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단이 똥구멍에 나팔꽃이 피었다"라는 남부지방 속담이 있다. 안단이는 별로 아는 것도 없으면서 오지랖만 넓어가지고 이것저것 아는 척하며 동네방네 떠들어대는 사람이다. 쓸모없는 말을 쏟아내는 안단이의 입을 똥구멍에 비유한 조상들의 해학이 재미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똥구멍에 나팔꽃이 피었다고 했을까. 나팔꽃은 생긴 모양이 트럼펫을 닮아 영어로 '트럼펫 플라워'라고 한다.
예전에 곡마단이 방방곡곡을 유랑할 때 트럼펫을 불며 북을 치고 다녔다. 트럼펫은 고음에다 소리가 커서 세게 불어젖히면 구경꾼들이 몰려든다. 그래서 안단이가 떠들어대는 헛소리를 똥구멍에서 불어대는 트럼펫 나팔 소리 정도로 여겼던 것이다.
원래 많이 아는 사람일수록 말 수가 적다. 가을 들판의 벼도 알이 차면 고개를 숙이는 법이다. 그러나 안단이는 속 빈 강정이고 빈 깡통이다. 비포장길의 빈 수레처럼 소리가 요란하다.
동네마다 1% 정도 모자라는 안단이는 꼭 한두 명 있었다. 이들은 남의 눈치를 보지도 않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찌질이지만 본인의 행복지수는 매우 높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사람들이 안단이를 무조건 미워하거나 배척하지는 않았다. 조금 모자라지만 함께 데리고 가야 할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동네 축제나 잔치가 있는 날이면 사람들은 은근히 안단이 똥구멍에 나팔꽃이 피기를 기다렸다. 잔칫날에는 거지 떼와 각설이패가 와서 요란을 떨고 가끔 깽판도 쳤는데, 이들을 달래고 제압할 수 있는 사람은 안단이 밖에 없었다.
안단이는 악의적인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오지랖 넓은 푼수나 반푼이가 무슨 재주로 그런 짓을 하겠는가. 똥구멍에 나팔꽃 같은 확성기를 달고 헛소리를 떠들어대지만 가짜 뉴스를 퍼뜨릴 만한 위인은 아니다. 사람들은 자기보다 못나고 부족한 안단이에게 마음의 문을 열었다. 그러나 요즘은 유튜브를 통하여 여기저기서 똥구멍에 나팔꽃을 피운 안단이들이 너무 많아서 탈이다.
[이봉수]
시인
이순신전략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