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다닌 지 30년이 넘었다. 주말은 물론이고 평일도 시간이 나면 자주 산을 오른다. 주위에서 산을 좋아하는 이유를 물어보면 한결같이 ″산에서 완전한 자유를 느끼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나이가 들면서는 수직의 산에 수평의 여행까지 더하여 이제는 입체적으로 ″자유″를 찾아 나서고 있다.
필자는 마음이 혼란스럽고 번잡할 때 가장 오래된 불교 경전 <숫타니파타>의 한 구절을 즐겨 암송하는데, 읽다 보면 신이 아닌 인간 붓다가 생생한 목소리로 ″자유!″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홀로 행하고 게으르지 말며
비난과 칭찬에 흔들리지 말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불경 <숫타니파타> 중에서 -
가끔 산다는 것이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불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인생은 고통의 바다로 비유된다. 우리는 그 고통의 바다 위를 떠다니는 작은 뗏목의 사공이라고 할 수 있다. 젊은 붓다는 사물의 이치를 깨닫고자 하는 중생들에게 불경 <숫타니파타>를 통해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외부의 그 어떤 비난이나 욕설에도 흔들리지 않고,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사소한 일을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진흙에 물들지 않고 꽃을 피우는 연꽃처럼 번뇌에 굴하지 말고, 내 갈 길을 타인에게 구하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자유로운 영혼이 되라고 일렀다.

이렇듯 붓다의 가르침을 한마디로 말하라고 한다면 ″자유!″라고 답할 수 있다. 그런데 성자는 아니지만 자유의 상징이자 그 자체인 인물이 하나 있다. 바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다. 조르바는 보통 사람들의 격과 틀을 넘어서 있는 존재다. 그래서 자유롭다. 너무 자유로워서 사람들은 ″조르바는 자유 그 자체″라고 말한다.

″한 장소에 오래 머물러 있으면 나는 그만 죽을 것 같다.″라고 고백하며 인간이 가진 자유로움을 노래한 영혼의 순례자이자 그리스의 이방인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는 평생을 러시아, 이탈리아, 중국 등 해외를 여행하며 기행문을 쓴 작가로도 유명하다. 그의 대표작 ′그리스인 조르바′는 50대 남성들이 가장 많이 구매한 책이라고 한다. 소설 속 조르바의 나이가 60대인데 왜 유난히 50대 남성들에게 인기를 끌었을까? 50대면 슬슬 은퇴를 해야 할 나이라서 어쩌면 조르바처럼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고 싶은 욕망 때문일까? 필자는 2022년 8월과 2024년 6월, 2회에 걸쳐 세상에 한없이 솔직한 영혼을 가진, 진정 자유가 무엇인지 아는 두 사람과 함께 몽골의 북부와 중부를 두루 둘러본다.

몽골 하면 우선 초원이 떠오른다. 푸른 풀들이 빼곡히 자리한 광활한 초원에 드문드문 피어난 야생화는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서 강인한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여기저기 흩어져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와 양 떼의 모습은 한가롭기 그지없다. 또 이들과 함께 초원에 자리 잡은 이동식 집인 게르는 유목민들의 소박한 삶과 정겨운 모습을 느끼게 한다. 태곳적 신비를 간직한 몽골의 대초원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의 생동감 넘치는 건강한 삶을 접하면 덩달아 무한한 자유를 느끼게 된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동쪽으로 약 70km 떨어진 곳에 테를지(Terelj) 국립공원이 있다. 몽골의 자연경관을 가장 가깝게 볼 수 있다는 지리적 조건으로 인해 몽골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섬처럼 박혀 있는 초원 한가운데에서 몽골 전통 가옥인 게르(ger)에 묵으며 가진 것은 별로 없으나 가난을 모르고, 두 시간이면 해체와 조립이 가능한 게르를 싣고 정처없이 이동하며 살아가는 그들의 집착이 없는 자유로운 삶에 감동한다.
몽골은 현실감을 잊어버리게 만드는 곳이다. 모래 언덕은 또 다른 모래 언덕으로 이어지고, 초원의 구릉은 또 다른 초원으로 끝없이 이어지던 땅이다.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텅 빈 공간이 광활하게 펼쳐지고 태초의 모습 그대로의 모래 언덕과 호수와 초원이 있다. 몽골의 젖줄 톨(Tull)강이 지나가는 초원 위에 노니는 소와 야크 떼가 펼치는 목가적 풍경은 진정 이 여행이 자유와 평화를 위한 여정임을 단적으로 알려준다.

드넓은 초원과 메마른 사막, 밤하늘의 별, 들판을 붉게 물들이는 황혼, 그리고 게르에서 먹었던 양고기와 보드카, 지나치게 자연 친화적이었던 초원의 화장실. 산에서 들에서 호수에서 사막에서 광활한 대지만큼 다양한 삶의 얼굴을 만날 수 있었던 풍요로운 여름의 몽골. 몽골 대초원에 굳건히 네 발을 디딘 매끈한 말 위에 올라앉는 순간, 사막과 초원을 질주하면서 광야에 부는 바람과 거친 대자연이 빚어낸 푸른 초원과 바다 같은 호수를 가슴에 담는다. 순수 자연과 유목민의 건강한 삶, 무한 자유와 천년의 고독이 성큼 다가선다.

오로라처럼 번지는 북방의 무지개를 보고, 러시아 국경과 가까운 홉스골 호숫가를 느릿느릿 배회하는 야크 떼도 만나고, 접신한 샤먼의 입에서 나오는 몽골 고문(古文)도 듣고, 2백 명이 채 안남은 소수민족 차탄족이 키우는 순록의 눈망울에 담긴 아련함과 외로움도 느껴본다. 젖과 차, 전통 간식을 아낌없이 내어주고 베푸는 몽골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씨는 밤하늘에 반짝이는 은하수만큼이나 포근하게 빛난다.

2~3시간을 달려도 초원 또 초원. 초원길은 포장보다 비포장길이 더 많다. 군데군데 양과 염소들이 길 위에 올라와 통행을 방해한다. 운전자는 급제동하여 가축들이 스스로 비켜서길 기다린다. 울퉁불퉁 황톳길을 달리는 미니버스는 승객들을 들었다 놨다 말을 탄 듯 요동치게 만든다. 불편마저 재미가 되는 곳, 차가 초원의 웅덩이에 빠져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서도 짜증 내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 여기는 몽골이다.

′힐링′이라는 말이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번뇌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법을 잘 모른다. 결국 운명의 열쇠를 쥔 것은 자신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타인의 존재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으로 자유로워지는 길이 아닐까. 그래서 마음이 혼란스럽고 번잡할 때 <숫타니파타> 한 구절을 읽어나가면 큰 위안이 되리라 믿는다.

격과 틀을 넘은 존재 조르바는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해 살라고 말한다. 내일 죽을 것처럼 자유로운 삶을 살라고 한다. 경험에서 오는 지혜와 통찰이 담긴 그의 삶을 늘 배우려고 노력하며 산다.
조르바는 말한다. ″두려움을 떨치고 광야로 나가야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다.″

[여계봉 선임기자]
수필가
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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