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의 아랑가] 방물장사 아주머니

이가실 작사, 전기현 작곡, 왕죽희 노래

유차영

<방물장사 아주머니>는 1941년 콜럼비아레코드에서 C44026으로 발매한 음반이다. A면에는, 본 이름 이연순이 왕죽희라는 예명으로 부른 이 곡이 실려 있고, B면에는 계수남(1920~2004, 전남 영광 태생)이 부른 <타향에서 찾은 정>이 실려 있다.

 

왕죽희는 1940년 <추억의 청춘가>를 마월송과 같이 부르면서 가수 활동을 시작하였고, 1941년~1942년 어간에 콜럼비아레코드에서 활동하면서 <호궁 처녀>, <그늘진 순정>, <아가씨 수심>, <님 실은 퐁퐁선> 등과 이 노래를 남겼다.

 

방물장사 아주머니 방물장사 아주머니 / 부령 청진 다녀오는 길에 소식을 전해주소 / 정어리 공장 큰 애기한테 넋이 빠져 못 오는 님을 / 달래달래 보내주소 부디부디 음~보내주소

 

방물장사 아주머니 방물장사 아주머니 / 편지로는 하고 많은 사연 못 쓴다고 전해주소 / 연자나 방아 돌고나돌아 못다 찢는 한 많은 서름 / 부디부디 전해주소 부디부디 음~전해주소

 

방물장사 아주머니 방물장사 아주머니 / 삼수갑산 돌아오는 길에 님의 맘을 알고오소 / 젊으나 젊은 남의 집 딸을 무슨 죄로 싫다는 지를 / 알고 알고 도라오소 부디부디 음~ 알고오소.

 

노랫말의 앞뒤를 살펴보면 이 노래의 배경지는 부령과 청진을 왕래하면서 방물장사를 할 수 있는 함경북도 어디쯤 되는 듯하다. 사연은 고향에 남아 있는 아낙네가 방물장사를 다니는 아낙에게 바람 난 남편의 귀가를 당부하는 애절한 노래다.

 

1절은 남편이 함경도 어느 바닷가 정어리공장 아가씨에게 혼이 빠져서 조강지처가 있는 본가로 돌아오지 않고 아내는 애만 태운다. 2절은 한 많은 사연을 편지로도 쓰지 못하고, 연자방아만 찢는 속내를 불렀고, 3절은 삼수갑산을 돌아오면서 남편의 마음을 알아 와 달라는 애원이다.

 

곡조는 애달픈 마음을 달랑달랑 매달 듯이 낭실거리기도 하고, 또 음~ 하면서 기다리는 애원을 하듯 느리게 간들거린다. 노랫말의 소재는 방물장사·연자방아이다. 방물장수라고 해야 맞다. 다른 이름은 아파(牙婆)라고 불렀다. 방물을 팔러 다니는 늙은 할머니라는 뜻이다.

 

이들은 주로 여성용품 연지·분·머릿기름·거울·빗·비녀·바느질 도구 및 패물 등을 팔았다. 물건을 보퉁이에 싸서 등에 지거나 머리에 이고 다녔는데, 본업 외에 여염집 여성에게 세상 소식을 알려 주거나 특수한 심부름을 맡아 하는 구실도 겸하였다.

 

또한 방물장수를 상대방 사정을 염탐하는 정보수집꾼으로 이용하는 일도 있었다. <방물장사 아주머니> 노래 속의 화자는 바람난 남편에게 본처의 기다리는 사정을 알리는 부과제를 부탁받았다. 방물장사의 대칭어가 황아장수다. 이들은 주로 남자행상인데 담배쌈지·바늘·실 따위의 잡살뱅이를 짊어지고 다니며 파는 행상으로 보부상(褓負商)과 유사하다. 황아란 황화(荒貨)가 전이된 말이다. 오늘날 잡화(雜貨)는 과거 목기(木器)·황아·방물로 세분되어 있었다. 

 

목기는 밥상·제기(祭器)·소쿠리 등 나무로 만든 물건들이고, 방물은 참빗·얼레빗·색경(色鏡)·금박띠·댕기·바늘·실·골무·화장품·패물 등 여자의 소용품이며, 황아란 이 물품들을 제외한 일상생활 용품들이었다.

