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북 고령 출신의 곽흥렬 작가가 제9회 김규련수필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수상작은 그의 수필집 『칠팔월에 내린 눈』이다. 곽 작가는 1991년 《수필문학》, 1999년 《대구문학》으로 문단에 나와 그동안 수필집 『우시장의 오후』를 비롯하여 총 12권의 저서를 출간하였으며, 이번 수상작 『칠팔월에 내린 눈』은 수필집으로는 그의 다섯 번째 책이다.
김규련 수필가는 자연주의, 생태주의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대표작인 「거룩한 본능」이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릴 만큼 뛰어난 역량을 지녔던 문인이었다. 한국수필문학관(관장 홍억선)은 김 수필가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부터 그의 혁혁한 문학 정신을 기리는 문학상을 제정하여 올해로 아홉 번째 수상자를 배출했다.
심사위원들은 곽 작가의 작품 세계가 김규련 수필가의 창작 정신과 매우 맥이 닮아 있으며, 대상을 관찰하고 해석하며 사유하는 필력이 돋보여 수상자로 결정하게 되었다고 평했다.
곽 작가는 자신의 작품 창작에 병행하여, 지난 20여 년 동안 대구문화방송 부설 아카데미와 경주 동리목월 문예창작대학 그리고 경북 청도도서관 등에서 후진 양성에 힘써 지금까지 500여 명의 제자를 길러내었다. 그 제자들이 이런저런 공모전에서 수많은 수상의 영광을 안을 수 있도록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한 바 있다.
한편 시상식은 2024년 7월 11일(목) 오후 6시 대구시 중구 봉산동에 소재한 한국수필문학관 세미나실에서 열렸다.
<수상 소감> 소목 선생님의 아아한 수필 세계를 흠모하며
전화선을 타고 들려온 전혀 뜻밖의 수상 소식에, 처음엔 어리둥절했다가 이내 마음이 무거움으로 바뀌었습니다. ‘내가 과연 소목 김규련 선생님의 이름을 건 문학상을 받을 만한 작가로서의 자격을 갖추었는가’ 하는 데 대한 저어함 때문입니다.
불현듯 소목 선생님과 결어 온 지난 시절의 인연이 주르륵 스쳐 지나갔습니다. 1986년 겨울 어느 날, 소목 선생님을 처음 뵙게 되었던 그날의 기억이 마흔 해 가까운 세월이 흘러갔음에도 어제 일처럼 또렷하게 떠오릅니다.
Y 수필문학회 월례회 자리에서였습니다. 당시 소목 선생님은 그 회의 회장직을 맡고 계셨습니다. 아직 문학의 ‘문’ 자도, 아니 수필의 ‘수’ 자도 제대로 모르던 초심자가 평소 탁락한 작품 세계에 대해 존경의 염을 갖고 있었던 작가를 직접 대면한다는 것이 저에게는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소목 선생님과 저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타계하실 때까지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뀔 만한 세월 동안 인연은 줄곧 이어졌습니다. 함께 머리 맞대고 작품 발표와 토론을 하고, 연례행사로 문학기행을 다니고, 그리고 애송이 작가가 이 문단의 대가와 나란히 작품이 실린 수필동인지를 엮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소목 선생님께서 심사를 맡으신 한 종합문예지를 통해 신인상을 받는 가외의 행운도 누렸습니다. 그건 저의 수필 인생에 있어서 언제까지라도 잊지 못할 특별한 사연이었고, 이 일로 해서 평소에 품었던 선생님에 대한 존경의 염은 더한층 깊어졌습니다.
저는 이런저런 곳에서의 창작 강의를 통해 소목 선생님의 대표작인 「개구리 소리」며 「감나무에 달린 잎새들」, 「정한의 예술」 같은 명수필을, 창작 공부를 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자주 소개하곤 합니다.
“문명의 소리가 동(動)이라면 자연의 소리는 정(靜)이다. 그리고 개구리 소리는 선(禪)일지도 모른다.”라든가, “하나의 큰 생명의 본질은 매여 있지 않고 풀려 있다. 닫혀 있지 않고 열려 있다. 멈춰 있는 듯 움직이고 있다. 굳어 있지 않고 항상 부드럽다. 부족하지도 않고 과하지도 않다. 연신 받아들이고 연신 드러내고 있다. 급하지도 않고 더디지도 않다. 아름답지도 않고 추하지도 않고 미워하지도 않는다.” 같은 구절은 그 어떤 수필가도 흉내 낼 수 없는 선생님만의 깊이와 무게를 지닌 절창이어서 귀한 경전의 가르침처럼 두고두고 되뇌게 됩니다.
소목 선생님께서 생전에 자주 들려주시던, ‘심안心眼을 넘어 영안靈眼으로 세상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가지고 글을 쓰라’는 말씀이 이 글귀들 속에 녹아있지 않나 싶어서입니다.
이번 수상은 소목 선생님과의 예비되어 있었던 인연 아니고서는 설명할 길이 없을 듯합니다. 귀한 인연에 깊이 고개 숙이며, 선생님의 아아한 수필 세계를 흠모합니다. 그리고 본받고 싶습니다.
이 값진 상을 무겁게 받아들입니다. 아직도 갈 길이 먼 어설픈 작가임에도 수상의 영광을 안겨 주신 것은, 더욱 치열한 창작을 주문하는 채찍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면서 저보다 훨씬 역량 있는 많은 수필가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 마음의 빚도 느낍니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앞으로도 곱고 순정한 글밭을 가꾸는 일에 게으르지 않겠습니다.
2024년 7월 곽흥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