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식 칼럼] 세상 떠난 할아버지

김태식

80세 가까운 연세의 A할머니는 폭력성이 심한 치매를 3년째 앓고 계셨다. 치료되지 않는 불치병으로 점점 굳어져 가는 치매는 모든 식구들을 힘든 고통 속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사회복지사가 한 달에 한 번씩 가정방문을 하는 날이면 할머니를 혼자 돌보시는 남편은 푸념 섞인 말씀을 하셨다.

 

“복지사 선생 자식들은 자기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지 않는다고 찾아오지도 않고 나도 거동이 힘들지만 치매 마누라 돌봐야 하는 천명天命인걸 어찌하겠소. 그믐달이 어디 처음부터 빛을 잃은 그믐달이었겠소. 보름달도 되었다가 반쪽 달도 되지 않았겠소”

 

옛 시절 할머니와의 추억을 떠올리시며 엷은 미소를 지으신다. 

 

“복지사 양반 내가 편하자고 인지능력이 전혀 없는 마누라에게 요양원이 집보다 편하다고 어이 거짓말하고 버리듯이 슬그머니 떼 놓고 온단 말이오. 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못 보내”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밥을 떠먹이며 하시는 말씀은 늘 이랬다.

 

“당신 밥 많이 먹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식들이 요양원에 보낸다. 당신을 요양원에 보내지 않는다고 6남매 어느 자식도 최근에는 다녀가지 않는다네”

 

어느날 오전 9시경에 방문요양사가 전화를 했다. 할아버지 댁으로 출근을 하니 할아버지가 쓰러져 계신다고 했다. 경찰에 신고를 했더니 수사대가 와서 조사를 하니 할아버지는 약 3시간 전에 숨이 멈췄다는 결과가 나왔다.

 

할아버지는 평소 할머니의 치매로 인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으며 지병인 고혈압으로 혈액 순환에 이상이 생겨 심정지 상태로 사망한 것이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줄도 모르고 배가 고픈데 밥을 챙겨주지 않는다고 쓰러져 있는 할아버지를 꼬집고 흔들어 깨운 것으로 추정된다는 의견도 첨부되었다. 

 

할머니는 자고 일어났는데 평상시 오전 8시쯤에 남편이 틀림없이 챙겨주던 밥을 주지 않으니 화가 치밀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남편이 사망했다는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밥을 주지 않는다고 할아버지를 마구 흔들었던 것이다. 할아버지가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이 아파트로 담보대출을 받으면 아내가 죽을 때까지 내가 돌볼 수 있겠지요. 어쨌든 나 보다 일주일 정도 빨리 죽었으면 좋겠는데”

 

할아버지의 간절한 바람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다. 할아버지가 먼저 세상을 떠나신 바로 그날 할머니는 요양원으로 옮겨졌다. 할아버지는 그토록 할머니와 다짐했던 약속을 끝내 지키지 못했다. 

 

인생은 태어나면서부터 생로병사를 피해 갈 수 없다. 늙지 않고 병들지 않으며 죽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김태식]

미국해운회사 일본지사장(전)

온마음재가센터 사회복지사(현)

울산신문 등대문학상 단편소설 당선 등단

해양문학상 논픽션 소설 당선

사실문학 시 당선 등단

제4회 코스미안상 수상

이메일 : wavekts@hanmail.net

 

작성 2025.01.07 11:47 수정 2025.01.07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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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