 

황아를 파는 가게를 황아방(荒貨房) 혹은 황아전(荒貨廛)이라 하였다. 황자는 거칠다는 의미인데, 여기서는 잡화를 의미한다. 1928년 이애리수가 절창한 <황성옛터>(황성의 적)의 황자도 이 글자이다. 패망한 고려의 서울, 개성을 말한다.

 

2절 노랫말의 소재 연자방아(硏子-)는 연자매라고도 하며, 말이나 소가 절구 위에 있는 돌을 끌어 돌려서 곡식을 빻는 돌방아이다. 사람이 끌면서 돌리는 경우도 있었다.

 

전기·원동력이 없던 옛날 한꺼번에 많은 곡식을 찧거나 밀을 빻을 때는 말이나 소의 힘을 이용했다. 둥글고 판판한 돌판 위에 그보다 작고 둥근 돌을 옆으로 세워 얹어, 아래위가 잘 맞닿도록 하고 끌고 돌린다. 마을에 공동으로 연자방앗간·연자맷간이 있었다.

 

3절 노랫말 삼수갑산(三水甲山)은 함경도 맨 꼭대기, 백두산 아래쪽에 있는 삼수와 갑산이라는 고장이다. 조선시대에 죄인을 귀양 보내던 아주 춥고 험난한 곳. 오늘날 삼수군(三水郡)은 양강도 중부에 위치한 군이다. 북쪽은 압록강으로 중국과의 국경지대, 서쪽은 김정숙군, 동쪽은 혜산시와 갑산군, 남쪽은 풍서군과 접한다. 남쪽은 개마고원 북쪽 끝, 해발 1,921m 두릉봉이다.

 

삼수갑산은 시인 백석이 추방당했던 곳이기도 하다. 백석(白石, 1912~1996)은 일본제국주의 강제점령기의 인텔리, 본이름은 백기행(白夔行), 개명 전 이름은 백기연(白夔衍)이다. 석(石)이라는 이름은, 일본 시문학가 이시카와 다쿠보쿠(石川啄木)의 작품을 매우 좋아하여, 그 이름의 첫 글자 석을 썼단다.

 

그는 오산고등보통학교를 마치고 1934년 일본 아오야마 가쿠인 전문부 영어사범과를 졸업하였다. 1934년 조선일보에 산문 이설(耳說, 귀고리)를 발표하면서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서울의 대원각(현, 길상사) 주인 길상화 김영한의 연인이었으며, 통영에 ‘난이’라는 여인을 짝사랑했던 기인이다. 김영한은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의 나타샤다. 백석은 영한을 ‘자야~’라고 불렀었다. 그래서 ‘북자야 남난이’라는 말이 생겼다. 그는 왜 삼수갑산으로 추방당했었을까.

 

이 세상에 사람은 딱 2명이 살아간다. 남자와 여자, 너와 나, 나와 남이 그 주인공이다. 이 둘 중에 남자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한평생 첫사랑 여인네를 가슴속에 품고 산다. 그 여인네가 사는 방은 가슴방이다. 여자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끝사랑 남정네의 품에 안기서, 첫사랑과 중간사랑의 남정네를 잊고 산단다. 그럴까.

 

요즈음은 4도3촌(四都三村)이라는 말이 시대사조다. 4일은 도시에 살고, 3일은 촌(전원)에서 생활한다는 말이다. 이 낭만시류(浪漫時流)를 핑계로, 얼마 전 붉은 달이 떠오르는 단월면(丹月面) 쾌일봉(470m) 아래, 활초옥루(活草沃 樓) 하나를 지었다. 용문사와 능선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붉은 달이 뜨고 지는 산 능선 아래다.

 

그리고 어제는 장대 빗줄기를 맞으며, 가을에 단풍으로 익을, 붉은 물을 초록의 이파리 속에 머금고 있는 담쟁이와 샛노란 달맞이꽃을, 여러 종류의 남새들이 자라고 있는 울타리 둘레를 따라 다독다독 심었다. 한평생 내 가슴방에 무상으로 세 들어 살아가는, 달맞이꽃을 좋아하던 그 사람을 생각하면서.

 

활초옥루가 있는, 단월에서 용문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옛 시절, 방물장수 황아장수들이 방물 봇짐을 등에 지고 넘던 능선이다.

 

 

[유차영]

한국아랑가연구원장

유행가스토리텔러 

글로벌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경기대학교 서비스경영전문대학원 산학교수

이메일 : 519444@hanmail.net

 

작성 2024.07.20 09:31 수정 2024.07.20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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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