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풍요하면 행복할 것으로 생각한다. 가난했을 때 풍요로운 생활을 하는 부자가 행복하게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부자가 되면 행복할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 일해서 부자가 된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 사람에게 지금 행복하십니까? 그는 확실하게 대답 못 할 것이다. 옛날과 비교하면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으니 행복하다고 객관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지만, 그 가난한 사람이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갖 고생을 해왔을 것이고, 가난했기 때문에 자녀들의 교육을 소홀히 했을 가능성이 클 것이다.
사람은 한 가지 것에 집착하여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다른 것들 소유할 기회를 버려야 한다. 마찬가지로 재산을 축적하기 위해 근검절약 생활이 몸에 배어 맛있고 비싼 음식을 먹어보지도 못했을 것이고, 비싼 옷을 입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습성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그 사람이 부자가 되었어도 근검절약하는 습관은 버리지 못한다. 보나 마나 재물을 취득하기 위해 주위 사람들을 속이거나 가슴 아프게 한 적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주위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왜 부자가 되려는 데만 집착했느냐? 는 것이다. 그것은 가난해서 남들에게 멸시받거나 짓밟히며 살아온 생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일 것이다. 가난해서 배가 고픈 설움보다 남에게 무시당하는 설움이 한이 되어 남보다 열심히 일했을 것이고, 자신이 남에게 지배당하는 생활에서 남을 지배하는 생활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컸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부자가 되어 자신을 지배했던 사람이 상황이 반전되어 쩔쩔매고 굽신거리는 상황이 연출된다고 해서 행복한 마음이 드느냐는 것이다. 사람은 자랄 때 습성을 버리지 못한다. 가난했던 문화습성이 배어들어 부자가 되어도 부유한 생활 습성을 쉽게 익히지 못하고, 비싼 고급 음식점은 가지도 못하고 싸구려 음식을 사서 먹는다거나 남에게 과시하기 위해 비싼 승용차를 사서 몰고 다니더라도 버려진 아까운 물건이 있으면, 그것을 욕심내어 고급 승용차에다 싣고 집으로 가져가는 등 하층민의 문화습성을 그대로 보이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상민 계층이 돈을 많이 벌어 양반 자리를 사서 갓 쓰고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양반 흉내를 내려는 불편한 행동과 유사할 것이다. 남이 볼 때는 의관을 제대로 갖추고 양반처럼 팔자걸음을 걸으나 불편하여 남이 보지 않을 때 거추장스러운 의관을 풀어 헤치고 걸음도 종종걸음으로 습성화된 행동을 하는 것처럼 한번 익힌 문화습성은 쉽게 고치기 어렵고 고치려는 것이 더 고통스러울 것이다.
19세기 미국의 시인이자 철학자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간소, 자립, 관대, 신뢰”라고 했다. 이 말은 행복해지기 위해 갖추어야 할 중요한 요소를 들었는데, 자기 자신이 혼자라는 사실(간소, 자립)과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관대, 신뢰) 사이의 균형 감각을 말하며, 자신과 세상과의 균형을 잘 잡아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졸부가 부자가 되면 소로의 말처럼 자기 혼자 문화 습성화된 간소와 자립은 타인의 추종을 불허하게 월등하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사회적인 공동체의 삶의 방식에 인식한 관대, 신뢰가 무너진 생활 습성을 고수해 나간다는 것이다. 이미 위의 단추가 잘 못 끼워진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단추를 모두 떼어내고 다시 달아 끼우지 않는 한, 바뀌지 않고 자식에게로 잠재적인 가정 교육으로 그 문화습성이 대물림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옛말에 “왕대밭에 왕대 나고 쑥대밭에 쑥대 난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계층 간의 문화습성은 그대로 전수되어 확대 재생산된다는 말이다.
우리 조상들이 혼인할 때 상대 집안의 내력을 중시했던 까닭은 어떤 가정환경에서 자라왔느냐? 하는 문화습성을 통해 대상자의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과 인품을 평가하기 위함인 것이다. 따라서 문화습성이 현격하게 차이가 나면, 결혼해서 행복해질 수 없다는 판단에서 가문을 중시했던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회제도로 인도에서는 오늘날까지 카스트 신분제도가 유지되고 있고, 과거 서양에서는 귀족 가문끼리의 혼례 등 오랫동안 문화습성을 중시하는 관습이 있었다. 오늘날 민주주의 의식 구조에서는 전근대적인 관습으로 천부적인 인권과 평등 의식을 무시한 문화습성이지만 오랫동안 관습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오늘날에도 빈부 격차를 소재로 한 가족 드라마나 영화, 신데렐라 콤플렉스에 있는 여성 인물이 등장한다. 서로 자라온 문화습성이 다른 사람과의 만남으로 갈등이 빚어지고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벌어지는 것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많다는 것은 대중들의 관심은 옛날이나 마찬가지로 풍요와 행복과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풍요로운 사회가 행복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경제성장을 이룩해 소비가 미덕인 사회가 되었지만, 정신적인 것을 경기하고 자원 개발, 사회 자본의 정비, 공업 생산, 물적 소비 등에 의해 물질적인 풍요를 실현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행복을 증대시킨다고 믿어 의심치 않으면, 물질계에 압박을 강화하려 드는 가치관 내지는 생활 태도를 마마다 타카오는 그의 저서 『제3의 소비문화론』에서 물질주의라고 정의를 내렸다.
그리고 이러한 물질주의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탈물질주의로 정의하고, 물질적인 풍요를 실현하는 것이 더 이상 인간이 행복을 증대시키지 않는다고 하는 실감을 바탕으로, 물질계로의 압박을 강화하는 행위를 그만두고 물질생활을 되돌아봄은 물론 비물질적인 생활의 제 측면을 중시하려고 하는 가치관 또는 생활 태도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풍요가 행복을 보장해 준다는 믿음으로 대량생산, 대량소비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심각한 자원의 고갈과 환경오염, 지구온난화, 극지방의 빙하가 녹아 해수면의 상승하고, 각종 대유행병의 만연 등으로 자연의 재앙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독일의 아동문학가 미하엘 엔데는 “이미 제3차 세계대전은 일어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시간 전쟁으로 어른들이 우리 아이와 손자, 그리고 앞으로 찾아올 세대를 향해 일으킨 것이다. 결국 우리는 사막으로 변한 세계를 자손들에게 넘겨줄 것이다.”라고 오늘날 풍요가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물신주의 추구는 미래 세대에게 불행을 물려주고 있다는 물신주의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풍요가 행복을 보장해 준다는 상관관계에 대한 믿음이 무너진 순간 인간은 비참해진다. 풍요는 행복해지기 위한 하나의 조건에 불과할 뿐 행복과 상관관계가 매우 낮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김관식]
시인
노산문학상 수상
백교문학상 대상 수상
김우종문학상 수상
황조근정 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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