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 아는 사람도 없지만 모르는 사람도 없다. 그게 바로 조선의 아이콘 추사 김정희다. 그는 김정희라는 이름보다 ‘추사’ 또는 ‘추사체’로 대변된다. 울타리 밖을 나가지 못하는 제주도 유배와 그 유명한 ‘세한도’가 저절로 떠오르는 우리의 문화 자존심이다. 추사는 조선 천재들의 주 무대가 되었던 정조시대 사람이다. 왕실 외척 가문의 로열패밀리 금수저로 태어나 세상 풍파 오지게 겪고 정치가로서 또 예술인으로서 그 끝까지 가본 인물이다. 추사의 작품은 세한도나 추사체 등 유명한 것들이 많지만, 나에게 유독 ‘자화상自題小照’이 마음에 깊이 박혀있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저 마음이 갈 뿐이다.
여기 있는 나도 나요
그림 속의 나도 나다
여기 있는 나도 좋고
그림 속의 나도 좋다.
이 나와 저 나 사이
진정한 나는 없네
조화 구슬 겹겹이니
그 뉘라 큰 구슬 속에서
나의 실상을 잡아내리
껄껄껄!
매일 거울을 보고 사는 우리는 늘 거울 속의 나와 만난다. 거울 속의 나와 거울을 바라보는 나에 대해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산다. 추사는 자기 초상화를 찬찬히 바라보다가 초상화가 마음에 들었는지 시를 써서 초상화 오른편에 붙여 둔다. ‘여기 있는 나도 나요. 그림 속의 나도 나다’라는 걸 보면 그림 속의 ‘나’가 진본인지 그 그림을 바라보고 있는 나가 ‘가본’인지 ‘나’는 과연 누구인지 알 듯 모를 듯 헷갈린다. 그러나 추사는 그림 속 나와 현실의 나 사이에서 ‘나’라는 장막에 갇히지 않고 본질에 대한 내성을 잡아낸다. 추사는 숫돌에 잘 연마된 지혜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추사는 유생이면서 불교에 마음이 가 있었던 모양이다. 자기 초상화를 앞에 두고 껄껄껄 웃을 수 있는 여유는 존재에 대한 성찰을 이미 이루었는지 모른다. ‘조화 구슬 겹겹이니 그 뉘라 큰 구슬 속에서 나의 실상을 잡아내리’라고 추사는 말한다. 불교의 제석궁을 만든 아름다운 구슬은 그 하나하나가 우주의 삼라만상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구슬들은 서로가 서로를 비추면서 실상을 반영하는데 그 수많은 구슬 중에 비친 어떤 모습이 진짜 내 모습인지 추사는 그 실상을 잡아낸다고 장담하고 있다.
마지막 연에서 추사는 호탕하게 ‘껄껄껄’ 웃고 만다. 그 웃음에는 표현되지 않은 속뜻이 많이 숨어 있다. 걸어서는 결코 세상의 끝에 도달하지 못하지만, 세상의 끝에 도달하지 않고서는 괴로움에서 벗어남도 없다는 걸 아는 추사다. 온갖 고난을 다 겪고 난 뒤에 껄껄껄 웃는 그 호탕함에 그 시를 읽고 있는 우리도 시름 다 잊고 마음이 후련해진다. 추사는 세상을 의심하면서 그 속에 숨은 본질을 만나기 위해 예술을 방패 삼았는지 모른다. 추사는 그림을 그리고 시를 지으면서 본성을 깨워 자유에 도달했을 것이다. 그 자유의 힘으로 험난한 세상을 살아갔을 것이다.
젊어서부터 불교와 인연을 두었던 추사는 ‘불노’, ‘정선’, ‘찬제거사’라는 불교식 별호를 갖고 있었다. 욕망을 거두고 수행에 정진하는 수행자의 삶을 몸소 실천했다. 그러니 자연히 불교 경전에도 눈이 밝아 대승경전이나 아함경, 안반수의경 그리고 불교백과사전이라는 법원주림, 종경록 등을 읽고 불심으로 마음을 다잡았을 것이다. 추사는 노년에 경기도 과천 관악산 언덕에 있는 과지초당(瓜芝草堂)에 머물면서 지금의 강남 한복판에 있는 봉은사에 자주 갔다. 거기서 스님이 되기 위해 받는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봉은사 판전(板殿)의 현판을 세상을 뜨기 사흘 전에 썼다고 한다. 편액 왼쪽 낙관에는 ‘七十一果病中作’이라고 쓰여 있는데 병이 든 자신을 모두 내려놓고 세상을 초연하게 바라보며 ‘판전’의 글씨를 썼을지 모른다.
진리를 찾던 추사, 그 진리를 실현하고자 치열하게 살았던 추사는 1821년 34세에 대과(大科)에 급제하여 출셋길에 접어들어 10여 년간 부친 김노경과 요직을 섭렵하며 인생의 황금기를 맞게 된다. 그러나 그의 부친 김노경이 탄핵받으면서 인생이 꼬였지만, 아버지가 세상을 뜬 그 이듬해 병조참판에 올랐다. 열다섯 살에 결혼하여 집안 흉사로 고통을 받다가 아내와 사별하고 스승 박제가마저 세상을 떠난다. 북경으로 출장을 자주 가면서 중국 학자들과 교류하고 국제통으로 이름을 날리지만, 제주도 유배로 울타리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면서 추사체와 세한도를 완성해 예술의 혼을 아낌없이 불태웠다.
이 나와 저 나 사이
진정한 나는 없네
우리는 이 나와 저 나 사이에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살아간다. 사는 게 바빠서 힘들어서 고통스러워서 또는 즐거워서 행복해서 내가 누구인지 알려고 하지도 않고 알 필요도 모르는 체 그저 사는 데 급급하다. 스스로 멍청함을 선택해 살아가는 건 아무래도 이기적으로 행동하기 편해서일지 모른다. 편안함에 도망치지 않고 그냥 살면 정신적 낙원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현명하지 못한 우리는 인생에 대해 아무런 의심 없이 살아간다. 추사의 시를 읽으면서 나도 거울 속의 나를 찬찬히 바라본다. 어디쯤 가고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내가 나에게 물어본다. 초라한 영혼을 위로받고 싶어서다. 그렇게 위로받은 힘으로 나는 또 꾸역꾸역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순영]
수필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