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 년 전 겨울은 몹시 추웠다. 북극 한파 때문인지 눈도 많이 오고 체감온도도 낮았다. 삼한사온도 없는 이상기온이라고들 했다. 자연과 가까운 시골은 더 추운 듯했다. 저 멀리 산이며 논밭, 텅 빈 벌판을 하얀 눈으로 뒤덮은 날이 많았다.
출퇴근도 애를 먹었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면 외진 길에 고라니 발자국이 선연했다. 두툼하게 뒤덮인 승용차의 눈을 치우느라 손도 꽁꽁 얼고, 제설작업도 안 된 시골길을 운전하는 것도 조심스럽기만 했다.
거기다가 신경 쓰이는 일이 더 있었다. 마을을 벗어나 큰길가로 주행하는 길에 만나는 늙수그레한 아주머니 때문이었다. 눈이 푹푹 빠지는 길을, 찬 바람 매섭게 부는 허허벌판을 얇은 점퍼 차림에 귀를 감싸 안고 홀로 걸어가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띄었다. 그 이른 시간대에 만나는 것을 보면 그 아주머니도 어딘가에 출근하는 것 같았다. 지척에 조그만 공장들이 있기는 하고, 아니면 중간에 읍내로 가는 버스정류장도 있다. 목적지가 어딘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지켜보는 처지에서는 안쓰럽기 짝이 없었다.
그때마다 마음에 갈등이 일었다. 잠시 태워주면 어떨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그런데 매번 차를 세울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냥 지나쳐 버리고 말았다. 편도 1차로여서 줄지어 오는 차들 때문에 갑자기 세우기가 위험하기도 하고, 차를 세울 공간이 마땅찮기도 했다.
무엇보다 스스로 핑계가 앞섰다. 나도 바쁜 출근길에 귀찮다는 생각도 들고, 다른 차도 다들 그냥 지나가는데 굳이 뭐 하러 나서나 싶기도 하고, 괜히 도와주려다가 오히려 해를 입으면 어쩌나 염려도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한번 태워준 것을 연유로 다음에도 기대하면 부담스럽고, 익숙한 혼자만의 시간에 타인이 원하지 않는 관계의 선을 넘어오는 것도 불편하기도 하였다.
못 본 척 고개 돌리면 그만이었으나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남에게 온정의 손을 내민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작은 마음 씀씀이, 따뜻한 말 한마디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남을 돕는다는 것이 요란한 미사여구도, 거창한 이론도,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것이 아닌데도 함께 살아가야 할 이 사회에서 연대감과 배려심이 아쉬웠다.
그것도 벽이었다. 너와 나, 직선과 곡선, 이기와 이타의 경계였다. 편리와 효율에 길들어져 타동사로만 살아오지 않았나 싶었다. 자기가 세운 삶의 기준과 방향을 무너뜨리지 않으려는 고집, 상처받기 두려워 관계 밖에서 혼자만 편해지려는 습관에 익숙한 결과였다. 소통하지 않는 적극적인 관심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품을 내어줄 수 없는, 온기가 없는 영혼이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간극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 아닐지 싶다.
겨울도 어느덧 지나고 해토머리가 되었다. 마음 사슬에서 해방도 되고 모두가 춥지 않아서 다행이다 싶었는데 정작 그 아주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일을 그만두어 그 시간대에 출근할 일이 없다면 다행이지만 혹시 추운 겨울을 견뎌내느라 몸이라도 상하지나 않았을까 해서 오히려 불안감과 자책감에 무지근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겨울이 올 때마다 그 추워 보였던 아주머니 생각이 난다. 꼭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해 마음에 새긴 통증처럼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후회의 그림자가 되어 남아 있다. 그해 겨울은 날씨도, 마음도 추운 계절이었다.
[허정진]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
저서 : [꿈틀, 삶이 지나간다]
[그 남편, 그 아내]
[시간 밖의 시간으로]
[삶, 그 의미 속으로]
천강문학상 수상
등대문학상 수상
흑구문학상 수상
선수필문학상 수상
원종린수필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