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흥렬 칼럼] 성공한 인생을 위하여

곽흥렬

죽마고우 하나가 비명에 갔다. ‘장군’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다른 동기들보다 덩치도 월등히 컸던 데다 평소 누구보다 강건해 보였던 친구다. 그런 사람이 환갑도 채 넘기지 못한 나이로 창졸간에 이승을 떠나 버렸으니, 그의 죽음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그는 사회 통념상으로 따지면 분명히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모범적인 가정을 이루었고, 자식들도 남부럽지 않게 키워냈다. 사회적으로 명성도 얻었다. 거기다 재물까지 넉넉히 모았다. 갖출 것은 다 갖추었고 보면 누구든 그렇게 여길 만도 하다. 허나 인색한 말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의 삶을 두고 성공한 인생이라고 부르려니 어쩐지 주저가 된다. 그렇게 생각하는 데는 삶에 대한 나름의 개똥철학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성공한 인생일까? 이 물음만큼 실로 다양한 주의 주장이며 생각과 견해 들이 쏟아질 문제도 아마 없을 성싶다. 어떤 이는 큰 권력을 거머쥔 사람을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할 것이고, 어떤 이는 명예가 높이 올라간 사람이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그런가 하면, 많은 돈을 번 사람을 성공한 인생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을 줄 믿는다.

 

누군가 똑같은 질문을 내게 던져 온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이렇게 답을 하고 싶다. 

 

“남에게 해 끼치지 않고 착하게 생을 영위해 왔다는 전제하에, 건강한 몸으로 가장 오래오래 살아남은 사람이 성공한 인생이다.” 

 

이때 ‘착함’의 함의는, 말할 것도 없이 소극적인 착함이 아닌 적극적인 착함이라는 뜻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누구에게나 단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아니한 인생이기에 마르고 닳도록 건강하게 목숨을 부지하는 것, 뭐니 뭐니 해도 이것을 가장 성공한 인생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얼마나 살기 좋아진 세상인가. 어느 누구라도 먹고 입고 자고 하는 것들이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풍요로워졌다. 나라 안은 말할 것도 없고 나라 밖 나들이도 내 집 드나들듯이 하는 시대가 되었다. 행동반경이 그만큼 넓어지다 보니, 그에 따라 보고 듣고 맛보고 즐길 수 있는 것들도 그만큼 다양해졌다. 아무리 지위가 높고 권세를 지녔으며 가진 것이 많다 한들 몸이 따라 주지 않으면 이 좋은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신외무물身外無物이라고 했다. 몸 없이는 아무것도 필요가 없다. 건강이 으뜸가는 재산이다. 다른 것 모두 갖추었다 하여도 건강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면 그것들은 깡그리 무용지물이 되어 버리지 않는가. 그래서 “재물을 잃는 것은 조금 잃는 것이고, 명예를 잃는 것은 많이 잃는 것이며, 건강을 잃는 것은 전부를 잃는 것이다.”라는 격언도 생겨났을 터이다. 

 

이따금 고향 친구들을 만날 때면 그들이 내게 입에도 대지 못하는 술을 자꾸만 들이밀어 온다.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장난질이라는 것쯤도 모르는 숙맥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키지 않는 것을 반강제로 권하니 딱할 노릇이다. 나는 흥이 깨지지 않도록 우스갯소리 삼아 이런 말로써 그들이 주는 잔을 슬그머니 내려놓곤 한다. 

 

“먹고 죽은 귀신은 혈색도 좋다고 했지. 내가 너희들을 모두 꽃상여 태워 저승으로 보내놓고, 그런 다음에 나는 세상을 떠날란다. 그래서 먼저 죽으면 안 된다. 그러니 너희들이나 실컷 먹어라.”

 

원체 기박한 탓에 나한테는 재물복도, 명예복도, 연애복도 주어지지 않은 성싶다. 거기다가 건장한 신체도 물려받지 못해서 사흘에 피죽도 한 그릇 못 얻어걸린 사람 같은 몰골이다 보니 제발 살 좀 찌라는 소리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고 지낸다. 그렇지만 크게 불편한 데 없는 몸으로 가족들에게 신세 지지 않고 오래오래 살아남아서 삶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 ‘성공한 인생’이라는 성적표라도 받고 싶다. 

 

오직 그 바람 하나를 위하여 최대한으로 절제된 생활을 하느라 술, 담배는 물론 육고기를 입에 대지 않고, 이성이며 잡기 따위도 멀리하고 살아온 지가 어느덧 수십 년이다. 그런 소소한 즐거움과 담을 쌓고 어쭙잖게 수도승 흉내를 내면서 지내다 보니, 남들의 눈에는 지극히 메마른 삶으로 비쳐질 게 뻔하다. 

 

그래, 그렇다. 누가 뭐라든 나는 밋밋하고 건조하여 참 재미없는 일상을 꾸려 가고 있는 사람이다, 그 재미없음에서 나름의 재미를 찾으면서.

 

 

[곽흥렬]

1991년 《수필문학》, 1999년《대구문학》으로 등단

수필집 『우시장의 오후』를 비롯하여 총 12권 펴냄

교원문학상, 중봉 조헌문학상, 성호문학상, 

흑구문학상, 한국동서문학 작품상 등을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받음

제4회 코스미안상 대상 수상

김규련수필문학상

이메일 kwak-pogok@hanmail.net

 

작성 2024.09.16 10:21 수정 2024.09.16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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