을 재현해서 만든 체험장에 들어서자 초원 위에 무표정하게 앉아 있는 순록들이 먼저 눈에 띈다. 순록을 타고 다니며, 순록의 고기와 가죽으로 생활해 나가는 그들은 순록의 곁을 떠날 수 없다. 그들은 어째서 따뜻한 초원에서 양을 기르지 않고, 살기 힘든 곳에서 고생을 사서 할까. 그것은 순록 때문이다. 차탄족이 순록을 길들인 것은 소금이었고 염분이 부족한 순록들은 차탄족이 주는 소금을 얻어먹기 위해 그 주변을 떠나지 않는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집들과 흡사한 ′오르츠(Urts)′는 게르(Ger)와는 그 모양새부터가 다르다. 게르가 지붕이 둥그런 천막이라면, 오르츠는 뾰족한 원추형이다. 천막 가운데는 난로가 있고, 바닥에는 동물 가죽을 깔아놓았는데, 이불과 살림살이 몇 가지가 전부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수천 년 전으로 돌아간 기분이다. 

 

나무를 엮고 순록 가죽으로 덮어 만든 이동식 움막 오르츠

 

차탄족을 찾는 관광객들이 늘어나자 일부 차탄족들은 여름이면 이곳 호숫가까지 순록을 데리고 내려와 전통 천막인 오르츠를 세워놓고 전통 의상을 입고 사진을 찍는 대가로 돈을 받거나 천막 뒤에서 자신들의 전통 장신구와 생활용품을 팔기도 한다. 하지만 많은 차탄족들은 자신들이 이렇게 전시용 박물관 대접을 받는 것에 대해 아주 못마땅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애당초 ′고향′이나 ′정착′이라는 개념이 없는 대부분의 차탄족들은 지금도 몽골과 러시아의 국경을 오가며 진정한 노마드(nomad)의 삶을 살고 있다.

 

차탄족 마을 방문을 마치고 근처에 있는 몽골 샤먼(Shaman, 무당)의 성지를 들렀더니 마침 주술의식이 성대하게 열리고 있다. 제사장에 세워진 13개의 어워(Oboo)에는 형형색색의 오방색 헝겊이 둘려져 있고 제사장 안은 소원을 빌러 나온 현지인들의 요란한 기도 소리로 신령스러움은 느낄 수 없고 마치 시장처럼 시끌벅적한 분위기다. 우리의 서낭당 솟대와 비슷한 13개의 어워는 몇 년 전, 세계 샤먼의 본산지인 바이칼의 후지르 마을 부르한 바위에서 본 13개의 세르게(Serge)와 흡사하다. 어워가 13개인 이유는 세상이 10개의 축과 3개의 시간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라는데, 13명의 신을 의미하는 바이칼의 세르게와는 그 뜻이 약간 다르다. 12 지(支)의 동물상들이 서 있는 어워 앞에서 현지인들은 자신의 띠에 해당하는 기둥에 술을 붓고 돈과 음식을 올려놓고 소원을 빌고 있다.

 

몽골 샤먼의 성지인 홉스골의 13개 어워

 

샤먼은 짐승들의 이나 발톱, 가죽, 깃털 등으로 장식한 복식에 눈이 그려진 모자를 쓰는데, 앞면에 가느다란 끈 장식이 늘어져 있어 얼굴이 보이지 않는 가면에 가깝다. 샤먼은 북을 점점 빠르게 치면서 높이 하늘로 손을 번쩍 들어 올리는 동작을 여러 차례 반복하는데 이것은 천신과 접신(接神)하는 행위라고 한다. 잠시 후 샤먼은 북으로 얼굴을 가리고 마치 방언처럼 알 수 없는 주문을 외는데,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의 안녕을 빌고 복을 주는 내용이란다. 오늘 주술의식은 액을 막고 복을 주는 자리여서 현지인들에 섞여 시계방향으로 어워를 3번 돌면서 볶은 밀을 고수레하며 이번 여행이 무사히 끝나기를 기원해 본다.

 

 하늘신과 사람과의 교감을 중개하는 몽골의 샤먼

 

비가 그친 오후, 호반의 승마장으로 이동하니 하늘과 호수가 붙어있는 수평선 위로 황홀한 무지개가 수를 놓는다. 조금 전에 낙마 사고가 2번이나 발생했다고 가이드가 잔뜩 겁을 준다.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구름이 만들어 놓은 초원 위의 그림자를 밟으며 너른 초원에 굳건히 네 발을 디딘 풍채 당당한 백마에 오른다. 땅 위와 달리 마상(馬上)의 세상은 분명 다르다. 눈으로는 바다 같은 푸른 호수가, 마음으로는 초원을 질주하는 노마드의 무한 자유가 성큼 다가온다. 발걸음을 재는 말 위에 앉아 잠시 긴 호흡으로 말과 교감을 나눈 후 본격적으로 노마드의 질주 본능을 즐긴다. 

 

호숫가에서 살아있는 말과 오롯이 교감을 나눈다.

 

몽골인들에게 말과 말타기는 그들의 역사이자 삶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어렸을 때부터 말과 함께 살아간다. 몽골에 산재한 총 480만 마리 이상의 말을 누가 얼마나 많이 소유하고 있는가가 부의 척도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에 수도인 울란바토르에 사는 청년 중 상당수가 말을 타본 경험이 없다고 한다. 오토바이를 즐겨 탄다는 가이드의 아들도 아직 말을 타보지 않았다며 '몽골에서 세 발 이상 거리는 말 타고 간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고 씁쓸해한다.

