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형, 정말 고마워요.”
아침마다 체육관에서 뵙는 선배가 갑작스레 내게 말을 건넸다.
“지난번 얘기해준 십일조 때문에 너무나 기분 좋아. 집안 분위기도 싹 달라졌어!”
매일 아침 체육관에서 만나는 한 선배가 내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그는 내가 소개한 '가족 십일조' 덕분에 매달 용돈 60만 원씩을 자녀들에게 받게 되었고, 이로 인해 집안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했다.
이 선배는 국립병원장을 역임했으며, 세 아들이 있다. 그는 세 자녀의 결혼 시 빚을 내어서까지 집을 사주거나 전세를 얻어주느라 재정적으로 큰 부담을 겪었다.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노후 걱정 때문에 여전히 동네 병원에서 외과 전문의로 일하고 있었다. 선배는 자녀들이 결혼 후에도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지 않아 불만이었고 자주 푸념을 했다.
지난여름 체육관 회원 모임에서 선배가 또다시 자식 얘기로 불만을 토로했다. 나는 그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우리 가족의 '십일조 제도'를 소개했다. 우리 집에서 실행하는 십일조는 기독교의 십일조와는 전혀 차원이 다르다. 기독교의 십일조는 자신이 번 돈을 서로 나누는 것으로 교회를 짓거나 운영 경비로 충당하기도 하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위하여 교회 중심으로 나눔의 덕을 실천하는 제도다.
몇 달 후, 선배는 우리집 십일조 제도를 당신의 가정에도 실행에 옮겼다고 말했다. 가족회의를 통해 우리 집 사례를 자녀들에게 공유했고, 그 결과 세 아들이 매월 각각 20만 원씩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선배는 이 변화에 대해 매우 감사해하며 덕분에 집안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고 좋아했다.
선배에게 전해준 우리 가족 십일조 제도의 내용이나 취지는 이렇다. 매월 받는 월급의 십 분의 일을 본인들은 교회를 다니지 않으니 대신 그동안 키워준 엄마한테 용돈으로 주도록 했다. 자식이 주는 용돈은 원래 자발적인 경우가 많다. 자녀들이 스스로 알아서 주지 않는 한 요구나 강요로는 그 의미가 반감되는 특징이 있어서 룰을 정하거나 제도화시킬 필요가 있다.
은연중 압력이라 할까, 처음에는 약간 강제성을 띤 나의 제안이었지만 아이들이 20여 년 전 회사 입사 첫 달부터 시작한 이 제도는 집안의 룰이 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보통 부모·자식 간에 주고받는 이러한 제도는 시작을 하더라도 중간에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다. 아비인 내가 십일조를 직접 받지 않고 엄마가 대신 받으니 제3자 입장에서 제대로 지키는지 감시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보너스 탈 때도 10% 룰은 그대로 적용시켰다. 아들은 꾀를 내 전자제품을 사내가(社內價)로 싸게 구입하고 계산은 시가로 적용하기도 했지만, 덕분에 가전제품은 모두 새것으로 장만하기도 했다. 다만 결혼 후부터는 애들도 키우고 집 장만한다고 빌린 융자도 갚아야 하니 사정을 감안해 정률이 아닌 정액으로 감면해 주었다.
십일조의 효과는 생각 이상으로 컸다. 우선 자식과 부모 간의 사이가 가까워졌다. 용돈을 받은 부모들은 반드시 그 이상을 자식이나 손자들에게 되돌려주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마트에 가서 맛있는 찬거리나 고기를 사다 냉장고에 넣어놓고 전화를 하면 차를 몰고 총알같이 달려온다. 밉지 않은 냉장고 털이범들이라고나 할까. 요즘에 결혼한 자식 찾아가거나 집에 자주 오라는 이야기도 쉽지 않다고 하는 세상이지만 굳이 집에 오라마라 하지 않아도 자동 해결된다.
게다가 십일조 이후 가족 간에 대화가 많아졌다. 누구든지 이미 받은 돈으로 생색내기는 어렵지 않다. 모아놓은 돈으로 이번 달에는 무엇을 사다 줄까 자주 전화하고, 한 달에 한두 번 맛집에 들러 밥도 사주면 소통이 원활해지고 믿음과 신뢰도 생긴다. 또한 손주들에게도 먹고 싶은 것이나 꼭 필요한 것을 개별로 물어보고 사주면 자연스럽게 그 약효가 애들까지 미친다.
더 의미 있는 일은 시어머니와 며느리 간의 관계가 돈독해졌다는 느낌이다. 어느 집안이나 고부간의 갈등은 존재한다. 서로 주고받는 사이에 대화가 많아지고 자주 만나니 자연스럽게 거리는 가까워진다. 소통이 잘 되고 배려심이 생겨 문제가 있더라도 웬만하면 서로가 이해하고 넘어간다. ‘사랑할수록 멀리 둬라.’는 말이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랑에 대한 원심력이라면 십일조는 구심력의 역할을 한다고나 할까.
이러한 학습효과 덕분인지 아이들이 결혼하자 아들은 장모한테, 딸은 시어머니한테 용돈을 드리기 시작했다. 결국 결혼 후 십일조를 정액으로 깎아준 금액이 그대로 양 안사돈 용돈으로 탈바꿈하여 다시 십일조가 된 셈이다. 옛말에 ‘사돈집과 뒷간은 멀리 두라.’고 했는데 십일조 덕분인지 모르지만 우리 집안은 좀 다르다.
한 집안 식구 같은 분위기라서 양쪽 사돈집 식구들과 자주 연락도 하고 지내며, 달린 식구들까지 같이 모여 가끔 여행도 하고 망년회도 함께 한다. 사돈집과 서로 역할을 분담하고 도우며 네 손주들을 무사히 키워 막내 손녀까지도 곧 중학생이 된다. 정말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우리 가족의 십일조 약속은 단순한 금전적 거래를 넘어, 가족 간의 소통과 이해, 그리고 사랑을 깊게 하는 수단이 되었다. 이 작은 실천이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행복과 따뜻함을 가져다주었다. 우리 집의 십일조 약속은 가족 간의 유대를 강화하고, 세대 간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중요한 매개체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가족 문화가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많은 가정이 더욱 화목해지고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가재산]
한류경영연구원 원장
한국디지털문인협회 부회장
미얀마 빛과 나눔 장학협회 회장
저서 : 『한국형 팀제』, 『삼성이 강한 진짜 이유』
『10년 후 무엇을 먹고살 것인가』, 『아름다운 뒤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