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식 칼럼] 내 마음속의 강, 통영 바다

김태식

나의 고향은 경남 통영이다.

북쪽으로부터 불어오는 찬 바람을 막아 주는 천암산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고, 그다지 높지 않은 산허리에 노을이 걸릴 때쯤이면 부엉이 울음소리에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가 그윽하게 전해져 오던 마을이다. 

 

무리를 지어 흔들리는 억새들의 꽃 부비는 소리, 그들만의 아우성으로 다가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었던 외진 마을이다. 깊어 가는 가을밤의 끝자락에서 귀뚜라미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마음이 포근했다. 어린 시절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염소 울음소리, 송아지가 어미를 찾는 소리가 들리던 외갓집의 대청마루 아래에는 닭들이 모여 있었다. 먹이를 쪼고 알을 품은 암탉의 경계심 어린 눈초리가 생각난다. 아침이면 달걀을 끄집어내어 외손자에게 반찬으로 만들어 주던 외할머니도 생각난다. 

 

대전 통영 간 고속도로를 달려 통영 톨게이트를 빠져나오면 어머니의 품 속 같은 포근한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통영의 관문인 원문 고개를 넘어 서면 통영 시내가 시야 속으로 빨려 들어온다. 토성고개를 거쳐 새터 시장에 이르면 그곳에는 살아 움직이는 생선으로 활기가 가득하다. 새벽을 열고 먼 바다로 나갔던 고기잡이배들이 가득 싣고 온 생선들을 부둣가에 내려놓으면 생기 가득한 새벽시장이 선다. 

 

선창가를 돌아가는 갯가 언저리에는 배를 묶기 위한 막대들이 촘촘히 꽂혀 있다. 바다 한가운데에는 굴, 홍합 등의 수산물을 키우기 위해 매달아 놓은 스티로폼이 마치 흰색 구름을 잘게 쪼개어 흩뿌려 놓은 듯이 하얗다. 그 수로水路 가운데로 빨리 달리는 쾌속선이 있는가 하면 조류潮流의 흐름을 따라 유유히 흘러가는 고기잡이배도 있다. 

 

그 수로는 들어갈 곳 들어가고 나올 곳 나온 미끈한 몸매를 갖춘 아가씨처럼 그러한 흐름을 가진 한려수도였다. 해는 서쪽 저편에 걸려 아름다운 노을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통영의 한산도에서 발원하여 여수에까지 이르는 삼백 리 한려수도 뱃길이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다. 크고 작은 섬을 거느린 한려수도는 끝없이 펼쳐진다. 미륵도의 해안일주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달아공원이 나온다. 천혜의 자연풍광이 그곳에 펼쳐진다. 뱃길이 길게 뻗어있는 해안선이 너무나 아름답다. 군데군데 널려있는 조그마한 섬들이 손에 잡힐 듯하다. 이름 없는 섬들이 바다라는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어부는 섬이 그리고 있는 그림의 주인공이요 배는 조연이다.

 

몇십 년 전 고향을 찾았을 때,  초등학교 4학년 아들 녀석의 얘기가 재미있다. 

 

“아빠, 내가 배운 사회책에는 이렇게 큰 강이 없는데......”

 

평소에도 파도가 없이 잔잔한 날이 대부분이지만 그날따라 더욱더 흰 파도의 흔적이 없어 바다라기보다는 마치 강처럼 보이는 날이었다. 마침 언제나 나의 마음속에는 런던의 템스강, 파리의 센강, 서울의 한강 등 그 도시를 연상시킬 수 있는 고향의 강이 하나 없는 게 늘 아쉬움으로 남아 있었는데 정말 잘 된 것으로 생각하며 설명을 하나하나 붙여 나가기 시작했다. 

 

‘통영강은 통영시 산양면에 소재한 강으로서 그 크기는 태평양을 연상해야 할 정도로 넓으며 노을빛이 저만치 바닷속으로 가라앉을 때쯤에는 그 거대한 몸뚱이를 곱게 감싸 안는 그러한 강이라고. 그 속에 있는 수량水量은 풍부하기 그지없어 일 년 내내 아무리 심한 가뭄이 찾아와도 바닥을 드러낼 리 없을 그러한 강이라고. 게다가 푸르른 엽록소만으로 형색을 했음인지 너무나 맑고 고운 빛깔을 가지고 있는 강물이라고, 다만 민물이 아닌 바닷물로 된 강이라는 유감스러움을 빼고는 어디 하나 흠 잡을 데 없는 어머니의 품속 같은 그러한 강?이라고 말이다.?더욱이 밤이면 달빛을 받아 그 빛을 발산하는 아름다운 강이라고’

 

내 마음속으로 깊숙하고 조용한 흐름을 할 수 있는 강으로. 언제나 끊임없는 안온함을 주는 그러한 강으로. 변함없는 사랑으로 잊혀지지 않는 세월을 품어 주길.

 

낮달의 놀이가 끝나고 미륵산이 석양을 거둬들이면 주위는 온통 여린 붉은 색이다. 노을은 갯바위를 어루만지며 다음 날을 준비한다. 하늘은 온통 제 집을 찾아가는 갈매기들의 행렬이다.

 

고향은 언제나 문을 열어 놓고 있다. 고향은 언제나 그리운 곳, 추억의 저편에서 손짓하는 곳, 아침에 다녀가도 좋고 점심때 잠깐 들러도 좋고 밤을 지새우며 목청껏 노래를 한 곡 불러도 넉넉한 인심으로 모두를 받아 준다. 그것이 바로 고향이다.

 

 

[김태식]

미국해운회사 일본지사장(전)

온마음재가센터 사회복지사(현)

울산신문 등대문학상 단편소설 당선 등단

해양문학상 논픽션 소설 당선

사실문학 시 당선 등단

제4회 코스미안상 수상

이메일 : wavekts@hanmail.net

 

작성 2024.09.10 10:54 수정 2024.09.10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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