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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더위가 도망가고 입맛이 돌아오는 가을이 왔다. '봄 도다리 가을 전어'라는 말이 있다. 봄에는 살이 오른 도다리에 쑥을 넣고 끓인 도다리쑥국이 별미라면, 가을에는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전어가 유명하다. 그런데 가을의 별미인 호박갈치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
남해 바다의 이순신 전적지를 답사하다 보면 남도의 맛집을 덤으로 탐방할 기회가 있다. 어느 가을날 통영 서호시장에서 만난 지역 토박이가 알려준 '호박갈치'라는 향토 음식이 있다. 누렇게 익은 호박과 은빛 갈치는 찰떡궁합이다. 단단하고 붉은 속살의 호박에 싱싱한 갈치를 넣어 조림을 하면 맛이 덜큰하다.
늙을수록 좋은 것은 호박과 스님이라는 말이 있다. 주말에 깊은 산골에 있는 주말농장에 갔다. 게으른 도시농부가 봄에 심어 놓은 호박이 넝쿨을 뻗어 잡초 사이를 헤치고 다니면서 누렇게 익은 호박을 숨겨 놓았다. 농약과 비료 같은 건 구경도 못한 자연의 선물이다. 해와 달과 별을 보면서 바람과 비를 맞고 자란 자연산 호박 앞에 서니 감사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요리는 생존의 수단을 넘어 이제 남녀 공통의 취미가 되었다. 호박을 다듬는 재미도 보통이 아니다. 호박을 쪼개어 껍질을 벗기고 숟가락으로 속을 긁어내면 주홍색의 단단한 살만 남는다. 갖은양념을 하여 생물 갈치를 넣고 조림을 하면 천하의 호박칼치가 된다. 천고마비의 계절에 말도 살찌지만, 우리 인간도 영육이 풍요로워 진다.

[이봉수]
시인
이순신전략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