 

 호수에서 승마를 즐기는 몽골 청년들

 

밤 11시 캠프 불가에 둘러 앉아 세프가 구워주는 양과 소고기 샤슬릭을 먹으면서 맥주와 보드카를 한 잔씩 나눈다. 술이 들어가니 모두 동심으로 돌아가 추억의 노래를 부른다. 그동안 우리를 성심껏 서빙 해 준 가이드와 기사, 캠프 직원들은 처음에는 어색해하다가 나중에는 율동에 맞춰 몽골 민요를 흥겹게 부른다. 화력 좋은 참나무 장작의 온기를 곁에 있는 친구들과 나누어 가지면서 우리 만남도 참나무 알불 같이 오래오래 가길 기원해 본다. 호숫가 초원에는 요요한 달빛이 내려앉고 장작 불꽃들은 하늘로 날아가 홉스골의 별똥이 되면서 밤은 깊어만 간다. 

 

동심으로 돌아가 즐긴 캠프 화이어의 낭만

 

그동안 홉스골에 있으면서 오로라처럼 번지는 북방의 무지개를 보고, 호숫가를 느릿느릿 배회하는 말떼도 만나고, 접신한 샤먼의 입에서 나오는 몽골 고문(古文)도 듣고, 차탄족 순록의 눈망울에 담긴 아련함과 외로움도 느껴본다. 젖과 차, 전통 간식을 아낌없이 내어주고 베푸는 몽골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씨는 밤하늘에 반짝이는 은하수만큼이나 포근하게 빛난다. 

다음 날 아침, 사흘간 머물렀던 홉스골을 떠난다. 도로 주위는 야생화가 만발한 백두산 서파 초입에 있는 대평원의 고산 화원을 연상시킨다. 여기저기서 풀을 뜯는 양과 소의 평화로운 모습을 뒤로 하고 버스는 무릉을 향해 달린다. 

 

홉스골 고산 초원지대의 풍요로운 여름 풍경

 

무릉을 지나 볼강 가는 길에 만난 셀렝가강은 몽골 항가이산맥에서 발원하여 홉스골에서 내려오는 에르강을 품고 몽골 북부지방을 거쳐 러시아의 바이칼로 흘러 들어간다. 강가에 있는 대평원은 한눈에 봐도 딱 알 수 있는 캠핑 포인트다. 그래서인지 강가에는 지붕에 루프 캐리어를 설치한 SUV 차량들이 눈에 많이 띈다. 우리나라 낙동강과 분위기가 비슷한 강가 초원에 서서 홉스골에서 출발하여 1,000km 떨어진 바이칼로 흘러가는 강물을 애틋하게 바라본다.

 

셀렝가강 강가에 선 16인의 자유로운 영혼들  

 

저녁에 도착한 볼강 근처에 있는 스위스풍 리조트인 '아름다운 캠프(Zhargalantyn Zuslan)'는 야생화가 만발한 대평원의 천상화원이다. 모두 어린아이처럼 야생화밭에서 뛰어다니면서 연신 사진을 찍는다. 몽골의 마지막 밤이 아쉬워 남은 술과 안주를 들고 야생화 꽃밭 속에 있는 팔각 정자로 모인다. 몽골여행의 백미는 '별 밤'이지만 달이 너무 밝아 별 밤이 제대로 열리지 않아 아쉬움이 크다. 대신 평원의 나지막한 산등성이를 붉게 적시는 석양을 보며 눈물 떨구는 감동을 맛본다.

 

 스위스풍 야생화 캠프의 ′꽃보다 남자들′

 

새벽 4시 볼강 근교의 숙소에서 울란바트르를 향해 출발한다. 여명이 밝아오자 몽골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에르데네트에 도착한다. 이곳에 사는 가이드의 어머니가 준비한 도시락으로 버스 안에서 식사를 하면서 빗길을 뚫고 도로를 질주한다. 작년에 4차선으로 확장된 다르항에서 울란바토르로 가는 고속도로 주변에는 며칠 전에 내린 폭설로 설산의 풍경을 연출한다. 몽골 국토가 한반도의 7배이니 울란바토르까지 오는 동안 다양한 날씨를 체험한다. 장거리를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이순신전략연구소 이봉수 소장이 두 영웅 이순신과 징기스칸의 전략을 서로 비교해서 강연한 특강을 끝으로 몽골 대장정은 마침내 그 마침표를 찍는다.

 

드넓은 초원과 메마른 사막, 밤하늘의 별, 들판을 붉게 물들이는 황혼, 그리고 게르에서 먹었던 양고기와 보드카, 지나치게 자연 친화적이었던 초원의 화장실. 산에서 들에서 호수에서 사막에서 광활한 대지만큼 다양한 삶의 얼굴을 만날 수 있었던 풍요로운 여름의 몽골. 사막과 초원 2,000여km를 질주하면서 광야에 부는 바람과 거친 대자연이 빚어낸 푸른 초원과 바다 같은 호수를 가슴에 담고 16인의 노마드들은 이제 몽골을 떠난다.

 

모든 것을 붉게 물들이는 몽골 초원의 일몰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니 황량한 고비사막이 보인다. 이제 몽골은 남쪽 고비사막만 남았다. 우리가 가야 할 미지의 땅 고비사막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여행의 끝은 새로운 여행의 시작이다.

 

 

[여계봉 선임기자]

수필가

공학박사

이메일 : yeogb@naver.com

 

 

작성 2024.07.04 10:30 수정 2024.07.04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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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