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이로의 숨은영화찾기] 변덕스러운 인간, 영화 'Her'

임이로

영화 <HER>는 이혼 소송으로 힘들어하며 연애편지를 대필해 주는 작가 테어도르가 인공지능 운영체제인 사만다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SF 로맨스다. 놀랍게도 이 영화의 배경은 2025년. 올해 을사년이 된 지 한 달쯤 더 지나가는 이 시점에서 이 영화를 떠올렸다니. 어쩐지 감회가 새롭다. 그리고 영화 속 테어도르와 사만다처럼 지금은 2025년, 우리는 놀랍게도 인공지능과 대화하는 기술을 통해 인간의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성장시키고 그것이 중대한 국가 경쟁력이 된 시대에 실제 살고 있다.

 

영화는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많이 제공해 준다. 과연 인공지능과의 사랑을 우리는 사랑이라 말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서부터, 편지를 대필해 주는 테어도르의 업무와 사만다가 테어도르에게 선물로 지어준 음악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AI 사만다와의 관계에서 다시 일상의 활기를 되찾은 테어도르는, 미루던 이혼 절차를 직면하기 위해 전 아내 캐서린을 만난다. 그녀에게 거짓이 없길 바라는 테어도르는 인공지능과 만나고 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캐서린은 그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게 다 외로워서 그래.”

 

영화를 보다 보면 이 말이 저절로 떠오른다. 외롭지 않기 위해 사람을 만나다가도, 다시금 사람으로부터 숨어버리는 우리가, 과연 ‘내 말을 잘 듣는 인공지능’에 만족이란 걸 할 수 있을까? 인간의 감정은 변화무쌍한 것이라 어느 순간부터 자신을 둘러싼 타성에도 지치기 마련이고, 그렇다고 늘 새롭기만 하다가는 주변이 산만해 마냥 편안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혹시 인간의 행복은, 이러한 카오스(혼돈)과 코스모스(질서)를 오가는 데서 아주 찰나에 발현하는 아주 미세한 것이 아닐까.

 

사람은 정적이다가도 동적이고, 동적이다가도 정적일 때 아름다움을 느끼곤 한다. 따라서 유행도 돌고 돈다. 예전에 엄마가 젊은 시절 입다가 촌스러워 옷장 깊숙한 곳에 숨겨둔 옷을 발견해 꺼내보니, 요즘 꽤 값나가는 옷보다도 원단이 훨씬 고급스럽고 모양도 예쁘다. 요즘 2030세대가 과거 세기말 감성에 다시 열광하기도 하고, 옛날 판소리를 오늘날에 맞추어 재해석한 ‘조선팝’이 새롭게 사랑을 받는 것도 같은 일환이다.

 

너도나도 인공지능에 관심을 가지고 도전하는 추세고, 나 또한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많아 공부하고 연구도 하고 있지만, 그래서 앞으로 더 가치 있게 여겨질 영역이 이 미(美)에 대한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미는 인간의 행복(快)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반면 컴퓨터는 ‘무엇이 아름다운지’ 알지 못한다. 수많은 데이터 학습을 통해 컴퓨터가 드디어 대상을 ‘예쁘다’고 이해했을지라도, 변덕이 심한 인간들은 또 쉽게 질려버릴 테니 말이다.

 

영화 HER에서, 결국 주인공의 유일한 사랑인 사만다가 오로지 자신만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낀 순간, 테어도르의 사랑은 끝이 난다. 꼭 그 사실이 아니어도,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은 언젠가 끝이 난다. 그 유한성에 지쳐 우리는 언제나 외로워하지만, 반대로 또 유한한 삶이기에 행복은 행복일 수 있는 것이다.

 

2013년 개봉 직후부터, 이 영화를 꽤 많이 다시 봤다. 예전엔 생각했다. 잠시라도 우리를 외롭지 않게 해준다면 인공지능과 인연을 맺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하고. 하지만 인공지능이 흔해지고 모든 것이 디지털화 되어가는 지금에 와서는 인공지능과 인연을 맺는 일에 대해 그리 달갑지 않다. 인간은 그런 존재다. 참을 수 없이 가볍다가도, 무거운 그런 존재.

 

 

[임이로]

시인

칼럼니스트

제5회 코스미안상 수상

시집 <오늘도 꽃은 피어라> 

메일: bkksg.studio@gmail.com

 

작성 2025.01.31 10:30 수정 2025.02.04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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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