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가 해본 가장 용감한 말이 뭐야?”
“도와줘”
우리는 때때로 길을 잃는다. 집을 잃고 가족을 잃기도 한다. 그런 우리에게 특별한 메시지를 전해주는 단편 애니메이션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은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담는 영화다. 아이들 영화라기보다 어른에게 더 다가오는 영화다. 그래 어른동화라고 해야 한다. 살면서 덕지덕지 묻은 삶의 때를 이 영화가 씻어줄 것만 같다. 우리는 무작정 생존을 위해 사는 것인가. 경쟁에서 이겨야 하고 이기지 못하면 바보가 된다. 그렇게 세뇌당하면서 살아간다. 그렇게 일찍 허무한 인생이라는 걸 알아버린 우리는 대체 희망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어른들은 어린이보다 금방 세태에 물든다. 사는 게 힘들기 때문이다. 삶도 사랑도 인생도 다 어렵고 고달프다. 그런 우리는 원래 인생이 그런가야 그러니까 인생이지 하며 자조하거나 실망하거나 포기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일으켜 세우는 건 작고 소중한 말 한마디, 문장 하나, 다독이는 위로 하나다. 큰 게 아니다. 아침 일찍 뛰어갔지만 놓친 버스, 겨우 탄 붐비는 지하철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내리는 곳을 지나친 경험,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지만 꾸역꾸역 일터로 향하는 서글픈 발걸음을 갖고 사는 게 삶이다. 그런 삶에서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은 따뜻한 우유 한 잔 같은 영화다.
“너는 자라서 뭐가 되고 싶어?”
“나는 ‘친절’이 되고 싶어.”
“그래, 친절을 이기는 건 아무것도 없지.”
길을 잃고 헤매는 소년에게 우연히 만난 두더지는 뭐가 되고 싶은지 묻는다. 소년은 ‘친절’이 되고 싶다고 대답한다. 그러자 두더지는 친절을 이기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신중하게 말한다. 소년과 두더지는 눈 쌓인 길을 서로에게 의지하며 걸어간다. 그러다가 여우를 만나게 된다. 소년과 두더지는 자신을 해치려 했던 여우를 피해 나무 위로 올라간다. 하지만 덫에 걸린 여우를 구해주는 친절을 베푼다. 다시 눈길을 걷는데 두더지가 눈길에 굴러서 강물에 빠지고 만다. 이때 여우가 나타나 두더지를 구해주고 셋은 친구가 되어 길을 걸어간다.
그러다가 산속에 홀로 있는 외로운 말을 만나 넷은 함께 친구가 되어 길을 걸어간다. 그렇게 걷다 보니 멀리 집이 보였다. 그러나 갑자기 폭풍이 몰아치고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숲속에 숨어 있게 된다. 폭풍이 지나가자, 소년의 집은 폭풍에 사라지고 없었다. 절망에 빠진 소년에게 말과 두더지와 여우는 용기를 주고 결국 소년은 집을 찾게 된다. 그리고 두더지와 여우와 말과 이별을 하게 된다.
특별한 네 친구가 함께하며 주고받은 단편 애니메이션 영화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은 원작이 따로 있다. 저자 찰리 맥커시는 일러스트레이터로 옥스퍼드대학 출판부의 표지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그는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 대화를 글과 그림으로 표현했다. 그렇게 모인 글과 그림을 출판하자 아마존 전체 순위 1위를 차지했고 뉴욕타임스와 유에스에이투데이, 월스트리트저널 등 일간지에서 베스트셀러가 된다. 그렇게 출간 직후 50만 권이 팔렸다. 또한 전 세계 22개국 번역 출간되었다.
특별한 네 친구가 주고받는 우정과 사랑, 희망과 순수에 대한 그림책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 어린이 뿐만 아니리 어른들의 마음에 따뜻한 꽃을 피웠다. 그냥 마음이 따듯한 영화다. 어려운 철학도 없고 어려운 대화도 없다. 우리 마음속에 콕 박히는 대화가 특별하다. 얼마나 우리의 가슴이 메말라 있다는 증거인가. 우리는 누군가에게 상처받고 또 누군가에게 상처 주며 산다. 죽고 싶을 때도 있고 기뻐서 날뛸 때도 있다. 그런 우리에게 이 영화는 문득 발밑에 깔린 민들레를 보는 느낌이다. 그 노란 꽃을 보며 자신을 성찰해 보는 영화다.
이 애니메이션 영화는 100명이 넘는 애니메이터들이 한 장 한 장 직접 손으로 그리며 마음과 마음을 다해 제작했다. 그 섬세하고 아름다움이 영화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이 함께 하는 여행은 우리의 여행이 된다. 이 영화는 2023년 제95회 아카데미에서 단편 애니메이션 최우수상과 특별상을 받았다. 2023년 영국 영화 아카데미상(BAFTA)을 수상하며 영화에 담긴 삶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어렵고 힘든 순간이 오면 네 명의 친구들이 전해주는 메시지를 떠올리며 다시 힘을 얻게 된다.
“우리 모두 여기 있어서 기뻐”
“집이 꼭 장소일 필요는 없어”
“난 아주 작아. 그렇지만 네가 이 세상에 있고 없고는 엄청난 차이야.”
“도움을 구하는 건 포기하는 게 아니야. 포기하기를 거부하는 거지”
“우리가 가진 최고의 자유는 반응할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
“문제를 통제할 수 없다고 느낄 때 네 곁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집중해”
“난 가끔 이렇게 말하고 싶어. 모두 사랑해. 근데 말하기가 어려워”
“우리 모두 여기에 있어서 기뻐”
[최민]
까칠하지만 따뜻한 휴머니스트로
영화를 통해 청춘을 위로받으면서
칼럼니스트와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대학에서는 경제학을 공부하고
플로리스트로 꽃의 경제를 실현하다가
밥벌이로 말단 공무원이 되었다.
이메일 : minchoe293@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