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문은 우리에게 온갖 읽을거리를 제공해 주는 정보의 바다이자 지식의 곳간이다. 오늘날처럼 톱니바퀴 물린 듯 빡빡하게 돌아가는 일상에서, 그다지 큰 노고의 대가를 치르지 않고 이런저런 다양한 삶의 양식을 가꿀 수 있는 수단으로 어디 신문만 한 것이 있을까. 세상에 이 신문이라는 발명품이 나오지 않았던들, 모르긴 해도 우리들 지금 가진 알량한 식견마저 훨씬 무디어졌을 것만 같다.
뿐만이 아니다. 기사 속의 주인공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세상잡사로 구겨지고 얼룩 묻고 상처 입은 마음이 그로 하여 위로받는 무형의 가치는 또 얼마인지 모르겠다. 그러기에 나는 이른 아침 잠자리에서 깨어나자마자 거의 무의식적으로 현관문을 열고, 한 마리 나비가 되어 납죽 날개를 접은 채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조간신문을 주워드는 일로 하루의 일과를 시작한다.
상크름한 잉크 냄새가 술기운처럼 확 풍겨 온다. 흐릿해 있던 의식은 금세 또렷해진다. 세상이 아직 새벽의 단꿈에 취해 있을 이 시각에, 밤새 기사를 작성하고 편집하고 인쇄하느라 애쓴 이들의 체취가 채 가시지 않은 조간신문을 이렇게 내 집 현관 앞에 떨어뜨려 놓고 간 배달원의 노고에 잠시 고마운 마음을 갖는다. 조금이라도 빨리 펄떡이는 새 소식을 전해주려고 그들의 이마에는 구슬땀이 송골송골 맺혔으리라.
거실 바닥 한가운데다 부리듯이 내려놓기가 무섭게 이쪽 면 저쪽 면을 순서 없이 마구 뒤적이기 시작한다. 평소 그리 차분하지 못한 성격은 여기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애초 첫 장부터 차근차근 읽어내지 못하는 것이 버릇처럼 굳어져 버린 지 오래다.
정치면을 한달음에 일별하고 곧바로 사회면으로 옮겨간다. 오늘은 또 무슨 무슨 사건들이 터졌나. 세상이 이렇게 뒤숭숭해서야 장래 나라 꼴이 어떻게 되겠누. 새끼 개구리가 염려되어 안절부절못하는 어미 개구리처럼 별 뾰족한 대책도 없는 주제에 그저 혼자서 용을 쓰며 끙끙거린다.
그러다가 이내 경제면 쪽을 뒤적인다. 오늘은 생선값이 얼마나 오르고 농산물값이 몇 퍼센트나 떨어졌는가. 증권 시세는 또 어떻게 되었지. 이런저런 것들에 관심의 촉수를 세운다. 이때는 비가 와도 걱정, 안 와도 걱정인 짚신 장수의 심정이 된다.
문화면을 놓칠 리 없다. 근 서른 해 전부터 잡문 나부랭이나마 긁적거리며 작가연하고 있는 주제이니, 이 문화면에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은 아닌지 모르겠다. 오늘은 누가 어떤 제목을 달아 자신의 분신을 세상에 내어놓았나. 누가 무슨 문학상을 받았는가. 오늘은 또 어떤 문인단체의 세미나가 있지. 이런저런 소식들이 궁금해진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이렇게 한달음에 순배巡杯를 도는 데 거지반 이십여 분이 소요된다. 이 정도면 큼직큼직한 정보는 얼추 머릿속에 저장이 끝난 셈이다.
하지만 이쯤 해서 읽기를 마쳐 버린다면, 그는 진정 신문의 참맛을 아는 애독자라고 말할 수 없으리라. 신문 읽는 재미야말로 여기서부터 비로소 시작이라고 한다면 어폐가 있을까. 나는 마치 무슨 대단한 연구나 시도할 사람처럼 이제 본격적으로 바닥에 배를 깔고 큰 대大자로 엎드린다. 그 자세로 삼십 분도 좋고 한 시간도 좋다. 그야말로 물 쓰듯이 시간을 쓴다. 설령 그렇더라도 신문 읽는 데 보내는 시간만큼은 그다지 아깝지 않다. 세상에 신문이라는 읽을거리가 없다면 얼마나 따분하고 무미할까. 이런 생각이 들 만큼 나는 신문 읽는 재미로 그날 하루를 산다고 해도 그리 지나친 표현은 아닐 성싶다.
하루 중 깨어 있는 전체 시간의 일 할 이상을 투자해서 얻어내는 수확이 만만치 않다. 주먹구구식으로 투입과 산출의 이해득실을 따져 보아도 아마 플러스 쪽으로 훨씬 무게 중심이 실릴 것 같다. 딱 부러지게 말은 못 하겠지만, 내 알량한 지식이랄까 식견 따위의 절반 이상은 신문을 통해 얻어진다고 보면 대충 맞지 싶다.
여기서 고백건대, 사실은 그냥 재미 하나를 위해서 신문을 읽는 것만은 결코 아니다. 핏발을 세우고 찾으려 애쓰는 인생살이의 가치문제 같은 화두話頭를, 난데없이 이 잡다한 신문 기사 가운데서 이따금 발견할 수 있는 행운 때문이다. 이것들은 내가 나아가야 할 삶의 방향을 인도하는 푸른 신호등이 되어 준다.
신문 속에는 세상을 살아가는 데 진실로 소중한, 백사장의 사금처럼 반짝이는 삶의 지혜가 수도 없이 숨어 있다. 가난하면서도 꿋꿋이 생활을 꾸려 나가는 소박한 사람들의 이야기며, 장애를 극복한 인간 승리의 사연이며, 자수성가한 어느 기업가의 따뜻한 이웃 사랑이며, 끈질긴 도전정신으로 세계 최고봉 등정에 성공한 젊은 등반가의 용기 그리고 창작에 대한 집념을 불태우다 요절한 어느 예술가의 짧지만 굵었던 생애…….
어디 그뿐인가. 어떤 재벌기업 회장의 부고 기사, 부부싸움 도중 홧김에 저지른 방화사건, 취객을 상대로 한 아리랑치기, 도박이며 마약에 빠져 만신창이가 된 인생 낙오자의 사연, 청소년 성매매로 패가망신한 어느 회사원의 치기稚氣, 급증하는 불륜이며 이혼의 심각성을 다룬 특집 기획물……, 심지어 하찮은 광고 한 줄까지도 내 삶의 중심을 다잡는 일에 얼마나 큰 보탬이 되는지 모른다.
그 하나하나가 때로는 삶의 신선한 귀감龜鑑으로, 때로는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각기 나름의 의미를 달고서 내게로 다가온다. 사실은 이것이 내가 신문을 읽는 진짜 이유인 것이다.
[곽흥렬]
1991년 《수필문학》, 1999년《대구문학》으로 등단
수필집 『우시장의 오후』를 비롯하여 총 12권 펴냄
교원문학상, 중봉 조헌문학상, 성호문학상,
흑구문학상, 한국동서문학 작품상 등을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받음
제4회 코스미안상 대상 수상
김규련수필문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