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식 칼럼] 경로의존성

김관식

경로의존성이란 “과거에 만들어진 제도, 구조, 규격 등으로 한번 일정한 제품이나 관행에 익숙해져 의존하기 시작하면, 나중에 비효율적으로 되더라도 이를 벗어나지 못하는 현상”을 뜻하는데, 우리들의 생활 전반에서 사회적으로 관습화된 제도나 구조 등으로 생활문화로 자리 잡아버린 것들은 더 편리한 제도나 구조 등으로 익숙해진 생활문화가 좀처럼 바뀌기 어려운 현상을 말한다. 

 

경로의존성 이론은 미국의 더글러스 세실노스와 포겔이 1973년에 펴낸 저서 『경제성장의 원리』에서 경제학에서 처음 등장했고, 이후 사회심리학에서는 1980년대 중반 미국의 스탠퍼드 대학 폴 데이비드(Paul David)와 브라이언 아서가 주창한 개념이다. 폴 데이비드가 컴퓨터 자판의 엉킴을 방지하기 위해 빠른 타이핑이 어렵게 비율적으로 설계된 쿼티 자판 배열이 이후 더 효율적인 자판 배열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보편적 기준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것에 관해 설명하면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를 경영학에서는 선정우위효과로 설명하고 있고, 동물행동학에서는 로렌츠의 각인이론과 유사한 개념이다. 한번 각인이 되면 무의식적으로 습관적인 행동을 반복하게 되는데, 야생동물도 태어났을 때 어미와 단절되어 사람이 돌보게 되면 돌보아 주는 사람이 어미로 각인되어 돌보아 주는 사람을 졸졸따라다는 동물들을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텔레비전 방송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현상도 일종의 동물의 본능적인 경로의존성 때문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언어나 풍습은 경로의존성이 심하다고 할 수 있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다른 시대의 사람들보다 농업사회에서 급격한 산업사회로 변화 속에서 경로의존성을 고집하면 퇴보한다는 경험을 가장 많이 한 세대이다. 경로의존성을 고집하면 자신에게 손해가 되고 경쟁에서 뒤처지는 등 불이익을 당하기 때문에 경로의존성을 빨리 단념하고 바꾸어야 한다. 나보다 앞선 사람들은 변화의 경험을 많이 한 사람들이다. 

 

따라서 기성세대는 여느 시대 사람들보다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받은 세대라고 할 수 있다. 그나마 생활문화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신세대들과 정서적인 소통이 단절되기도 하고 공감하는 정서가 별로 없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우리 속담에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는 속담이 통용되는 세대로 디지털 문화에 익숙한 신세대에게 무능력자로 취급받게 되는 등 농본사회의 경험이 많은 기성세대가 대접받을 받을 수 없는 박힌 돌의 신세가 되어 굴러온 돌에게 자리를 물려주게 되어버린 시대다.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버린 기성세대, 인터넷의 확산으로 선진 정보와 지식의 습득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는 신세대와의 정보의 격차가 심화되고 있고, 국가 간의 경제성장의 차이, 지역 간의 격차, 도농 간의 정보와 생활문화의 격차가 벌어지는 현상도 경로의존성이 지속 기간의 차이로 어느 정도 설명될 수 있다. 경로의존성이 심한 지역에서는 배타적인 경향이 짙다. 도장문화를 고집하는 일본의 생활문화도 경로의존성 때문이다. 

 

농본사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기성세대들은 어린 시절의 생활문화가 모두 박물관이나 민속촌에서나 그 정서를 공감할 수 있을 뿐 성인이 되어서 어린 시절의 정서를 체험하고자 농촌의 고향을 찾아간다고 하더라도 어렸을 때의 정취를 전혀 느껴볼 수 있는 이질적인 생활환경으로 변했다. 따라서 어릴 때의 정취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게 변해있고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남아 있는 자연 모습뿐이다. 

 

그나마 그 자신도 도시화로 인해 과거와 전혀 다른 생활문화에 익숙해져 있고, 농촌도 도시의 생활문화로 모두 바뀌었다. 그 때문에 어릴 때의 정서 경험을 환기시킬 수 있는 고향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그러한 생활문화를 경험하려면 산업화가 늦은 개발도상국으로 해외여행을 떠나야만 가능해진다. 개발도상국의 자연환경과 생활 모습은 어린 시절의 친근한 고향 정서와 엇비슷하여 추체험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개발도상국의 여행은 젊은 세대가 선호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들 나라를 여행하면 문화적인 이질감 때문에 정서적 동질감을 느낄 수 없기 때문에 꺼린다. 따라서 신세대들은 문화적인 이질감이 덜한 선진국으로의 여행을 선호하는 것도 일종의 경로의존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기성세대들은 옛것을 고집한다. 그것은 길들여진 습성에 대한 향수 때문이다. 신세대들은 디지털 과학 문명의 기기에 익숙해져 있다. 세대 간의 경로의존성이 다름으로 인해 점점 소통이 어려워져 간다. 우리나라의 유교생활 문화는 경로의존성을 강요한 생활문화였다. 경로의존성이 강한 사람들은 주로 “구관이 명관이다”라는 고착화된 사고를 보이며 보수적인 경향이 강하다. 그 반면에 경로 의존성이 낮은 사람은 새로운 것에 도전 의식이 강한 개혁적인 경향을 보인다.

 

경로의존성을 너무 고집하면, 고립되기 쉽고 그로 인해 문화 지체 현상이 발생되기도 한다. 사람에 따라 개인차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나이가 먹을수록 새로운 것으로 바뀌지 않고 경로의존성에 안주하여 고착화가 되기 쉽다. 어릴 때 잘못 길들여진 습성은 평생 버리지 못한다. “세 살 때 버릇 여든까지 간다.”라는 속담은 경로의존성이 심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 있듯이 길거리에 “이곳에 쓰레기를 버리지 말아 주세요”라는 경고문이 붙은 까닭은 공익정신이 없는 집단 경로의존성 으로 자신의 입장만 생각하여 쓰레기를 버리기 때문이다. 어릴 때 길거리에 쓰레기를 버리는 길들여진 나쁜 습성은 어른이 되어서도 변하지 않는다. 

 

또한 그것을 보고 자란 어린이들도 어른들의 행동을 모방하여 문화 재생산으로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고 되풀이된다. 우리나라는 한때 새마을 운동으로 내 집 앞과 마을 골목을 청소해 온 마을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살았었다. 그런데 그 습성이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다시 담배꽁초, 종이, 비닐, 스치로폼 등 쓰레기들이 함부로 버려 우리나라 산야가 지저분해져 있다. 국민 모두의 경로의존성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되풀이 되고 있는 악습의 경로의존성 때문이다. 하루빨리 악습의 집단 경로의존성의 고리를 끊는 길만이 선진 국민으로서의 위상을 정립하는 길일 것이다. 

 

 

[김관식]

시인

노산문학상 수상

백교문학상 대상 수상

김우종문학상 수상

황조근정 훈장

이메일 : kks41900@naver.com

 

작성 2024.10.21 10:10 수정 2024.10.21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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