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 한강이 한국인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으면서 각계각층에서 축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당연한 일로서 노벨 문학상 수상은 한강 작가 개인의 영광임은 물론 대한민국의 자랑이자 경사(慶事)다. 그런데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두고 시기 질투하며 배 아파하는 무리도 있으니 안타깝다. 음식을 잘 못 먹었거나 병으로 생긴 그런 배탈, 복통(腹痛)이 아니다. 흥보가에 나오는 놀부처럼 ‘오장 육부’가 아닌, 남들이 잘되는 꼴을 용납 못 하는 ‘심술보’ 하나를 추가한 ‘오장 칠부’를 가진 자들의 배앓이다.
주요 일간지에 글을 쓰고 있는 한 작가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노벨상 수상 작가가 써 갈긴 ‘역사적 트라우마 직시’를 담았다는 소설들은 죄다 “역사 왜곡”이라고 폄훼하고 “역사에 자랑스럽게 남을 수상은 아니다”라고 평가 절하까지 했다. 또 그는 한술 더 떠 만약 동양권 작가에게 노벨 문학상을 줄 필요가 있었다면 중국의 작가 옌렌커가 더 적합했을 것이라는 궤변도 서슴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룬 ‘소년이 온다’와 제주 4·3 사건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를 언급했다. 그런데 그가 지적한 두 작품 모두 스웨덴 한림원이 한강 작가를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호명하며 언급한 7종의 주요 작품에 포함돼 있다. 한림원은 “역사적 트라우마를 직시하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을 선보였다”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었다.
그런데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할 때도 이와 유사한 일이 벌어졌었다. 그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현, 국민의 힘)의 일부 국회의원들과 보수 단체에서 상을 주지 말라는 로비와 함께 수상을 반대하는 서신을 보내는 등 추태를 부렸었다. 노벨위원회 위원장인 군나르 베르게는 "난 한국인에게 노벨상을 주지 말라는 로비 시도를 받았다. 노벨상은 로비가 불가능하고 로비를 하려고 하면 더 엄정하게 심사한다. 한국인들은 참 이상한 사람들이다. 김대중에게 노벨상을 주어서는 안 된다며 수상을 반대하는 편지 역시 수천 통이 왔었다."라고 밝혀 국민을 아연실색게 했었다. 물론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문제 있어 반대한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이대며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것은 명분 없는 일로써 지탄받아 마땅하다.
소설이란 작가의 상상력에 의한 ‘허구(픽션)’의 이야기를 서술하는 문학 장르다. 보통 등장인물, 사건, 배경 등을 포함하며,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일을 다루기도 하고,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세계의 일을 그리기도 한다. 소설은 본질적으로 서사성을 띤다는 점에서 문학의 여타 장르들과 대별되기도 한다. 소설의 특징 중 하나는 ‘도입, 전개, 절정, 결말’ 등 기승전결(起承轉結)이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소설의 목적은 독자에게 감동을 주거나, 사회적 문제를 환기시키거나, 때로는 즐거움을 주고자 하는 데 있다. 따라서 우리가 영화를 영화만의 영역으로 인정하고 감상하듯, 소설도 소설로 읽고 즐기면 그뿐이다.
그런데도 소설 일부 내용을 놓고 이러쿵저러쿵 시비를 걸며 비난하는 것은 소설의 속성을 모르는 무지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강의 소설은 픽션으로 역사 소설도 아니고 역사 교과서는 더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같은 작가로서 축하는 못 할망정 “역사 왜곡” 운운하며 폄훼하고 비난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이 기회에 욕을 좀 먹더라도 노벨상 수상자를 지렛대 삼아 어떻게든 튀어보려는 노이즈 마케이팅을 위한 꼼수는 아닌지 의심스럽다.
타인을 인정하는 마음과 시기 질투하는 마음은 물과 불의 관계와 같다. 특히 시기 질투하는 마음은 자신의 영혼은 물론 공동체마저 파괴하는 암 덩어리로서 상대방은 물론 자기 자신에게도 심각한 피해를 준다. 왜냐하면, 상대방도 똑같은 잣대로 자신을 재단하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잘 된 사람들에게 축하의 박수를 쳐 주고 함께 기뻐하는 데 인색할까. 왜 우리는 남들이 잘되려 하면 흔들어 어떻게든 그 자리에서 밀어내려 안달할까. 왜 우리는 잘 된 사람이 더 잘되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고 응원하는 데 야박할까. 이 모두가 남이 잘되는 꼴을 못 보는 심술보 국민성(?) 때문이라면 가슴 아픈 일이다.
그런데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옛 속담도 있으니 틀린 말은 아닌 듯싶어 이래저래 입맛이 씁쓸하다. 그러나 백번 천번 양보해 생각해 봐도 올해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대한민국의 역사적인 쾌거임이 틀림없다.
[이윤배]
(현)조선대 컴퓨터공학과 명예교수
조선대학교 정보과학대학 학장
국무총리 청소년위원회 자문위원
호주 태즈메이니아대학교 초청 교수
한국정보처리학회 부회장
이메일 : ybl773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