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흥렬 칼럼] 아이들은 아이들다워야

곽흥렬

트로트 열풍이 온 나라를 휩쓸고 있다. 한 종편 방송에서 기획한 ‘미스트롯’이라는 프로가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며 막을 내리자, 다른 방송사들도 다투어 어슷비슷한 이름으로 트로트 열풍에 불을 지피는 형국이다. 출연자들은 대다수가 어른이지만, 개중에는 아이들도 어른들 틈에 끼어서 재주를 뽐낸다. 한편으론 귀엽기도 하고 한편으론 맹랑하다 싶기도 하다. 그런 모습을 어른들은 마냥 재미있다며 넋을 놓고 바라본다. 

 

가수는 자신이 부른 노래의 가사처럼 인생이 그렇게 흘러간다는 말이 있다. 비련의 노래를 자주 부르다 보면 결국 실연의 아픔으로 이어지게 되고, 죽음의 노래를 자꾸 부르다 보면 끝내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수가 많다는 것이다. 같은 이치로, 아이가 ‘아이노래’를 부르지 않고 계속 ‘어른노래’를 부르게 되면 시나브로 되바라져 갈 수밖에 없다.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마음을 열어 하늘을 보라 넓고 높고 푸른 하늘 가슴을 펴고 소리쳐 보자 우리들은 새싹들이다” 아이들의 입에서 더 이상 이런 밝고 씩씩하고 진취적인 노래가 불리지 않는다. 만날 “사랑이 야속하더라 가는 당신이 무정하더라……”라든가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고 그 밤이 좋았네 사랑 그 사랑이 정말 좋았네……” 온통 이런 유의 값싼 ‘사랑 타령’ 일색이다. 

 

어른스럽다고 하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아이가 생각이 깊고 의젓하다는 의미를 지닌 용어이다. 이는 어른처럼 영악하다는 뜻이 아니다. 순수성을 잃은 어른 같다는 뜻도 아니다. 어른들의 노래를 멋도 모르고 불러대는 아이들의 행동은 절대 어른스러움이라 할 수 없다. 그냥 ‘어른 같음’일 뿐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이런 어른 같은 모습에 침을 질질 흘리면서 “잘한다” “잘한다”며 배알도 없이 박수를 쳐 댄다. 참 한심스럽고도 서글픈 사회현상이 아닐 수 없다. ‘어른스러움’은 긍정의 어감으로 쓰이는 말인 반면, ‘어른 같음’은 부정의 어감을 지닌 말이 아니던가.

 

신라의 향가인 안민가安民歌에 보면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백성은 백성답게”라는 구절이 나온다. 반복적인 표현은 항용 강조의 뜻으로 쓰이는 기법이니, 자연 ‘답게’라는 말에 방점이 찍힌다. 이는 마땅히 각자가 자신의 역할에 충실할 때 세상이 제대로 돌아간다는 소리일 터이다. 

 

모름지기 어른은 어른다워야 하고 아이는 아이다워야 할 것이다. 어른들이 어른답게, 아이들이 아이답게 행동할 때 세상은 질서가 잡히고 건강성을 지켜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른이 아이 같다면 한편으로는 순진하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몽매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아이가 어른 같다면 한편으로는 의젓하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의뭉스럽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어른이 어른다운 무게감을 잃으면 더 이상 어른이라고 할 수 없듯 아이가 아이다운 순수성을 잃었을 때 과연 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다만 문제는 이것이 아이들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데 있다. 아이들은 아직 세상사에 대한 사리 판단이 미성숙한 백지 같은 존재가 아닌가. 그러니 이는 전적으로 분별없는 어른들 탓이다. 

 

아이들을 아이들답지 못하게 만들고 있는 오늘의 세태가 서글프다.

 

 

[곽흥렬]

1991년 《수필문학》, 1999년《대구문학》으로 등단

수필집 『우시장의 오후』를 비롯하여 총 12권 펴냄

교원문학상, 중봉 조헌문학상, 성호문학상, 

흑구문학상, 한국동서문학 작품상 등을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받음

제4회 코스미안상 대상 수상

김규련수필문학상

이메일 kwak-pogok@hanmail.net

 

작성 2024.09.02 11:17 수정 2024.09.02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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