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진왜란 시기 조선 수군의 판옥선은 당시 해전을 승리로 이끄는 데 커다란 역할을 담당하였다. 최근 판옥선의 학술적 복원을 시도한 연구서(『판옥선 학술 복원 보고서』, 2021,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발간되었는데, 한중일 선박 자료와 회화 자료 등을 근거로 구조를 해석하고 조선공학적 분석으로 성능을 밝혀내는 등 판옥선의 본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훌륭한 연구 성과를 소개하였다.
많은 분이 잘 아시는 바와 같이 판옥선에는 다수의 화포가 탑재되어 있었고, 이를 운용하기 위한 화약도 함께 실려 있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판옥선에서 많은 화포를 운용하는 것은 커다란 화재의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충무공 이순신의 『난중일기』에는 1595년 충청수사의 판옥선에서 발생한 커다란 화재 사건에 대한 기록이 있다. 다음은 그 해당 기록이다.
『난중일기』, 1595년 3월 17일
충청우후의 급보에 “수사(충청수사) 이계정이 불이 나서 물에 빠져 죽고 군관과 격군 도합 140여 명이 불타 죽었다.”라고 하여 매우 놀라웠다.
[원문] 忠淸虞候馳報 水使李繼勛失火投水死 軍官及格軍並百四十餘名焚死云 可愕可愕.
* 원문 ‘이계훈(李繼勛)’은 ‘이계정(李繼鄭)’의 오기이다. 1594년 12월과 1595년 1월에 충청수사 이계정에게 내려진 유서 및 유지 등이 현전하여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59호 영산사소장문서일괄(英山祠所藏文書一括)로 지정되어 있다.

최근에 발표된 연구 논문(김병륜, 「판옥선의 승조원 편성에 대한 연구」, 『이순신연구논총』 20, 2013)에 따르면 임진왜란 시기 일반 판옥선의 탑승 인원은 130~140명 정도이다. 수군절도사와 같은 지휘관이 탑승했던 판옥선의 탑승 인원은 이보다 조금 더 많았을 것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더라도 충청수사 이계정의 판옥선에서 140여 명이 죽었다는 것은 탑승 인원 대부분이 사망했음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한 화재라기보다는 화약의 폭발 사고였을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위 화재 사고는 당시 커다란 사건이었기 때문에 다른 사료에서도 관련 기록이 발견된다. 임진왜란의 피난일기로 유명한 오희문(吳希文, 1539~1613년)의 『쇄미록(瑣尾錄)』 1595년 3월 2일 일기에 이 사건이 기록되어 있는데, 다음은 그 해당 기록을 옮겨놓은 것이다.
오희문, 『쇄미록』, 1595년 3월 2일
충청수사가 수군을 거느리고 영남에 있는 적의 경계로 가는데 겨우 바닷속으로 들어가자 불이 주방에서 나서 화약을 둔 곳으로 연소되어 화약이 크게 터져서 뱃속 사람이 모두 타 죽고, 혹 물로 뛰어들어 산 자가 몇이 되지 않는데, 수사도 또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가 두 아들과 함께 빠져 죽었다고 하니 불쌍하다.
위 기록은 당시 오희문이 소문으로 들은 것을 일기로 옮긴 것이다. 소문을 글로 옮긴 것을 모두 믿을 수는 없지만, 그 내용이 위 『난중일기』의 내용과 거의 부합하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특히 화약이 크게 터졌다는 내용은 대부분의 탑승 인원이 죽은 그 결과를 고려해 볼 때 상당히 신빙성이 있는 기록으로 생각된다.
정유재란 때 흥양현감으로서 일본군과 싸워 전공을 세운 최희량(崔希亮, 1560~1651년)의 문집인 『일옹집(逸翁集)』에도 위 화재 사고가 언급되어 있다. 이 책에 수록된 「일옹유사(逸翁遺事)」에 따르면, 최희량이 그의 장인이었던 충청수사 이계정의 배를 타고 한산도로 가다가 중간에 불이 나서 대부분 불에 타거나 물에 빠져 죽었는데, 최희량은 가죽으로 된 북을 붙잡고 물에 떠 있다가 가까스로 지나가는 배를 만나 구출되었다고 한다.
위 사건을 현대인들의 관점에서 보자면 단지 흥미로운 이야기로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결코 웃을 수 없는 가슴 아픈 일이었을 것이다. 목숨을 걸고 전쟁에 나간 이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려 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참고자료]
『판옥선 학술 복원 보고서』, 2021,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김병륜, 「판옥선의 승조원 편성에 대한 연구」,
『이순신연구논총』 20, 2013, 순천향대학교 이순신연구소
오희문 저, 이민수 역, 『쇄미록』, 2015, 사단법인 올재
한국고전종합DB, 최희량(崔希亮)의 『일옹집(逸翁集)』 권2, 「부록(附錄)」-「일옹유사(逸翁遺事)」
[윤헌식]
칼럼니스트
이순신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저서 : 역사 자료로 보는 난중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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