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많은 시인들이 쓴 시들이 문예지나 인터넷 매체를 통해 발표되고 있다. 그런데 대중들이 좋아하는 시들은 현대시의 이론과는 전혀 맞지 않는 조잡한 시들이 많다. 시적인 요건을 갖추지 못했을뿐더러 대중가요 가사와 엇비슷한 감정을 노출한 사랑 타령의 시들이다.
그런데 대중들은 직접적인 정서를 노출한 시를 좋아한다. 그것은 청소년기에 애틋한 남녀 간의 사랑이나 이별 등 감상주의적인 정서를 노래한 시들이 가슴에 와닿는 시라고 생각하고 어른이 되어서도 그런 류의 시를 읽고 시적인 분위기에 젖는다. 즉 시를 보는 안목과 감성 능력이 길러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은유나 상징으로 표현된 시는 도무지 난해해서 재미가 없다고 현대시를 읽지 않는다.
그래서 청소년기에 좋아했던 사랑과 이별을 직접적으로 토로한 시들, 즉, 유행가 가사와 엇비슷한 수준의 시를 좋아한다. 주로 이런 수준의 시를 좋아하는 연령층은 나이가 많은 전후 세대들이다. 시적인 완성도와는 관계없이 기성세대들이 선호하는 시들은 사랑과 이별, 또는 거창하게 인생을 들먹이는 개똥철학, 종교적인 신앙심을 노래한 시들이다.
따라서 이런 유의 시를 쓰는 시인이 유명시인으로 알려지는 진풍경이 연출된다. 알고 보면 시적인 미감이나 기교 등을 전혀 구사하지도 못하는 시적 수준이 미달된 시인이 유명시인이 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한번 유명시인이 되면 유명시인의 시를 감상해본 적이 없고 유명시인의 이름만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맹목적으로 유명시인을 들먹이는 집단 최면 상태가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대중들은 시적 감상능력이 없는 것일까? 어처구니없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현대시적인 기교와 완성도가 높은 시들도 유명출판사에서 시집을 시리즈로 발간하여 팔리고 있는 것을 보면, 독자층이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시적인 감상 능력과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수준이 높은 젊은 층의 독자들은 그들의 취향에 맞는 시를 좋아하고, 기성세대들은 그들의 취향대로 좋아하는 시들이 다양하다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일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시집은 물론 문학 서적이 팔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인은 수만 명을 넘어서고 있는데 시집이 팔리지 않는다는 기현상은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엉뚱하게도 시인되겠다는 마음을 먹고 문예지를 통해 출신 문예지의 고객 겸 자작시를 발표해 주는 암묵적인 거래로 시 창작 능력이 전혀 없는 상태로 시인이 되었기 때문에 이들은 이런 시인들이 보내주는 시집을 공짜로 읽으면 되기 때문에 시집을 사서 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 창작 능력이 없는 가짜 시인들은 자신의 낙서 같은 시를 문인으로 대접해 주고 발표까지 해주는 등단 매체 소속 문학단체나 각 지역 또는 중앙의 문학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들은 시 창작 활동하는 것보다는 단체 활동이 문인들의 활동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소속 단체 회원들끼리 친목 활동으로 동료의식을 가지며 매월, 또는 분기별로 시낭송회, 시화전, 사회봉사 활동 등 문학을 취미나 놀이문화로 여기고 활동에 주력한다. 그러니까 창작활동을 전문으로 하는 시인들이 아니라 시를 좋아하다가 시인 칭호를 부여받고 시인 활동에 전념하는 일종의 문학놀이꾼으로 전락한 셈이다.
이들의 주된 관심은 문인으로서의 위상을 확립하기 위한 문학단체의 감투 이데올로기에 오염되어 자신의 명리적 가치 실현에 전력을 쏟는다. 그리고 단체 회원들이 만나기만 하면, 알고 지내는 문인의 험담이나 유명 문인 뒤담화 등 비생산적인 일로 소일하고, 심지어는 정치인들의 하수인 노릇을 하거나 문학비 건립, 문학상 받기, 출신 잡지의 문인칭호 희망자 끌어모으기, 출판기념회 쫓아다니기. 문학 지원 단체의 지원금 타내기 등등 문학 외적인 이해관계 활동에 주력할 뿐 문학작품 창작 능력 신장을 위한 문학 서적 읽기, 창작 방법 연수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겨우 창작활동이라고 하는 것은 문학단체에서 정기적으로 발간하는 동인지에 발표할 의무적인 작품을 쓰는 것이 전부인 문인들도 상당수가 되는 등 작품 창작을 등한시한다. 그중에서 왕성한 창작욕을 가진 사람은 작품을 창작한다고 하더라도 해를 거듭해도 작품 수준은 전혀 나아지지 않고 그대로인 경우가 많다.
작품 수준이 향상되려면 단체이데올로기에 빠지는 일은 금기이다. 오직 문학 외적인 활동을 줄이고 창작활동에 더 치중하는 일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수한 작품을 많이 읽어 문학작품을 보는 안목을 기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안목이 없이는 어떤 작품이 우수한 작품이고 왜 우수한 작품인지 구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 많이 생각하고 많이 읽고, 많이 써보는 삼다법을 꾸준히 실천해야 한다. 그리고 작품 쓴 안목과 능력이 뛰어난 스승을 만나 가르침을 받는 일이 전제되어야 한다. 같은 수준의 문인들끼리 합평회를 하거나 연수를 한다고 해도 별로 작품 수준이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른이 되면 고정관념이 깊게 뿌리내려 쉽게 자신의 고집을 꺾으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젊은이들처럼 문학작품의 창작 방법을 받아들이는 유연성이 없어진다, 자기보다 월등한 문인들의 가르침을 유연하게 받아들여서 습작을 부지런히 해야 한 단계씩 성장하게 되는 것인데 나이가 들면 그게 쉽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문학 공부도 자신이 필요에 의해 자신의 의지에 따라 해야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법인데. 같은 수준의 사람이 아무리 좋은 문학이론으로 연수를 한다고 해도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예를 들어 문학단체 회원끼리 자작시 합평회를 정기적으로 갖는다 해도 창작 능력은 신장되지 않고 오히려 화원들끼리 불편한 관계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흔히 일어난다.
좋은 시를 쓰려면 시창작 방법에 관한 이론을 완전히 익히고 실전에 적용할 수 있을 때까지 부단한 습작을 해야 한다. 그리고 한 작품을 쓰기 위해 많은 생각을 해야 한다. 많은 작품을 읽어 안목을 길러야 하는데, 문학사적으로 검증된 시인의 시를 읽거나 해외 유명시인의 시를 읽어 시를 보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 참고로 현재 문예지에 발표되는 시는 검증이 안 되었기 때문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지나치게 단체 이데올로기에 빠져 명리적 가치 실현에 집중한다거나 발표욕이 앞서면 좋은 시를 쓸 수 없다. 완벽한 인간이 존재하지 않듯이 이 세상에 완벽한 작품은 없다, 자신의 부족한 점이 무엇인가를 알고,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작업을 꾸준히 이어갈 때 좋은 작품을 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김관식]
시인
노산문학상 수상
백교문학상 대상 수상
김우종문학상 수상
황조근정 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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