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어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아내는 중요한 단서다. 우리는 자기 생각을 언어로 표현한다. 따라서 말하는 사람의 말을 듣고 그 사람의 세계관이나 직업, 사회적 지위 등을 알아낼 수 있다. 글을 통해 그 사람의 생각과 인품을 알아내기 위해 우리 조상들은 관리를 뽑을 때 과거 시험으로 관리를 등용했다. 과거 시험은 주로 시를 짓게 했는데, 시를 통해 사람의 학식과 인품을 알아내는 방식을 채택했었다.
당파 싸움에서 정적을 쫓아낼 때도 시의 몇 구절을 문제 삼아 역적으로 몰아세우는 비열한 방법을 쓴 역사적인 사건들이 있다. 남이 장군의 시 북정가(北征歌)의 시구 중 “平”을 “得”으로 고쳐서 유자광이 역적으로 모함했다. 이렇게 글을 문제 삼아 정적을 제거한 역사적인 사건은 많이 있었다.
白頭山石磨刀盡 백두산석마도진 →백두산의 돌은 칼을 갈아 다하고
豆滿江水飮馬無 두만강수음마무 →두만강의 물은 말에 먹여 다하리
男兒二十未平國 남아이십미평국 →사나이 스물에 나라를 (평화롭게)평정하지 못하면
後世誰稱大丈夫 후세수칭대장부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부르리오
-남이(南怡) 장군의 북정가(北征歌)
위의 시구 “男兒二十未平國을 男兒二十未得國”에서 “平”자 한 글자를 “得”자로 바꾸어 놓았다. “사나이 스물에 나라를 얻지 못하면”으로 간신 유자광이 님이 장군을 역적으로 몰아세워 억울하게 역모죄로 능지처참형을 당했다.
오늘날도 정치인들이 말실수로 곤욕을 당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전체적인 맥락이나 의도가 전혀 다름에도 그 말을 문제로 삼아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것은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다를 바가 없다. 우리 주위에서도 한 마디 잘못 뱉어서 그 말꼬리를 물고 상대를 곤경에 빠뜨리게 하고, 자신의 정당성을 내세우는 도덕적으로 문제가 많은 파렴치한들이 있다.
특히 여권이 신장하면서부터 일부 몰지각한 여성 중에는 평소 감정이 있는 남성을 몰아세우려는 불순한 의도로 남성의 말실수를 성적인 발언으로 몰아세우기도 하고, 이웃과 싸움이 벌어졌을 때 싸움이 일어난 원인과는 별개로 엉뚱하게도 말꼬리를 문제로 삼아 싸움이 커지는 경우도 더러 있는 것을 보면, 말을 통해 상대의 마음을 읽어낼 수도 있지만, 상대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말꼬리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경우를 우리 주위에서 보았을 것이다.
이처럼 언어는 상대방의 사회, 문화, 경제적인 배경을 드러낸다. 따라서 상대방이 하는 말을 통해 그 사람의 출신지가 드러난다. 어린 시절에 익힌 언어습관이 남아있기 때문에 상대방이 쓰는 사투리로 어느 지방에서 태어났고, 자라난 가정환경을 짐작하게 된다. 거친 말을 사용하는 것을 통해 말하는 사람이 어떤 계층문화 속에서 살아왔고 어떤 성격인지, 또는 자주 쓰는 용어를 통해 직업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기본적인 자료를 제공한다.
명령적인 단호한 말투나 전투적인 용어를 자주 쓰는 사람은 오랫동안 군대문화에서 생활해 온 사람이랄지 경찰이나 변호사일 가능성이라는 많다. 설혹 이런 직업이 아니더라도 공격적이거나 경쟁심이 강한 전투적인 성격을 지닌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 밖에 스포츠 용어를 자주 쓰는 것으로 운동을 좋아하거나 스포츠와 관련된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든가. 특정 분야의 화제에 관해 관심을 두거나 자세한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분야에 관심이 많거나 관련된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듯이 말을 통해 상대방의 성격, 신념, 사회, 문화, 경제적인 배경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가 쓰는 말들이 다르다. 말을 통해 그 사람의 사회문화적인 배경이 드러나게 된다. 말은 상대방의 사회문화적인 계층문화를 알려준다. 나이, 성별, 학식, 직업, 종교, 신분, 출생지, 그 사람의 신념이나 성격, 인격, 등 한 사람의 총체적인 생활문화 전반을 언어를 통해 드러낸다.
사기꾼들은 이러한 총체적인 생활문화를 드러내지 않고 상대방의 사회문화 생활 습관에 익숙한 언어로 친절하게 접근한다. 아무리 능숙하다 해도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말투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이 드러나지만, 속는 사람은 “설마 그럴 리가 없지,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일 거야”라고 합리적 의심마저 무장 해제를 해 버린다. 그것은 남을 속이려 접근한 사람의 호의와 예의가 바른 태도, 친절하고 부드러운 말에 속아 상대방의 천사 이미지를 자신의 착한 심성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최근 전화금융사기에 속아 넘어가 피해를 보는 사람을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다. 보이 피싱 범죄는 특정 직업에 종사하는 언어습관을 이용하여 합리적인 의심을 무장 해제를 하게 만들어 금품을 갈취하는 사회악이다. 이 모두 언어로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반응할 것으로 예측하고 저지른 언어 범죄이다. 언어폭력과는 정반대로 상대방의 심리적 반응을 예측하고 상대방을 위하는 거짓말로 금품을 갈취하는 전화사기다.
언어는 사람의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이지만 그 거짓 생각을 언어로 표현하여 남을 속이려 드는 사람이 많아진 세상이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라는 속담 대신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씌운다.”라는 새로운 속담을 만들려는 언어 사기꾼들이 많은 세상이다. 거짓말이 통하는 사회는 불신 사회로 서로서로 믿지 못하게 된다.
옛말에 삼대 거짓말로 “노인 죽겠다.”, “노처녀 시집 안 가겠다.”, “장사 밑지고 판다,”를 우스갯말로 거짓이 아닌 상투적인 말로 여겼지만, 지금은 이런 말이 통용되지 않는다. 백세 시대 노인들이 죽겠다고 말할 리가 없게 되어 명백한 거짓말이 되었고, 노처녀들이 시집을 가지 않는 시대가 되어 이 말은 거짓말이 아니라 사실이 되었다. 그리고 장사가 손해를 본다는 말도 맞는 말이 되었다. 부도가 나거나 자금 회전을 위해 땡처리로 물건을 제값 받지 못하고 팔아넘기는 장사가 있어서 거짓말이 아니라 사실이 되어버린 시대다.
그러나 아직도 거짓말이 통용되는 곳은 정치판이다. 선거철만 되면, “국민을 위해 이 한목숨 바치겠다”라고 뻔한 거짓말을 하고 “이러저러한 일을 꼭 해내겠다.” 공약을 내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국민을 위해 귀한 목숨을 내걸었던 정치인들이 돈에 목숨을 내걸었다고 온 나라 안이 시끄럽다. 제발 이제부터라도 국민을 위해 귀한 목숨 내던지겠다는 거짓말로 국민을 기만하지 말고, “국민을 위해 전 재산을 바치겠다.”라는 각오로 국민을 위해 부지런히 일해주었으면 좋겠다.
[김관식]
시인
노산문학상 수상
백교문학상 대상 수상
김우종문학상 수상
황조근정 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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