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은 의미 부여를 좋아한다. 작은 의미로 보면, 가족의 태어난 날을 기념하고, 백일, 돌, 결혼일을 기념한다. 나아가 죽은 날에 제사나 추모 모임을 한다. 큰 의미로 보면, 광복절을 비롯한 국가 차원에서 국경일을 지정하여 기념한다. 이 모두 인간이 시간, 즉 날짜에 부여하는 의미이다.
‘상(賞)’도 인간이 부여한 의미 가운데 하나이다. 상은 권위와 가치를 중시한다. “권위 있는 상이냐, 없는 상이냐?”, “가치 있는 상이냐, 없는 상이냐?”는 대체로 집단적 판단일 것이다. 그러나 상의 권위와 가치는 집단적 판단이기에 모순도 있다. 그래서 개인적 판단도 매우 중요하다.
최근(2024. 10.) 정년 퇴임을 앞둔 국립대학교 교수가 정부 훈장을 거부했다. 그는 ‘퇴직 교원 정부포상 미신청자 확인서’를 대학 측에 제출했다. 이는 ‘훈장 포기 신청서’이기도 하다. 현직 대통령 이름으로 주는 정부 훈장을 거부한 것이다. 주는 사람의 권위를 인정할 수 없어 가치 없는 상이라고 개인적 판단을 한 것이다.
이와 동일한 사례가 더 있다. 중등학교 정년 퇴직 교사들도 훈장을 거부했단다. 훈장은 국민이라는 집단적 판단 기준에서는 권위와 가치가 있지만, 그 교수와 교사들의 개인적 판단 기준에서는 권위도 없고, 가치도 없는 것이다. 당연히 그들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
2018년 스웨덴 한림원의 성폭력 파문으로 ‘노벨 문학상’ 권위가 바닥을 치기도 했다. 폐지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현재(2024) ‘노벨 문학상’의 권위와 가치는 회복했다. 세계에서 권위와 가치를 인정한다. 인류의 보편적 판단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반대하거나 비난하는 개인이나 단체도 그들 나름대로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노벨 문학상’의 권위와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선언적 주장으로 충분한 일이다. 이를 확대 재생산하여 스웨덴 대사관 앞에서 집단으로 시위하는 것은 지나친 행위일 수 있다. 그 또한 그들의 판단에 맡길 문제이다.
오늘날 한국 문단에서는 버젓이 표절자나 범죄 경력자에게 문학상을 안겨 준다. 전국에서 발생하는 문제이다. 표절 행위는 그 작가가 죽은 뒤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표절작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작품이라 하더라도 이를 인지한 순간 자체 윤리 관련 조직에 회부하여 진위를 밝혀야 함에도 표절자를 옹호하기에 급급해 왔다. 이미 권위와 가치를 상실한 문학상임에도 이런 상을 받겠다고 줄을 선단다. 상금, 즉 돈 때문이다. 한국 문단의 현주소이다.
인간의 허영심이 낳은 상 욕심의 끝은 어디까지일까? 문인과 문학 단체 스스로 허영심에 매몰되어 가는 현실에 경종을 울려야 할 시점이다. 이들 문학상 가운데 일부는 정부나 광역단체, 지자체의 지원금으로 조성한다. 한국 문단에서는 지원금 빼먹기와 나눠 먹기를 매우 잘한다. 매우 손쉽고 익숙한 일로 여긴다. 이들 문학상의 상금을 지원하는 정부, 광역단체, 지자체는 표를 의식하여 감사 기능을 스스로 마비시켜 놓았다.
어느 정도 인지하더라도 적극 행정으로 감사 기능을 작동시키지 않는다. 이를 외면하거나 묵인한다. 그나마 소극 행정으로 “지원금을 공정하게 집행하라.”며 강조하기는 한다.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이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던져 주고, 알아서 먹어 치우라고 방관하는 것이 문화 관련 행정의 현주소이다.
국민의 혈세를 빨아먹는 행위에 관해 못 본 척 방관하는 행정이 진정 국민을 위한 선진 행정일까? 이들 공무원은 자신의 소극 행정으로 인해 혈세 누수 현상이 발생한다면 배임 행위가 성립함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러함에도 이를 모른 척한다. 이를 두고 도덕 불감증의 시대라고 단정해도 무방할 것 같다.
조선 후기 몇몇 세도가가 자행한 매관매직, 과도한 세금 부과 등 백성의 피를 빨아먹고도 뉘우침이 없던 도덕 불감증과 별반 차이가 없다. 한 나라가 망해 갈 때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다. 신라와 고려가 멸망할 때도 그랬다. 복지부동하는 문화 관련 공무원들의 업무 태도를 볼 때면, 대한민국도 서서히 무너져 가고 있음을 느낀다. 이런 식으로 세월이 흘러가면 나라가 통째로 망할 수도 것이다.
이들 문학상의 돈 빼먹기와 나눠 먹기 사례에서 보는 바와 같이 문제점이 있다. 상을 받는 사람의 공적도 중요하지만, 상을 주는 사람이나 단체의 권위도 매우 중요한 문제임을 일깨우는 사례이다. 허위 공적 혹은 과오를 숨긴 공적으로 신청한 사람에게 상을 주면 권위와 가치를 상실한다는 것쯤은 상식임에도 문단에서는 상식이 아니다.
또한, 상을 주는 사람이나 단체가 보편타당한 권위를 유지하느냐도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시하는 덕목인 윤리 도덕적 문제에 하자가 있다면 그 상은 가치를 상실한다는 것쯤은 상식임에도 문단에서는 상식이 아니다. 더 넓게 보면, 한국의 문화 관련 행정기관과 문단에서는 법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오로지 국민의 혈세 빼먹기와 나눠 먹기에만 혈안이다.
상의 권위와 가치는 상을 주는 사람이나 단체의 자정 능력과 정화 노력도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스스로 상의 권위와 가치를 상실하게 하는 행위는 멀리해야 함이 타당할 것이다.
[신기용]
문학 박사.
도서출판 이바구, 계간 『문예창작』 발행인.
대구과학대학교 겸임조교수, 가야대학교 강사.
저서 : 평론집 7권, 이론서 2권, 연구서 2권, 시집 5권,
동시집 2권, 산문집 2권, 동화책 1권, 시조집 1권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