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이천구십삼년 전 인간 ‘박혁거세’다. 나는 알에서 태어났다. 진한 땅 여섯 부족의 지도자들이 나라를 세우기 위해 알천에 모였다. 고허촌장 소벌공이 언덕에서 양산 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우물가에 번개가 치고 이상한 빛이 나더니 말 한 마리가 무릎을 꿇고 울고 있었다고 한다. 소벌공이 사람들을 데리고 그곳을 찾아가 보니 말은 온데간데없고 붉은 알 한 개가 있어 신비롭게 여기고 깨트려보니 단정하고 아름다운 사내아이가 나왔다고 한다. 그 아이가 바로 나다. 나는 그렇게 이 세상에 나왔다.
내 몸에서는 광채가 났다고 한다. 그 광채를 따라 새와 짐승들이 모두 춤을 추고 천지가 진동하며 해와 달이 맑고 밝게 빛났다. 사람들은 내가 태어난 알의 모양이 표주박을 닮았다고 성을 ‘박’이라고 했다. 여섯 촌장이 힘을 합해 정성으로 나를 길렀다. 내가 열 살이 될 무렵 매우 영리하고 제주가 뛰어나자 여섯 촌장은 나를 왕으로 추대했다. 나는 혁거세왕이 되었으며 왕위에 대한 칭호는 거슬한으로 했다. 사람들은 나를 왕으로 모시며 천자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셨으니, 덕이 있는 여성을 찾아서 나의 배필로 정하겠노라고 했다.
내가 태어나던 해 알영정에 계룡이 나타나 옆구리에서 여자아이를 낳았다. 물을 길러온 한 할머니가 여자아이를 받았는데 입술이 흉측한 닭의 부리를 닮아 얼른 냇가에 가서 아이를 씻기자, 부리가 떨어져 나가고 예쁜 입술이 나타났다고 한다. 그래서 ‘알영’이라고 이름을 짓고 나와 알영을 함께 길렀다. 나는 알영을 배필로 맞아들이고 알영은 나의 왕비가 되었다. 드디어 새로운 지도자로 나와 알영이 선택되고 이 땅에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갈 새 시대가 열리고 있었다.
나는 여섯 부족을 통합했다. 마을 간의 의견을 존중하여 융합하고 상호 협력 체제를 구축했다. 새로운 국가를 다스리려면 안정적인 통치가 필요했다. 나는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로 국가의 틀을 잡았다. 국호를 신라로 정하고 사회와 경제에 온 힘을 쏟아부었다. 무엇보다 농업의 중요성을 알리고 농업을 장려하여 배고픔에 허덕이는 백성이 없도록 했다. 또한 양잠업을 활성화하여 실크 생산에 힘써 백성들에게 경제적 자립을 적극 도왔다. 그리고 주변 국가들과 실크 교역을 활발하게 해서 국가 자립도를 높였다. 사회는 점차 안정을 되찾으며 백성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었다. 그 결과 어진 백성들은 서로 다툼이 없고 도둑도 사라졌으며 평화로운 서서히 세상이 떠오르고 있었다.
우리나라 주변에 있는 강대국들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 큰 노력을 기울였다. 나는 외교는 국가의 바탕이라는 국정운영의 철학을 갖고 있었다. 강대국들의 먹잇감이 되지 않기 위해서 대등한 위치가 되도록 국방력을 튼튼하게 하고 경제 교류도 활발하게 했다. 이런 외교적 성과가 가시화되자 군사적 충돌이 잦아졌지만, 외교적 협력을 통해 국가의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다양한 정책과 개혁을 추진했는데 종교도 필요했다. 나는 불교를 국교로 정하여 우리 백성들이 정신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했다. 더불어 윤리와 도덕을 교육해서 참된 인성을 갖추도록 했으며 문화 발전에도 힘을 쏟았다. 그 결과 나는 이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주변 국가에도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지도자가 되었다.
나는 수도 경주를 천년 신라로 만들기 위해 기반 시절을 정비하고 발전시키는데 온 힘을 쏟았다. 경주는 자연적으로 방어에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는 땅이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고 경주 곳곳에 기반 시절을 만들어 백성들이 생활하는데 불편하지 않도록 수도로서의 기능을 강화하는 데 주력했다. 경주를 행정 중심의 도시뿐만 아니라 상업과 문화의 도시로 만들었다. 백성들이 다니는 길을 정비하고 시장을 활성화해 시장경제가 돌아가고 문화를 꽃피울 수 있도록 성장시켜 천년만년 번영할 수 있는 국가의 기틀을 닦았다.
왕 위에 오른 지 21년 만에 수도에 잦은 왜적의 침입을 막고 백성들이 근심 걱정 없이 평온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성을 쌓고 궁궐을 지었다. 이제 나라의 기틀이 잡히고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그렇게 평화로운 시절이 이 년 여간 지나갈 무렵 낙랑군이 쳐들어왔다. 낙랑군은 우리 백성들이 밤에 문을 걸어 잠그지도 않고 사는 것을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하물며 들판에 곡식이 널려있는 것을 보고 무슨 이유인지 궁금해했으나 곧 그 정체를 알아차렸다. 우리 신라에는 나라의 법이 바로 서고 임금과 신하와 백성이 서로 믿고 의지해서 도덕과 양심이 있는 나라라고 인정하고 바로 물러갔다.
몇 해 후 음력 이월 마한에 사신 ‘호공’을 보냈다. 마한의 왕은 우리 신라를 업신여기며 왜 조공을 바치지 않냐고 노발대발했다. 그러면서 사신으로 간 ‘호공’을 죽이려고 했지만, 신하들이 겨우 말려서 호공을 놓아주었다. 그 일로 마한과 국제관계가 틀어지게 되었다. 그 이듬해 마한 왕이 죽었다. 신하들이 마한 왕이 죽었으니 이 틈에 마한을 정벌하자고 권했지만 나는 오히려 사신을 보내 마한 왕의 죽음을 애도하고 조문했다. 그리고 신하들을 불러 모아 나의 의견을 만천하에 알렸다.
“다른 사람의 불행을 요행으로 여기는 것은 도덕이 없는 것이며 어질지 못한 일이다”
왕위에 오른 지 육십 년이 되던 해 가을이었다. 9월의 찬바람이 불어오는데 두 마리의 용이 우물 안에 나타났다. 그러더니 갑자기 천둥이 치고 성의 남쪽 문에 벼락이 내리치며 비가 세차게 퍼부었다. 이제 때가 되었음을 직감했다. 나는 알에서 태어나 사람으로 신라를 다스리고 죽음으로 신화가 될 것이다. 나는 칠십삼 세로 죽음을 맞이했다.
[전명희]
서울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다 그만두고
‘밖철학연구소’를 설립해 연구에 몰두했지만
철학 없는 철학이 진정한 철학임을 깨달아
자유로운 떠돌이 여행자가 된 무소유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