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의 꽃은 국화다
국화는 봄, 여름을 지나는 동안 몇 번의 꺾꽂이를 거쳐 가을이면 꽃을 피운다. 곳곳에서 열리는 가을 국화 전시회가 사람들의 발길을 끈다. 이 꽃들은 화원이나 집에서 인공적으로 가꾸어 키운 것이다.
국화전시회를 알리는 안내장이 우편함에 꽂혀 있는 요즈음의 가을 산하는 온통 붉은 빛으로 혹은 노란빛으로 단풍이 들어가고 있다. 초록빛을 거두어간 가을이 모든 나뭇잎들을 울긋불긋하게 한다. 아파트 앞뜰의 벚나무 잎이 붉게 물드는 것의 아름다움은 새삼스럽다. 지난여름 그렇게도 푸르던 은행 나뭇잎들도 하루가 다르게 샛노란 빛으로 변하여 길 위에 나뒹군다.
더위의 흔적이 지나간 울산 간절곶 바닷가
파도는 하얀 포말을 품은 채 몰려왔다가 사라지고 가을밤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제법 차갑다. 바위 틈새를 뚫고 나온 연초록 풀섶이 보인다. 여름에 지나갔던 태풍도 잘 견뎌낸 잎새는 달빛을 받아 더욱 탐스럽다. 그곳에는 올망졸망한 꽃을 피운 식물이 있었다.
이 가을에 바윗덩이 위의 꽃이라!
밤바다를 보러 함께 떠났던 지인의 말에 의하면 바닷가에서만 자생하는 해국이란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가을전시회로 눈길을 끄는 고고한 국화도 아니고 주먹만 한 크기의 꽃을 피우는 것은 더욱 아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소쩍새가 밤새도록 울었던’ 사연도 없다. 차라리 뒷전에 밀려 홀로 외롭게 자라는 ‘들풀’이라 함이 맞을 듯하다.
흙이라곤 없는 바위틈
모진 해풍을 맞으며 꺾이지 않을 기개로 몸을 낮춰 바위에 기대어 있다. 해변국이라고도 하는 이 꽃은 바닷가에서만 자란다. 잎은 그다지 크지 않고 달걀을 세운 듯한 모양으로 밑은 두껍다. 양면에 털이 빽빽이 나서 희게 보이고 잎 가장자리는 밋밋하거나 톱니가 약간 있으며 주걱 모양이다.
꽃이 10월 중순쯤에 피어나니 계절로만 보자면 국화의 흉내를 조금 내긴 했다. 꽃은 연한 보라빛 또는 흰색이다. 올가을에 처음 본 해국은 그 누구의 손길도 받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꽃이다. 보살핌으로 가꾸어진 꽃이 아니라 스스로 피어나고 지는 꽃이다. 그래서 한 번 더 사랑의 눈길을 주었다.
해풍을 맞으며 자라는 꽃으로 유자, 비자, 치자 등을 일컬어 3자라고 하는 꽃이 있다. 이 꽃들의 특징은 크기가 작다. 거친 해풍을 견뎌내야 하기 때문이다. 해국도 그러한 자연에 순응하느라 몸집을 낮추었나 보다. 파도가 올라왔음직 한 높이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예쁘게 피어있다.
국화가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전시장에서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을 때 해국은 바닷바람을 맞으며 바윗덩이가 주는 자양분만으로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김태식]
미국해운회사 일본지사장(전)
온마음재가센터 사회복지사(현)
울산신문 등대문학상 단편소설 당선 등단
해양문학상 논픽션 소설 당선
사실문학 시 당선 등단
제4회 코스미안상 수상
이메일 : wavekt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