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어느 할머니와 경찰관
더위가 맹위를 떨치고 차량 소통이 한가한 오후 젊은 경찰관 두 사람이 할머니 한 분을 사이에 두고 양팔을 부축해서 걸어가고 있었다. 할머니는 혼자서 걸어가는 것조차도 힘들어 보였다. 할머니가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었다.
가는 차량들을 멈추게 하고 할머니의 걸음 속도에 맞춰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어느 시골길에서 손자들이 할머니의 짐을 챙겨 들고 가는 모습과 다름없었다. 할머니를 안전하게 건너게 해 준 그 경찰관들은 할머니를 어느 택시에 태워 보냈다.
자세히 알 수 없는 일이지만 할머니의 남루한 옷차림으로 보아 거처가 분명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지고 있던 봇짐 안에는 그다지 필요한 것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또한 병약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측은해 보이는 할머니를 부축해서 길을 함께 건넌 경찰관들의 모습은 참으로 보기 좋은 일이었다.
2. 할아버지와 손자
어느 일요일, 부산 해운대에 있는 온천 목욕탕으로 가족들과 함께 갔다. 제법 큰 목욕탕이지만 그다지 넓게 앉을 수 있는 공간은 없었다. 일요일이라 많은 사람들로 북적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가족들이라 서로서로 등을 밀어주고 있었다.
한켠에서 유치원생 쯤으로 보이는 아이가 어느 노인의 등을 밀어주고 있었다. 두 사람의 얼굴이 닮은 걸로 보아 손자와 할아버지 사이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었다. 등을 내맡긴 할아버지는 연신 ?시원하다.?를 말하고 손자 녀석은 신이 났는지 열심히 등을 밀고 있었다.
어린 손자가 얼마나 시원하게 했을까마는 그 할아버지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듯했다. 그 노인이 친할아버지 혹은 외할아버지이든 간에 그것은 아무런 문제가 아니었다.
3. 할아버지와 손녀
어느 무더운 여름날에 아파트의 어린이 놀이터에는 유모차를 끌고 나온 젊은 엄마들이 있었다. 아직 걷지도 못하는 나이의 갓난애들이긴 했지만 시원한 자연바람을 쐬어 주고 싶었는가 보다. 방긋 웃는 아이의 모습이 너무나 탐스러운지 엄마들은 유모차 안을 들여다보면서 좋아 어쩔 줄 몰라 했다.
그 젊은 엄마들 틈에 노인 한 분이 유모차를 끌고 나오셨다. 손녀라고 하셨다. 집에 있으니 무료하여 딸의 집에 와서 외손녀를 데리고 나왔다고 했다. 첫돌이 막 지났다는 그 애는 할아버지를 보며 연신 웃어댔다. 그러자 할아버지 또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에 사로잡히는 듯 표정이 너무나 밝아 있었다.
할아버지는 어떻게 하면 이 손녀에게 더 즐거운 기분을 만들어 줄까 생각하셨는지 근처의 꽃가게를 들르셨나 보다. 한 웅큼의 꽃으로 유모차를 장식하고 애의 모자에까지 꽃을 꽂는 것이었다. 그저 쳐다만 보는 나 자신이 기분이 좋아지고 있었다. 무더운 여름날이었지만 나의 마음은 시원해졌다.
4. 어느 할머니와 손녀
가을걷이하는 시골은 언제나 일손이 부족하다. 어느 일요일에 시골길을 가다가 잠시 차를 세웠다. 논의 한 가운데에서는 탈곡기가 힘차게 돌아가고 있었다. 기계소리와 나락이 떨어지는 소리가 크게 들리고 있었다. 건장한 젊은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일요일이라 도시에 사는 가족들이 가을걷이를 도와주려 왔다고 했다.
바쁘게 돌아가는 논 한가운데의 움직임과는 달리 한 쪽에서는 한가롭게 이삭을 줍는 노인과 아이가 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할머니와 손녀로 보였다. 이삭을 조금씩 주워 망태기에 함께 넣고 있었다. 그것이 어느 정도 찼는지 할머니는 망태기를 메고 손녀는 할머니의 작대기를 잡고 탈곡기 쪽으로 가는 것이었다. 할머니의 차림새가 구차해 보이지는 않았다. 손녀도 일요일에 일을 도우려 온 부모를 따라 할머니집에 들른 것으로 보였다. 할머니의 일은 시골에서 노인들의 소일거리로 보이는 것이었다. 그다지 바쁘지 않게 이삭 나르는 일을 반복해서 하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손녀가 이삭을 줍는 예쁜 모습을 흐뭇하게 보고 있었다. 할머니가 굽어진 허리를 펴니 해도 반듯이 누었다. 해가 서서히 지고 있는 어느 시골의 할머니와 손녀가 연출한 아름다운 정경이 나의 뇌리에 오래도록 남아 있다. 할머니와 손녀는 하늘이 넓게 열려있는 마당 한 가운데에서 저녁별을 세기 위해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김태식]
미국해운회사 일본지사장(전)
온마음재가센터 사회복지사(현)
울산신문 등대문학상 단편소설 당선 등단
해양문학상 논픽션 소설 당선
사실문학 시 당선 등단
제4회 코스미안상 수상
이메일 : wavekt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